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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과 지리산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과 지리산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남긴 기록에는 지리산의 수려한 경관에 대한 묘사는 물론, 당시 터 잡고 있던 사찰과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던 고승들의 모습을 남기고 있어 옛길, 지명 등과 더불어 불교의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본고는 대체로 그러한 내용을 소재로 이야기를 엮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유람록 읽기의 대상을 지리산이라는 공간에서 눈길을 돌려 유람을 다녀간 사람에게 맞추다보면, 시대별 우리 역사의 큰 획을 그었던 사건들과 이와 연계되는 저자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특히 1618년 4월 현곡 조위한(1567~1649)이 남원을 출발하여 하동 쌍계사와 인근의 여러 곳을 유람하고 남긴 『유.. 더보기
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③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③ 『등구사 사적』에 의하면, 등구사는 656년(신라 태종무열왕 2)에 창건되었고 나말여초에 이르는 시기에 화재로 불타버려 빈터로 남아있었는데, 1708년 인근의 안국사가 화재로 소실되자 탄기(坦機) 등의 승려들이 이곳에 절을 다시 짓기 시작하여 1710년에 중창을 완료하였다고 한다. 『등구사 사적』 말미에는 탄기를 비롯한 절집의 중창불사에 참여한 승려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이들에 대한 행적이나 승려들의 족보라 할 수 있는 법맥(法脈)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뜻밖의 문헌기록에서 이들 몇몇의 흔적이 발견되며,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 이곳에서 활동한 승려들의 모습이 짜 맞춰지듯 이어지고 있어 흥미롭다. 지리산의 산중암자에서 독서하기 위해 16.. 더보기
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②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② [등구사 삼층석탑. 삼층석탑 정면 하봉에서 오른쪽으로 중봉,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과 산자락이 가깝게 보이나, 운무에 가려 왼쪽 하봉의 모습만 희미하게 보인다. 사진 오른쪽 중앙에 있는 봉우리는 함양군 마천면의 창암산이다. ] 1489년(성종20) 4월 14일(음력), 탁영 김일손(1464~1498)은 함양 읍내를 출발하여 14박 15일에 걸친 지리산 유람 대장정에 나섰다. 몇 년 동안 그가 마음에 두고 있던 이 유람에는 함양 출신의 도학자인 일두 정여창(1450~1504)도 동행하였다. “14일(임인일). 드디어 천령(함양)의 남쪽 성곽 문에서 출발하였다. 서쪽으로 10리 쯤 가서 시내 하나를 건너 객사에 이르렀는데, 제한蹄閑이라고 하였다. 제한에서 .. 더보기
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①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① 등구사는 함양군 오도재와 삼봉산을 잇는 산줄기 상의 오도봉(1038.5m) 남쪽 산자락에 있다. 이 절집은 오랫동안 폐사상태로 있었는데, 현 주지인 인담스님이 2006년도에 무너진 절터에 토굴을 지어 머물기 시작했고, 그 후 지속적인 불사가 이루어지며 반듯한 가람의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다. 등구사가 역사 속에 드러나며 이렇듯 복원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은 『경상도함양군지리산등구사사적』(이하 등구사 사적)이라는 기록이 발견되며, 시공간에 걸쳐있는 퍼즐이 조금씩 맞추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벽송사에서 소장하고 있던 이 책은 현재 해인사성보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등구사 사적 내용 중 마지막 부분. '강희기원55년 병신년 7월 월화탄천이 쓰다'라는 내용이 맨.. 더보기
화엄사 효대(孝臺) 이야기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화엄사 효대(孝臺) 이야기 [화엄사 효대. 사사자삼층석탑(중앙)과 석등(왼쪽)이 마주보고 있고, 그 사이에는 배례석 2기가 있다. 석탑 뒤편에 보이는 건물은 견성전이다.] 지난 9월 말, 화엄사 사사자(四獅子)삼층석탑(국보35호)이 7년여에 걸친 보수복원공사 끝에 일반대중에게 공개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6년 전 들렀을 때 보호펜스 안에 해체된 석탑부재가 널브러져 있었고, 2017년 연말까지 복원공사가 끝날 것이라는 안내문을 보고 발길을 돌렸던 적이 있었는데, 무려 4년이나 더 걸려 불사가 완료된 것이다. 화엄사 홈페이지에는 각황전 뒤 언덕에 네 마리의 사자가 탑을 받치고 있는 ‘사사자삼층석탑’을 효대로 부른다고 소개하고 있으나, 석탑 맞은편 석등이 함께 공간을 이루는 언덕 전체를 효.. 더보기
숙성치(宿星峙) 이야기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숙성치(宿星峙) 이야기 남하하던 백두대간 마루금이 여원재를 지나 지리산 고리봉에 닿으면, 그 유장한 흐름을 지리산이 이어받게 된다. 그런데 천왕봉을 향해 달리던 백두대간 지리산 산줄기가 만복대 이르기 직전에, 서쪽으로 가지를 치는 또 하나의 마루금이 있다. 이른바 ‘견두지맥’이다. 현재 전북 남원과 전남 구례의 경계를 이루는 이 산줄기는 예전 남원부 관내의 주천방과 산동방의 경계를 이루고 있었고, 숙성치는 이 산줄기 상에 있는 고개이다. 숙성령으로 부르기도 한 이 고개는 신증동국여지승람(16세기)과 용성지(18세기)에 “숙성현(宿星峴) 부(府:남원부를 말한다)의 동남쪽 30리에 있다”라는 동일한 내용으로 소개되고 있다. 지금은 고개를 넘나들던 길로서는 이어지지 않은 채, 능선의 산길을.. 더보기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⑤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⑤ 두류암에서 하룻밤을 묵은 유몽인 일행은 4월 4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옹암(甕巖)으로 오른 뒤, 청이당-영랑대-소년대를 거쳐 천왕봉으로 향했다. 오늘 날의 지명으로 독바위-쑥밭재-하봉-중봉-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동부능선코스’로 이동한 것이다. 거대한 바위 형상이 멀리서 보면 단지(독)처럼 보인다고 해서 독바위라고 불리는 옹암은 독녀암(獨女巖)에서 이름이 유래한 함양독바위와는 이렇듯 그 의미가 다르다. 유몽인은 예전 본고에서 소개했던 ‘점필재길’의 ‘구롱-청이당’ 코스를 따르지 않고, 이렇듯 능선으로 올라 청이당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다. 천왕봉에 도착한 유몽인은 동행했던 승려가 가리키며 알려주는 대로 사방을 조망하며 일일이 봉우리와 지역 이.. 더보기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④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④ 1611년 4월 2일(음력) 유몽인 일행은 저물녘에 군자사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하룻밤을 보낸다. ‘들판에 있는 사찰이라 마루에 흙먼지가 가득하였다’라며 절집의 첫인상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유몽인은 ‘절 앞에 영정(靈井)이 있어 영정사로 불렀다. 지금은 이름을 바꿔 군자사로 부르는데, 무슨 뜻을 취한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절집 내력 설명도 왠지 마뜩치 않은 모습이다. 그러더니 신선처럼 선계(仙界)에 올랐다가 다시 속세로 떨어져 정신이 답답해졌고, 급기야 밤에는 가위눌림 당하는 악몽까지 꾸었다며 산에서 내려온 후 불편해하는 속내를 전하고 있다. 그런데 1643년 8월 22일(음력) 안의현감 박장원이 지리산 유람에 나서 이곳에 들렀을 때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