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편지]
하늘빛 봄까치꽃들이 피고 /정일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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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현리'(銀峴里)에 살면서 여섯 번째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귀를 열면 늘 작고 착한 것에서부터 겨울을 밀고 오는 봄의 소리가 들립니다.
햇살이 따스하게 놀다가는 길가에는 어린 아기 손톱 같은 하늘빛 봄까치꽃들이
피어 봄을 알리고 있습니다.
근동에서 가장 일찍 피는 매화인 통도사 홍매도 지난 주부터 옹알이를 시작했습니다. 하마 이 번 주말쯤이면 그 붉은 첫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온몸에 가시를 달고 가장 엄격한 겨울을 견딘 엄나무의 가시도 순하게 붉어지고 있습니다. 나무에 물이 오고 있다는 것, 그건 땅이 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지난 해 봄에 어머니와 함께 만든 꽃밭 여기저기서 푸른빛이 터지고 있습니다. 겨울의 오랜 침묵 끝에 내 꽃밭으로 어떤 꽃이 찾아와 사랑을 고백할지
가슴 두근두근 합니다.
어머니는 겨우내 먹다 남은 동치미의 무를 꺼내 햇살에 말리고 있습니다. 오래지 않아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도 맛있는 무장아찌가 둥근 밥상에 오를 것입니다.
'이상난동'이니 '겨울의 실종'이니 말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겨울이 가야 봄이 시작되는 법입니다. 무릇 봄은 진실로 기다리는 자에게, 뜨겁게 열망하는 자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자연의 선물입니다.
인디언 체로키족(族)은 2월을 일러 '혼자 걷는 달'이라고 했습니다. 은현리에서도 아직은 좀 더 걸어야 봄이 올 것입니다. 그 길 위에서 문득, 봄소식처럼 오는 당신을
만나보고 싶은 날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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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아파트 사이의 화단에서 활짝핀 매화를 보았습니다.
미백색의 몸체에 연록이 보일듯 말듯 스치며 가장자리 테를 두른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개화였지만, 저에게는 새삼스럽게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또 하나의 신호로 보입니다.
지천명을 조금 넘긴 나의 시간들이 갖는 자격지심이나 불안감 같은 것들이 받아들이는
뭐....그런 것들이겠지요.
'이렇게 쉽게 보내서는 안되는데, 아직은 겨울이 지나야할 길이 한참이나 남았는데,
정말 이래도 되는거냐'며 쏜살같이 지나가는 세월을 두고 혼잣말로 나마 어눌한
항변을 하려하는데...
햐.. 시인은 봄까치꽃과 동치미, 무장아찌, 그리고 인디언의 '혼자 걷는 달' 이야기를
꺼내며 새봄을 준비하는군요. 모처럼 사람처럼 봄마중 준비를 하는 시인의 모습이
반가워 서툰 글마중을 해봅니다.
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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