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914 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과 지리산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과 지리산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남긴 기록에는 지리산의 수려한 경관에 대한 묘사는 물론, 당시 터 잡고 있던 사찰과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던 고승들의 모습을 남기고 있어 옛길, 지명 등과 더불어 불교의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본고는 대체로 그러한 내용을 소재로 이야기를 엮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유람록 읽기의 대상을 지리산이라는 공간에서 눈길을 돌려 유람을 다녀간 사람에게 맞추다보면, 시대별 우리 역사의 큰 획을 그었던 사건들과 이와 연계되는 저자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특히 1618년 4월 현곡 조위한(1567~1649)이 남원을 출발하여 하동 쌍계사와 인근의 여러 곳을 유람하고 남긴 『유.. 2022. 3. 27. 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③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③ 『등구사 사적』에 의하면, 등구사는 656년(신라 태종무열왕 2)에 창건되었고 나말여초에 이르는 시기에 화재로 불타버려 빈터로 남아있었는데, 1708년 인근의 안국사가 화재로 소실되자 탄기(坦機) 등의 승려들이 이곳에 절을 다시 짓기 시작하여 1710년에 중창을 완료하였다고 한다. 『등구사 사적』 말미에는 탄기를 비롯한 절집의 중창불사에 참여한 승려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이들에 대한 행적이나 승려들의 족보라 할 수 있는 법맥(法脈)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뜻밖의 문헌기록에서 이들 몇몇의 흔적이 발견되며,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 이곳에서 활동한 승려들의 모습이 짜 맞춰지듯 이어지고 있어 흥미롭다. 지리산의 산중암자에서 독서하기 위해 16.. 2022. 2. 25. 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②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② [등구사 삼층석탑. 삼층석탑 정면 하봉에서 오른쪽으로 중봉,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과 산자락이 가깝게 보이나, 운무에 가려 왼쪽 하봉의 모습만 희미하게 보인다. 사진 오른쪽 중앙에 있는 봉우리는 함양군 마천면의 창암산이다. ] 1489년(성종20) 4월 14일(음력), 탁영 김일손(1464~1498)은 함양 읍내를 출발하여 14박 15일에 걸친 지리산 유람 대장정에 나섰다. 몇 년 동안 그가 마음에 두고 있던 이 유람에는 함양 출신의 도학자인 일두 정여창(1450~1504)도 동행하였다. “14일(임인일). 드디어 천령(함양)의 남쪽 성곽 문에서 출발하였다. 서쪽으로 10리 쯤 가서 시내 하나를 건너 객사에 이르렀는데, 제한蹄閑이라고 하였다. 제한에서 .. 2022. 2. 25. 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①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등구사登龜寺 이야기① 등구사는 함양군 오도재와 삼봉산을 잇는 산줄기 상의 오도봉(1038.5m) 남쪽 산자락에 있다. 이 절집은 오랫동안 폐사상태로 있었는데, 현 주지인 인담스님이 2006년도에 무너진 절터에 토굴을 지어 머물기 시작했고, 그 후 지속적인 불사가 이루어지며 반듯한 가람의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다. 등구사가 역사 속에 드러나며 이렇듯 복원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은 『경상도함양군지리산등구사사적』(이하 등구사 사적)이라는 기록이 발견되며, 시공간에 걸쳐있는 퍼즐이 조금씩 맞추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벽송사에서 소장하고 있던 이 책은 현재 해인사성보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등구사 사적 내용 중 마지막 부분. '강희기원55년 병신년 7월 월화탄천이 쓰다'라는 내용이 맨.. 2022. 2. 25. 화엄사 효대(孝臺) 이야기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화엄사 효대(孝臺) 이야기 [화엄사 효대. 사사자삼층석탑(중앙)과 석등(왼쪽)이 마주보고 있고, 그 사이에는 배례석 2기가 있다. 석탑 뒤편에 보이는 건물은 견성전이다.] 지난 9월 말, 화엄사 사사자(四獅子)삼층석탑(국보35호)이 7년여에 걸친 보수복원공사 끝에 일반대중에게 공개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6년 전 들렀을 때 보호펜스 안에 해체된 석탑부재가 널브러져 있었고, 2017년 연말까지 복원공사가 끝날 것이라는 안내문을 보고 발길을 돌렸던 적이 있었는데, 무려 4년이나 더 걸려 불사가 완료된 것이다. 화엄사 홈페이지에는 각황전 뒤 언덕에 네 마리의 사자가 탑을 받치고 있는 ‘사사자삼층석탑’을 효대로 부른다고 소개하고 있으나, 석탑 맞은편 석등이 함께 공간을 이루는 언덕 전체를 효.. 2022. 