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리산 이야기/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

남원부로 들어서서 운봉에 이르다②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두 번째 이야기 - 남원부로 들어서서 운봉에 이르다

 

['유정부과' 각석. 남원시 이백면에서 운봉으로 가는 옛길, '여원재 옛길'에 있다. 임진왜란 때에 파병된 명나라장수 유정이 두 번째 지나갔다는 내용을 새겨놓았다]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31>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②남원~운봉    

 

“424일 맑음일찍 출발하여 남원에 이르렀는데고을에서 15리 쯤 되는 곳에서 정철(丁哲등을 만났다남원부 5리 안까지 이르러서 내가 가는 것을 송별하였고나는 곧장 10리 밖의 동쪽(東面이희경(李喜慶)의 종 집으로 갔다애통한 심정을 어찌하리오.”[난중일기]  

   

의금부에 투옥된 후 28일 만인 1597년(정유년) 4월 1일(음력) 출옥한 이순신 장군은 이틀을 한양에 머문 후, 권율 도원수 휘하에서 백의종군을 하기 위하여 경남 합천(초계)으로 향한다. 이 머나먼 백의종군로 노정에서 출발 24일 만에  지리산 자락의 큰 고을 남원으로 들어선 것이다. 장군이 남원부 읍내로 들어선 곳은 남원성 북문, 지금은 폐역이 된 옛남원역 바로 그 자리이다. 장군이 이곳을 지나간 후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남원성은 일본군에 의해 함락되는데(8월 16일), 당시 성을 지키던 전라병사 이복남을 비롯한 조선군과 백성들 대부분은 이곳 북문에서 순절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전란이 끝난 후 성이 함락되며 목숨을 잃은 만여 명의 시신을 수습하여 합장한 묘, 즉 ‘만인의총’이 오랫동안 이곳 북문 터 인근에 있었는데, 1964년 지금의 위치로(향교동) 옮겨졌다.         

 

일기에서 남원부 앞 15리쯤에서 만났다고 하는 정철이라는 인물은 여수 출신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형제 및 조카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활약하였고, 또 의금부에 투옥된 후에는 구명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사람이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며 남원부에 도착하였을 즈음은 전쟁에 대비한 군량미 확보와 백성들의 위무를 위하여 전라도로 내려온 호조판서 김수가 분주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각종 기록에 나타나는데, 아마도 고을 전체가 팽팽한 긴장감에 싸여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장군은 일행들과의 대화나 당시 남원부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를 남기지 않고 있다. 장군이 남원부에 들어서서 하룻밤을 머문 동쪽 10리 밖은 지금의 남원시 월락동 즈음으로 추정되는데, 저 멀리 지리산 서북능선이 바라보이는 곳이다.      

지리산권 남원의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첫 구간은 옛남원역에서 운봉초등학교까지 잡았다. 약 17km에 이르는 거리로 운봉은 장군이 지리산권역에서 이튿날 머문 곳이다. 

 

옛남원역 앞에서 출발하여, 횡단보도를 건너 법원4거리 쪽으로 향하며 백의종군로가 시작된다. 4거리에서는 ‘용성로’를 만나는데 이 길을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시외버스터미널-동림4거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용성’은 남원의 옛이름이다. 동림4거리에서는 좁은 시가지 길보다 남쪽 약 150m 지점에서 용성로와 나란히 나있는 요천로로 길을 잇는 것이 좋겠다는 이순신연구소의 제안에 따라 백의종군로는 동림교에서 요천숲길을 따라 월락3거리로 이어진다.     

 

월락3거리에서는 도통지구대 방향으로 길을 건너 오른쪽 ‘이백로’로 방향을 들어 이백면사무소로 향한다. 약 4.5km에 이르는 도로 왼쪽(진행방향)으로 인도가 잘 조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마을이 백두대간 산자락과 인접해있는 이백면은 백파면과 백암명이 합쳐지며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백의종군로가 더해지며 백두대간과 더불어 ‘백’이라는 의미를 4개나 지닌 곳이 되겠다.       

 

이백면사무소에서는 방향을 틀어 이백초등학교 앞을 지나면 농로 사이로 길이 이어지며 목가리 마을회관 앞에 닿는다. 이곳은 지금은 한적한 시골마을이지만, 여원재로 이어지던 통영별로가 지나가던 곳으로 양조장과 주막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던 곳이라고 한다. 목가리에서 양가저수지에 이르면 이제 다시 복원된 여원재 옛길로 길이 이어진다. 산자락으로 난 아름다운 길이지만 일부 사유지 구간을 우회하는 곳으로는 작은 계곡을 건너야하니 주의를 요한다.            

 

[유정과차 각석]

 

약 3km에 이르는 이 옛길에서는 조선의 역사와 관련되는 옛사람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저수지에서 약 40분 정도(2km) 진행하면 임진왜란 때에 구원병으로 참전한 명나라 장수 유정이 지나갔다는 내용이 새겨진 거대한 바위, 즉 유정과차(劉綎過此/1593년 5월), 유정부과(劉綎復過/1594년 3월) 각석과 ‘나주임씨삼세충의비’, 여원치마애불상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여원치마애불상은 고려 말 왜구를 토벌하기 위하여 내려온 이성계 장군과의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이제 백두대간 고개인 여원재가 지척으로 고개를 넘으면 운봉으로 들어서게 된다. 

 

[여원재. 남원시 이백면과 운봉읍 사이에 있다. 백두대간마루금이 지나가는 고개로 여원치 또는 연재라고도 부른다]

 

여원재에서 오늘의 목적지인 운봉초등학교까지는 약 3.5km 남았다. 갓길이 없는 24번 2차선 국도를 걷기다 다소 위험하니 걷기에 주의를 요한다. 경마축산교 앞 마산교를 지나면 서림공원으로 이어지는 옛길로 가기 위해 사과과수원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서림공원을 거쳐 운봉초등학교로 닿으며 남원-운봉구간 답사를 마친다. 약 5시간 소요되었다.     /조용섭

 

#이순신, #백의종군로, #임진왜란, #여원재, #정유재란, #남원성전투, #유정과차, #유정부과, #운봉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