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367 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과 지리산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과 지리산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남긴 기록에는 지리산의 수려한 경관에 대한 묘사는 물론, 당시 터 잡고 있던 사찰과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던 고승들의 모습을 남기고 있어 옛길, 지명 등과 더불어 불교의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본고는 대체로 그러한 내용을 소재로 이야기를 엮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유람록 읽기의 대상을 지리산이라는 공간에서 눈길을 돌려 유람을 다녀간 사람에게 맞추다보면, 시대별 우리 역사의 큰 획을 그었던 사건들과 이와 연계되는 저자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특히 1618년 4월 현곡 조위한(1567~1649)이 남원을 출발하여 하동 쌍계사와 인근의 여러 곳을 유람하고 남긴 『유.. 2022. 3. 27. 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③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③ 『등구사 사적』에 의하면, 등구사는 656년(신라 태종무열왕 2)에 창건되었고 나말여초에 이르는 시기에 화재로 불타버려 빈터로 남아있었는데, 1708년 인근의 안국사가 화재로 소실되자 탄기(坦機) 등의 승려들이 이곳에 절을 다시 짓기 시작하여 1710년에 중창을 완료하였다고 한다. 『등구사 사적』 말미에는 탄기를 비롯한 절집의 중창불사에 참여한 승려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이들에 대한 행적이나 승려들의 족보라 할 수 있는 법맥(法脈)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뜻밖의 문헌기록에서 이들 몇몇의 흔적이 발견되며,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 이곳에서 활동한 승려들의 모습이 짜 맞춰지듯 이어지고 있어 흥미롭다. 지리산의 산중암자에서 독서하기 위해 16.. 2022. 2. 25. 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②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② [등구사 삼층석탑. 삼층석탑 정면 하봉에서 오른쪽으로 중봉,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과 산자락이 가깝게 보이나, 운무에 가려 왼쪽 하봉의 모습만 희미하게 보인다. 사진 오른쪽 중앙에 있는 봉우리는 함양군 마천면의 창암산이다. ] 1489년(성종20) 4월 14일(음력), 탁영 김일손(1464~1498)은 함양 읍내를 출발하여 14박 15일에 걸친 지리산 유람 대장정에 나섰다. 몇 년 동안 그가 마음에 두고 있던 이 유람에는 함양 출신의 도학자인 일두 정여창(1450~1504)도 동행하였다. “14일(임인일). 드디어 천령(함양)의 남쪽 성곽 문에서 출발하였다. 서쪽으로 10리 쯤 가서 시내 하나를 건너 객사에 이르렀는데, 제한蹄閑이라고 하였다. 제한에서 .. 2022. 2. 25. 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①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① 등구사는 함양군 오도재와 삼봉산을 잇는 산줄기 상의 오도봉(1038.5m) 남쪽 산자락에 있다. 이 절집은 오랫동안 폐사상태로 있었는데, 현 주지인 인담스님이 2006년도에 무너진 절터에 토굴을 지어 머물기 시작했고, 그 후 지속적인 불사가 이루어지며 반듯한 가람의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다. 등구사가 역사 속에 드러나며 이렇듯 복원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은 『경상도함양군지리산등구사사적』(이하 등구사 사적)이라는 기록이 발견되며, 시공간에 걸쳐있는 퍼즐이 조금씩 맞추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벽송사에서 소장하고 있던 이 책은 현재 해인사성보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등구사 사적 내용 중 마지막 부분. '강희기원55년 병신년 7월 월화탄천이 쓰다'라는 내용이 맨.. 2022. 2. 25. 화엄사 효대(孝臺) 이야기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화엄사 효대(孝臺) 이야기 [화엄사 효대. 사사자삼층석탑(중앙)과 석등(왼쪽)이 마주보고 있고, 그 사이에는 배례석 2기가 있다. 석탑 뒤편에 보이는 건물은 견성전이다.] 