1. 29. 숙성치(宿星峙) 이야기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숙성치(宿星峙) 이야기 남하하던 백두대간 마루금이 여원재를 지나 지리산 고리봉에 닿으면, 그 유장한 흐름을 지리산이 이어받게 된다. 그런데 천왕봉을 향해 달리던 백두대간 지리산 산줄기가 만복대 이르기 직전에, 서쪽으로 가지를 치는 또 하나의 마루금이 있다. 이른바 ‘견두지맥’이다. 현재 전북 남원과 전남 구례의 경계를 이루는 이 산줄기는 예전 남원부 관내의 주천방과 산동방의 경계를 이루고 있었고, 숙성치는 이 산줄기 상에 있는 고개이다. 숙성령으로 부르기도 한 이 고개는 신증동국여지승람(16세기)과 용성지(18세기)에 “숙성현(宿星峴) 부(府:남원부를 말한다)의 동남쪽 30리에 있다”라는 동일한 내용으로 소개되고 있다. 지금은 고개를 넘나들던 길로서는 이어지지 않은 채, 능선의 산길을.. 2022. 1. 29.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⑤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⑤ 두류암에서 하룻밤을 묵은 유몽인 일행은 4월 4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옹암(甕巖)으로 오른 뒤, 청이당-영랑대-소년대를 거쳐 천왕봉으로 향했다. 오늘 날의 지명으로 독바위-쑥밭재-하봉-중봉-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동부능선코스’로 이동한 것이다. 거대한 바위 형상이 멀리서 보면 단지(독)처럼 보인다고 해서 독바위라고 불리는 옹암은 독녀암(獨女巖)에서 이름이 유래한 함양독바위와는 이렇듯 그 의미가 다르다. 유몽인은 예전 본고에서 소개했던 ‘점필재길’의 ‘구롱-청이당’ 코스를 따르지 않고, 이렇듯 능선으로 올라 청이당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다. 천왕봉에 도착한 유몽인은 동행했던 승려가 가리키며 알려주는 대로 사방을 조망하며 일일이 봉우리와 지역 이.. 2022. 1. 27.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④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④ 1611년 4월 2일(음력) 유몽인 일행은 저물녘에 군자사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하룻밤을 보낸다. ‘들판에 있는 사찰이라 마루에 흙먼지가 가득하였다’라며 절집의 첫인상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유몽인은 ‘절 앞에 영정(靈井)이 있어 영정사로 불렀다. 지금은 이름을 바꿔 군자사로 부르는데, 무슨 뜻을 취한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절집 내력 설명도 왠지 마뜩치 않은 모습이다. 그러더니 신선처럼 선계(仙界)에 올랐다가 다시 속세로 떨어져 정신이 답답해졌고, 급기야 밤에는 가위눌림 당하는 악몽까지 꾸었다며 산에서 내려온 후 불편해하는 속내를 전하고 있다. 그런데 1643년 8월 22일(음력) 안의현감 박장원이 지리산 유람에 나서 이곳에 들렀을 때는.. 2022. 1. 26.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③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③ “월락동을 거쳐 황혼동을 지났다. 고목이 하늘에 빽빽이 치솟아, 올려다봐도 해와 달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밝은 대낮일지라도 어두컴컴하기 때문에 월락동‧황혼동이라고 부른다. 와곡(臥谷)으로 돌아들자 수목이 울창하고 돌길이 험하여 더욱 걷기 힘들었다.”(「유두류산록」, 최석기 외 번역) 음력 4월 2일(양력 5월 13일) 아침, 지금의 와운마을 인근 어딘가로 추정되는 월락동‧황혼동을 지나 골짜기로 들어선 유몽인 일행은, 곳곳에 쓰러져 가파른 돌길을 막고 있는 거대한 고사목의 가지를 제거하거나 비켜가느라 엄청 힘든 산행을 하였다. 또 ‘수십 리에 걸쳐 굽이굽이 뻗은 시내’라는 표현으로 보아 계곡을 따라 길이 이어졌을 것이다. 이날 유몽인 일행.. 2022. 1. 26.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② 지난 주말, 한국농어민신문에 연재 중인 '조용섭의 지리산 이야기', '유몽인의 지리산 유람' 편 기고를 위해 만수천-뱀사골 답사를 하고 왔습니다. 410년 전 옛사람이 걸었던 길을 확실하게 찾을 수는 없으나, 어렴풋이나마 길을 읽을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뱀사골로 가기 위해 차량으로 휙 지나쳐버리는 만수천과 뱀사골에 서려있는 옛사람의 흔적을 소개합니다. (한국농어민신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1301 2021. 5. 26. 구비구비 고갯길을 넘다 여덟 번째 이야기 - 지리산권 이순신장군 백의종군로 하동읍성~북천면 화정리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6)하동읍성~북천면 화정리 제대로 맞이한 기억도 없는 5월의 날이 어느새 끝자락으로 접어들고 있다. 숨 가쁘게 달리는 시간에 맞추어 계절도 이제 곧 여름의 문턱을 넘을 듯하다.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답사를 위해 하동읍성(경남 하동군 고전면)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 서서히 달구어지는 대기에 오늘 답사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1597년 음력 5월 28일 하동읍성에 도착하여 하동현감(신진申蓁)이 마련해준 현청의 별채에서 하룻밤을 머문 이순신 장군은 몸이 매우 불편하여 이곳에서 하루를 더 머물렀다고 한다. 