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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부로 들어서서 운봉에 이르다②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두 번째 이야기 - 남원부로 들어서서 운봉에 이르다 ['유정부과' 각석. 남원시 이백면에서 운봉으로 가는 옛길, '여원재 옛길'에 있다. 임진왜란 때에 파병된 명나라장수 유정이 두 번째 지나갔다는 내용을 새겨놓았다]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②남원~운봉 “4월24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남원에 이르렀는데, 고을에서 15리 쯤 되는 곳에서 정철(丁哲) 등을 만났다. 남원부 5리 안까지 이르러서 내가 가는 것을 송별하였고, 나는 곧장 10리 밖의 동쪽(東面) 이희경(李喜慶)의 종 집으로 갔다. 애통한 심정을 어찌하리오.”[난중일기] 의금부에 투옥된 후 28일 만인 1597년(정유년) 4월 1일(음력) 출옥한 이순신 장군은 이틀을 한양에 머문 후, 권율.. 더보기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①연재를 시작하며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① 오리정(五里亭). 전북 문화재자료 제56호. 전북 남원시 사매면 월평리, 17번국도(춘향로)변에 있는 2층 누각. 예전 남원을 오고가는 사람들을 마중 나오거나 전송을 하던 곳이다. 지리산 이야기는 이번 호부터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로 이어가고자 한다. 1592년 4월 임진왜란 발발 이후, 1593년 3월부터 시작된 명나라와 일본과의 강화협상은 결국 1596년 9월 결렬되고, 왜군은 1597년 1월에 재침을 하게 된다. 즉 정유재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임금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게 부산 앞바다로 나아가 왜군을 맞아 싸우라는 명령을 내리나, 장군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출진(出陣)하지 않는다. 그 후 조선 조정은 이러한 명령불복종 등을 이유로 이순신 장군을 탄.. 더보기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①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① 1611년 음력 3월 28일(양력 5월 10일), 남원부사 유몽인(1559~1623)은 ‘목동’(木洞. 현 남원시 산동면 목동마을)으로 향하며 지리산 유람에 나선다. 한 달 전 지리산 유람에 동행하기로 약속한 승평(순천)부사 유영순(1552~1630)이 목동에 와있다는 소식을 접한 다음날이다. 삼각산, 금강산, 묘향산 등 팔도의 수많은 명산을 유람한 바 있는 유몽인은 오랫동안 마음에 두어왔던 지리산 유람을 수령 부임 2개월 만에 행동에 옮긴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모두 평안도와 경상도의 감사를 지낸 후 남녘 두 고을의 수령이 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유몽인은 선조 재위 말년인 1608년 1월 말에 도승지가 되었는데, 불과 이틀.. 더보기
불일폭포 가는 길 [쌍계사 십리벚꽃길] 지난 주말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 불일폭포 다녀왔습니다. 쌍계사 십리벚꽃길은 이미 꽃이 만개해 화사한 벚꽃터널으로 맞이하였고, 이제 곧 섬진강변도 꽃세상으로 변할 듯합니다. 분주하게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봄의 산자락에서, 시절 탓하며 움츠려있지 말라는 메세지를 받고 왔습니다. [조용섭의 지리산 이야기] 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3847 더보기
추강 남효온의 지리산 유람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추강 남효온의 지리산 유람 얼마 전, 조선시대 선비들의 ‘지리산 유람록’ 자료를 정리하다가 마음에 닿는 글을 만났다. 「지리산일과日課」라는 글을 남긴 추강 남효온(1454~1492)의 지리산 유람과 관련된 내용이다. 생육신, 방외인 등의 수식어가 그러하듯, 순탄치 않은 삶을 살다가 39세의 나이로 요절한 추강의 지리산 유람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유람노정과 더불어 문집 편찬 시 별도로 떼어놓은 시문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인 추강은 25세 때인 1478년(성종9)에 올린 상소 중, 소릉(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능) 복위 내용이 문제가 되어 당시 훈구파 대신들로부터 ‘미친 선비’로 지목되며 제도권 정치에서 배척당하였다. 그 후 추강은 출.. 더보기
파근사 옛 절터를 찾아서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파근사(波根寺) 옛 절터를 찾아서 ‘이번에 서국익(徐國益)이 서울에서 어버이를 뵈러 남원으로 왔다가 나에게 쌍계사를 함께 유람하자고 청했다. 이 유람은 평소 내가 마음에 두고 있던 터라, 고을 동쪽 원천원(元川院)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중략) 용추(龍湫)를 거쳐 대흥사에서 묵고, 거세게 흘러내리는 폭포를 구경하였다. 감로사를 거쳐 화엄사에 이르러 웅대한 불당을 구경하였다.’ 위의 글은 담허재 김지백(1623~1671)이 1655년 10월 8일부터 11일 까지 3박4일간 지리산을 유람하고 쓴 「유두류산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대흥사는 파근사의 옛 이름이고(혹은 파근사 인근에 있었던 절집이라고도 한다), 감로사는 지금의 천은사를 말하며 당시에는 남원부 관내에 있었다. 담허재가 .. 더보기
남원 실상사 이야기 [한국농어민신문]기사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 남원 실상사 이야기 - 한국농어민신문 (agrinet.co.kr) 더보기
조용섭의 지리산 이야기(29)거림골 가는 길(경남 산청) ▲ 거림계곡. 거림마을과 세석대피소로 이어지는 등산로 상에 있는 '천팔교' 옆 계곡 풍경. 거림마을 에서 약 3km 조금 못미친 지점에 있다.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 <29>거림골 가는길(경남 산청군) 28세 청년 빨치산, ‘인간 세계’로 귀환한 곳 [한국농어민신문] 승인 2019.09.27 17:17 신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