지난 9월 말, 화엄사 사사자(四獅子)삼층석탑(국보35호)이 7년여에 걸친 보수복원공사 끝에 일반대중에게 공개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6년 전 들렀을 때 보호펜스 안에 해체된 석탑부재가 널브러져 있었고, 2017년 연말까지 복원공사가 끝날 것이라는 안내문을 보고 발길을 돌렸던 적이 있었는데, 무려 4년이나 더 걸려 불사가 완료된 것이다. 화엄사 홈페이지에는 각황전 뒤 언덕에 네 마리의 사자가 탑을 받치고 있는 ‘사사자삼층석탑’을 효대로 부른다고 소개하고 있으나, 석탑 맞은편 석등이 함께 공간을 이루는 언덕 전체를 효.. 2022. 1. 29.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⑤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⑤ 두류암에서 하룻밤을 묵은 유몽인 일행은 4월 4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옹암(甕巖)으로 오른 뒤, 청이당-영랑대-소년대를 거쳐 천왕봉으로 향했다. 오늘 날의 지명으로 독바위-쑥밭재-하봉-중봉-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동부능선코스’로 이동한 것이다. 거대한 바위 형상이 멀리서 보면 단지(독)처럼 보인다고 해서 독바위라고 불리는 옹암은 독녀암(獨女巖)에서 이름이 유래한 함양독바위와는 이렇듯 그 의미가 다르다. 유몽인은 예전 본고에서 소개했던 ‘점필재길’의 ‘구롱-청이당’ 코스를 따르지 않고, 이렇듯 능선으로 올라 청이당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다. 천왕봉에 도착한 유몽인은 동행했던 승려가 가리키며 알려주는 대로 사방을 조망하며 일일이 봉우리와 지역 이.. 2022. 1. 27.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④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④ 1611년 4월 2일(음력) 유몽인 일행은 저물녘에 군자사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하룻밤을 보낸다. ‘들판에 있는 사찰이라 마루에 흙먼지가 가득하였다’라며 절집의 첫인상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유몽인은 ‘절 앞에 영정(靈井)이 있어 영정사로 불렀다. 지금은 이름을 바꿔 군자사로 부르는데, 무슨 뜻을 취한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절집 내력 설명도 왠지 마뜩치 않은 모습이다. 그러더니 신선처럼 선계(仙界)에 올랐다가 다시 속세로 떨어져 정신이 답답해졌고, 급기야 밤에는 가위눌림 당하는 악몽까지 꾸었다며 산에서 내려온 후 불편해하는 속내를 전하고 있다. 그런데 1643년 8월 22일(음력) 안의현감 박장원이 지리산 유람에 나서 이곳에 들렀을 때는.. 2022. 1. 26.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③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③ “월락동을 거쳐 황혼동을 지났다. 고목이 하늘에 빽빽이 치솟아, 올려다봐도 해와 달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밝은 대낮일지라도 어두컴컴하기 때문에 월락동‧황혼동이라고 부른다. 와곡(臥谷)으로 돌아들자 수목이 울창하고 돌길이 험하여 더욱 걷기 힘들었다.”(「유두류산록」, 최석기 외 번역) 음력 4월 2일(양력 5월 13일) 아침, 지금의 와운마을 인근 어딘가로 추정되는 월락동‧황혼동을 지나 골짜기로 들어선 유몽인 일행은, 곳곳에 쓰러져 가파른 돌길을 막고 있는 거대한 고사목의 가지를 제거하거나 비켜가느라 엄청 힘든 산행을 하였다. 또 ‘수십 리에 걸쳐 굽이굽이 뻗은 시내’라는 표현으로 보아 계곡을 따라 길이 이어졌을 것이다. 이날 유몽인 일행.. 2022. 1. 26.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② 지난 주말, 한국농어민신문에 연재 중인 '조용섭의 지리산 이야기', '유몽인의 지리산 유람' 편 기고를 위해 만수천-뱀사골 답사를 하고 왔습니다. 410년 전 옛사람이 걸었던 길을 확실하게 찾을 수는 없으나, 어렴풋이나마 길을 읽을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뱀사골로 가기 위해 차량으로 휙 지나쳐버리는 만수천과 뱀사골에 서려있는 옛사람의 흔적을 소개합니다. (한국농어민신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1301 2021. 5. 26. 구비구비 고갯길을 넘다 여덟 번째 이야기 - 지리산권 이순신장군 백의종군로 하동읍성~북천면 화정리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6)하동읍성~북천면 화정리 제대로 맞이한 기억도 없는 5월의 날이 어느새 끝자락으로 접어들고 있다. 숨 가쁘게 달리는 시간에 맞추어 계절도 이제 곧 여름의 문턱을 넘을 듯하다.