백의종군 행로에서 몸이 불편하여 이틀을 머문 일은 이례적이.. 2021. 5. 25. 하동현감과의 만남⑦ 일곱 번째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곱 번째 이야기 - 지리산 일곱번 째 이야기 - 하동 읍내삼거리~하동읍성 4월의 마지막 주말, 섬진강변 하동읍 읍내삼거리로 향했다. 지난 달 이맘때 눈부신 꽃잎으로 섬진강변을 물들이던 벚나무는 어느새 싱그러운 초록의 잎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세찬 꽃샘바람과 추위에도 푸른 잎사귀를 흔들며 온몸으로 계절을 맞이하고 있는 나무에게서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읍내삼거리에 있는 서해량마을 표지석. 서해량은 삼국지에 나오는 촉한 관우의 고향과 같은 이름으로, 예전 이곳 언덕에 관우를 신으로 모신 ‘관성묘’가 있었다고 한다] 이번 구간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는 하동군 읍내삼거리에서 임진왜란 당시 하동현의 치소(治所)가 있던 하동읍성으로 이어진다. 현재 .. 2021. 5. 5. 빗길을 뚫고 악양으로 들어서다⑥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6) 하동 화개삼거리~읍내삼거리 [하동 화개장터 앞 이순신장군 백의종군로 표지석] 어느덧 3월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몹쓸 병으로 온 세상이 어수선한 시절이지만, 지리산 자락에는 늘 그러했듯 눈부신 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하여 벚꽃축제를 취소하였고, 또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낯선 캠페인으로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현수막까지 내걸었지만, 평일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화개장터 인근은 상춘객들로 붐비고 있다.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답사는 이제 경남 하동으로 들어서게 된다. 화개면 ‘화개삼거리’에서 하동읍 ‘읍내삼거리’까지 이어지는 이번 구간은 약 27km에 이른다. 그런데 화개장터에 있는 이정표에는 ‘하동군청.. 2021. 5. 5. 순천에서 옛부하들을 만나다⑤ 순천에서 옛부하들을 만나다 다섯 번째 이야기-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5)구례읍~석주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모쪼록 이 몹쓸 병이 하루빨리 치유되어, 우리들의 삶에 다시 평온이 깃들게 되길 빈다. 2월 하순이 시작될 무렵, 전남 구례의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찾았다. 며칠 전 내렸던 큰 눈의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이곳의 지리산 산자락은 어느새 봄의 풍경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참고 2000년 3월 1일에 기고한 글입니다) 1597년 4월 26일 구례읍 손인필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이순신 장군은 다음날 권율 도원수를 만나기 위해 순천으로 향하였고, 지금의 선평삼거리로 추정되는 ‘송원’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도원수는 장.. 2021. 5. 5. 이순신 장군, 구례에서 머물다④ 이순신 장군, 구례에서 머물다 네번째 이야기-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손인필 비각. 운봉에서 순천으로 향하던 이순신 장군은 구례에서 손인필이라는 사람의 집으로 가서 하룻밤을 머문다]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4)밤재~구례읍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 장소인 경남 합천(율곡면. 당시 초계군) 권율 도원수의 군영으로 가기 위해 남원부를 거쳐 운봉현에 도착하여 머물다가, 도원수가 순천부로 이동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4월 26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구례현으로 향하였다. 지금의 동선(動線)으로는 운봉에서 여원재로 되돌아와, 남원 주천면에서 밤재(고증은 숙성치)를 넘어 구례읍에 이르는 행로이다. 약 48km에 이르는 만만찮은 거리로, 초여름(양력 6월 10일) 날씨에 고개를 두 곳.. 2021. 5. 5. 운봉에서 구례로 향하다③ 이순신장군, 운봉에서 구례로 향하다 세 번째 이야기 -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운봉초등학교.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 당시 박롱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머물렀는데, 현재 백의종군로는 옛 운봉객사가 있던 운봉초교를 경유하고 있다]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3)운봉~밤재 1597년 4월 25일(음력) 아침 일찍 남원부를 출발하여 운봉에 도착한 이순신 장군은 박롱(朴巃) 사람의 집에 들르는데, 억수같이 퍼붓는 비에 더 이상의 진행을 중지하고 그 집에 머물게 된다. 그런데 이곳에서 백의종군 행로에 중요한 변수를 맞이하게 된다. 합천(율곡면)의 군영에 있던 권율 도원수가 순천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이때 장군은 급히 남원부에 있던 금부도사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대로 머물.. 2021. 5. 5. 남원부로 들어서서 운봉에 이르다②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두 번째 이야기 - 남원부로 들어서서 운봉에 이르다 ['유정부과' 각석. 남원시 이백면에서 운봉으로 가는 옛길, '여원재 옛길'에 있다. 임진왜란 때에 파병된 명나라장수 유정이 두 번째 지나갔다는 내용을 새겨놓았다]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②남원~운봉 “4월24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남원에 이르렀는데, 고을에서 15리 쯤 되는 곳에서 정철(丁哲) 등을 만났다. 남원부 5리 안까지 이르러서 내가 가는 것을 송별하였고, 나는 곧장 10리 밖의 동쪽(東面) 이희경(李喜慶)의 종 집으로 갔다. 애통한 심정을 어찌하리오.”[난중일기] 의금부에 투옥된 후 28일 만인 1597년(정유년) 4월 1일(음력) 출옥한 이순신 장군은 이틀을 한양에 머문 후, 권율.. 2021. 5. 5.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①연재를 시작하며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① 오리정(五里亭). 전북 문화재자료 제56호. 전북 남원시 사매면 월평리, 17번국도(춘향로)변에 있는 2층 누각. 예전 남원을 오고가는 사람들을 마중 나오거나 전송을 하던 곳이다. 지리산 이야기는 이번 호부터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로 이어가고자 한다. 1592년 4월 임진왜란 발발 이후, 1593년 3월부터 시작된 명나라와 일본과의 강화협상은 결국 1596년 9월 결렬되고, 왜군은 1597년 1월에 재침을 하게 된다. 즉 정유재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임금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게 부산 앞바다로 나아가 왜군을 맞아 싸우라는 명령을 내리나, 장군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출진(出陣)하지 않는다. 그 후 조선 조정은 이러한 명령불복종 등을 이유로 이순신 장군을 탄.. 2021. 5. 5.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①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의 지리산 유람① 1611년 음력 3월 28일(양력 5월 10일), 남원부사 유몽인(1559~1623)은 ‘목동’(木洞. 현 남원시 산동면 목동마을)으로 향하며 지리산 유람에 나선다. 한 달 전 지리산 유람에 동행하기로 약속한 승평(순천)부사 유영순(1552~1630)이 목동에 와있다는 소식을 접한 다음날이다. 삼각산, 금강산, 묘향산 등 팔도의 수많은 명산을 유람한 바 있는 유몽인은 오랫동안 마음에 두어왔던 지리산 유람을 수령 부임 2개월 만에 행동에 옮긴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모두 평안도와 경상도의 감사를 지낸 후 남녘 두 고을의 수령이 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유몽인은 선조 재위 말년인 1608년 1월 말에 도승지가 되었는데, 불과 이틀.. 2021. 5. 5. 불일폭포 가는 길 [쌍계사 십리벚꽃길] 지난 주말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 불일폭포 다녀왔습니다. 쌍계사 십리벚꽃길은 이미 꽃이 만개해 화사한 벚꽃터널으로 맞이하였고, 이제 곧 섬진강변도 꽃세상으로 변할 듯합니다. 분주하게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봄의 산자락에서, 시절 탓하며 움츠려있지 말라는 메세지를 받고 왔습니다. [조용섭의 지리산 이야기] 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3847 2021. 3. 24. 추강 남효온의 지리산 유람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추강 남효온의 지리산 유람 얼마 전, 조선시대 선비들의 ‘지리산 유람록’ 자료를 정리하다가 마음에 닿는 글을 만났다. 「지리산일과日課」라는 글을 남긴 추강 남효온(1454~1492)의 지리산 유람과 관련된 내용이다. 생육신, 방외인 등의 수식어가 그러하듯, 순탄치 않은 삶을 살다가 39세의 나이로 요절한 추강의 지리산 유람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유람노정과 더불어 문집 편찬 시 별도로 떼어놓은 시문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인 추강은 25세 때인 1478년(성종9)에 올린 상소 중, 소릉(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능) 복위 내용이 문제가 되어 당시 훈구파 대신들로부터 ‘미친 선비’로 지목되며 제도권 정치에서 배척당하였다. 그 후 추강은 출.. 2021. 2. 24. 이전 1 2 3 4 ··· 9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