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답사를 위해 하동읍성(경남 하동군 고전면)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 서서히 달구어지는 대기에 오늘 답사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1597년 음력 5월 28일 하동읍성에 도착하여 하동현감(신진申蓁)이 마련해준 현청의 별채에서 하룻밤을 머문 이순신 장군은 몸이 매우 불편하여 이곳에서 하루를 더 머물렀다고 한다. 백의종군 행로에서 몸이 불편하여 이틀을 머문 일은 이례적이.. 2021. 5. 25. 하동현감과의 만남⑦ 일곱 번째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곱 번째 이야기 - 지리산 일곱번 째 이야기 - 하동 읍내삼거리~하동읍성 4월의 마지막 주말, 섬진강변 하동읍 읍내삼거리로 향했다. 지난 달 이맘때 눈부신 꽃잎으로 섬진강변을 물들이던 벚나무는 어느새 싱그러운 초록의 잎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세찬 꽃샘바람과 추위에도 푸른 잎사귀를 흔들며 온몸으로 계절을 맞이하고 있는 나무에게서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읍내삼거리에 있는 서해량마을 표지석. 서해량은 삼국지에 나오는 촉한 관우의 고향과 같은 이름으로, 예전 이곳 언덕에 관우를 신으로 모신 ‘관성묘’가 있었다고 한다] 이번 구간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는 하동군 읍내삼거리에서 임진왜란 당시 하동현의 치소(治所)가 있던 하동읍성으로 이어진다. 현재 .. 2021. 5. 5. 빗길을 뚫고 악양으로 들어서다⑥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6) 하동 화개삼거리~읍내삼거리 [하동 화개장터 앞 이순신장군 백의종군로 표지석] 어느덧 3월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몹쓸 병으로 온 세상이 어수선한 시절이지만, 지리산 자락에는 늘 그러했듯 눈부신 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하여 벚꽃축제를 취소하였고, 또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낯선 캠페인으로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현수막까지 내걸었지만, 평일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화개장터 인근은 상춘객들로 붐비고 있다.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답사는 이제 경남 하동으로 들어서게 된다. 화개면 ‘화개삼거리’에서 하동읍 ‘읍내삼거리’까지 이어지는 이번 구간은 약 27km에 이른다. 그런데 화개장터에 있는 이정표에는 ‘하동군청.. 2021. 5. 5. 순천에서 옛부하들을 만나다⑤ 순천에서 옛부하들을 만나다 다섯 번째 이야기-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5)구례읍~석주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모쪼록 이 몹쓸 병이 하루빨리 치유되어, 우리들의 삶에 다시 평온이 깃들게 되길 빈다. 2월 하순이 시작될 무렵, 전남 구례의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찾았다. 며칠 전 내렸던 큰 눈의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이곳의 지리산 산자락은 어느새 봄의 풍경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참고 2000년 3월 1일에 기고한 글입니다) 1597년 4월 26일 구례읍 손인필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이순신 장군은 다음날 권율 도원수를 만나기 위해 순천으로 향하였고, 지금의 선평삼거리로 추정되는 ‘송원’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도원수는 장.. 2021. 5. 5. 이순신 장군, 구례에서 머물다④ 이순신 장군, 구례에서 머물다 네번째 이야기-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손인필 비각. 운봉에서 순천으로 향하던 이순신 장군은 구례에서 손인필이라는 사람의 집으로 가서 하룻밤을 머문다]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4)밤재~구례읍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 장소인 경남 합천(율곡면. 당시 초계군) 권율 도원수의 군영으로 가기 위해 남원부를 거쳐 운봉현에 도착하여 머물다가, 도원수가 순천부로 이동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4월 26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구례현으로 향하였다. 지금의 동선(動線)으로는 운봉에서 여원재로 되돌아와, 남원 주천면에서 밤재(고증은 숙성치)를 넘어 구례읍에 이르는 행로이다. 약 48km에 이르는 만만찮은 거리로, 초여름(양력 6월 10일) 날씨에 고개를 두 곳.. 2021. 5. 5. 운봉에서 구례로 향하다③ 이순신장군, 운봉에서 구례로 향하다 세 번째 이야기 -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운봉초등학교.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 당시 박롱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머물렀는데, 현재 백의종군로는 옛 운봉객사가 있던 운봉초교를 경유하고 있다]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3)운봉~밤재 1597년 4월 25일(음력) 아침 일찍 남원부를 출발하여 운봉에 도착한 이순신 장군은 박롱(朴巃) 사람의 집에 들르는데, 억수같이 퍼붓는 비에 더 이상의 진행을 중지하고 그 집에 머물게 된다. 그런데 이곳에서 백의종군 행로에 중요한 변수를 맞이하게 된다. 합천(율곡면)의 군영에 있던 권율 도원수가 순천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이때 장군은 급히 남원부에 있던 금부도사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대로 머물.. 2021. 5. 5. 남원부로 들어서서 운봉에 이르다②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두 번째 이야기 - 남원부로 들어서서 운봉에 이르다 ['유정부과' 각석. 남원시 이백면에서 운봉으로 가는 옛길, '여원재 옛길'에 있다. 임진왜란 때에 파병된 명나라장수 유정이 두 번째 지나갔다는 내용을 새겨놓았다]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②남원~운봉 “4월24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남원에 이르렀는데, 고을에서 15리 쯤 되는 곳에서 정철(丁哲) 등을 만났다. 남원부 5리 안까지 이르러서 내가 가는 것을 송별하였고, 나는 곧장 10리 밖의 동쪽(東面) 이희경(李喜慶)의 종 집으로 갔다. 애통한 심정을 어찌하리오.”[난중일기] 의금부에 투옥된 후 28일 만인 1597년(정유년) 4월 1일(음력) 출옥한 이순신 장군은 이틀을 한양에 머문 후, 권율.. 2021. 5. 5. 조용섭의 지리산 이야기(29)거림골 가는 길(경남 산청) ▲ 거림계곡. 거림마을과 세석대피소로 이어지는 등산로 상에 있는 '천팔교' 옆 계곡 풍경. 거림마을 에서 약 3km 조금 못미친 지점에 있다.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 <29>거림골 가는길(경남 산청군) 28세 청년 빨치산, ‘인간 세계’로 귀환한 곳 [한국농어민신문] 승인 2019.09.27 17:17 신문.. 2019. 10. 8. 조용섭의 지리산 이야기(28)함양 휴천면 마적동 [세진대와 마적송] 지리산이야기(28)함양 휴천면 마적동 인문학으로 걷는 지리산 함양 휴천면 용유담. 이곳에서부터 강의 이름이 임천강에서 엄천강으로 바뀐다. 폭염에 이어 가을장마 운운하며 8월 중순을 호들갑스럽게 지나던 날씨는 처서를 지나면서 바람의 온도를 한결 내려놓았다. .. 2019. 9. 7.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걷다-전북권(05)임실군 임실읍 ~ 남원시 뒷밤재 [남원시 덕과면 월평정류소. 남원시에서는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안내판, 이정표 등을 세워 답사에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걷다-전북권(05)임실군 임실읍 ~ 남원시 뒷밤재 [조용섭/전북일보 2019.07.23.] 오리정. 옛 남원부를 오고가는 사람들을 맞이하거나 이별.. 2019. 8. 3.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걷다-전북권(04)완주 상관면 신리~임실군 임실읍 [임실군 관촌면 사선문]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걷다-전북권(04)완주 상관면 신리 ~ 임실군 임실읍 [조용섭/전북일보 2019.06.25.] 남관진(南關鎭) 창건비. 남관진은 상관의 남쪽에 있는 군진(軍鎭)이라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남관초교가 있는 교차로 서쪽에 있다. 1873년(고종10)에 세워.. 2019. 8. 3.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걷다-전북권(03)삼례읍-상관면 신리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걷다-전북권(03)완주 삼례역~완주 상관면 신리 [조용섭/전북일보 2019.05.28.] 비비정(飛飛亭). 삼례읍 남쪽 만경강 언덕 위에 있는 정자. 1573년(선조 6) 창주첨사 최영길에 의해 창건되었고, 1752년(영조28)에 전라도관찰사 서명구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그 후 오랜 세.. 2019. 8. 3. 이전 1 2 3 4 ··· 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