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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글방/숲속의 글마당

덕천강가에 나가 보면/양곡

by 지리산 마실 2007. 2. 26.
[시인의 새봄 편지] 덕천강가에 나가 보면 /양곡

 
봄날은 일기예보의 황사소식에서 시작되는 지도 모릅니다. 산청에서 지리산을 믿음으로 살고 있는 나는 일 년 중에서 이 때가 가장 좋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서 우선 좋고 격식이나 치레 치장 없어도 만물이 제 색깔 제 모습으로 자태를 반짝여서 좋고, 눈치 안보고 새싹들이 되살아나는 활기찬 풍경들은 그저 바라만 봐도 즐겁습니다.

덕천강가에 나가 보면, 푸른 빛 같기도 하고 붉은 빛 같기도 하고 무지개 빛같기도 한 아리아리한 것들이 마구 하늘을 향해 피어오릅니다. 입덕문 아래 탁영대 근처의 돌복숭아나무 사이사이에는 쑥잎이 파릇파릇하고 취나물싹같은 것이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고 있습니다. 이럴 쯤이면 나는 남명 선생의 '덕산복거'(德山卜居)란 시를 떠올립니다.

산천재 입구의 산수유는 벌써 노오랗습니다. 뜰 앞의 남명매 꽃봉오리는 꼭 젖꼭지같이 부풀었습니다. 산천재도 단청으로 단장을 했습니다. 지리산 천왕봉을 쳐다봅니다. 한결 가까이로 다가오는 듯 합니다. 지난 가을에 제일 먼저 머리 가득 흰 눈을 뒤집어쓰며 겨울을 맞았으니 오는 봄도 제일 먼저 맞이하는지 나는 모를 일입니다. 그 아래 중턱에 자리한 법계사 적멸보궁 앞 섬돌에도 이 햇살은 머물 것입니다. 적멸보궁 옆 당귀밭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내내 꽃대만을 내세운 채 견딘 당귀뿌리들이 이젠 향기도 조금씩 풀풀 날리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릴 것입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니 이것이 곧 봄이다고한 선인의 말씀을 한없이 느꺼워합니다. 남명 선생의 '덕산복거'를 소리내어 읊어봅니다. "春山底處無芳草/只愛天王近帝居/白手歸來何物食/銀河十里喫猶餘"(봄 산 어디엔들 풀꽃이 안핀 곳 있으랴/다만 천왕봉을 사랑해서 가까이 와서 살고 있네/빈 손으로 와서 무얼 먹고 살겠는고/은하 십리(덕천강)를 보니 먹고도 남겠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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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주말 가족들과 함께 부산을 출발, 산청군 원지에서 지리산 북부지방으로 방향을 잡은 뒤, 성삼재 넘어 서남으로 돌아오는, 말하자면 지리산 투어를 하고 왔습니다.

인월의 어느 아는 집에 들러 볼 일을 보고는,
 뱀사골 입구 반선의 일출식당에도 잠시 들렀다가 일주일 만의 안부인사를 전하고 곧장 성삼재를 넘었습니다. 구례는 그냥 지나치고 오후 저녁나절 즈음, 하동 화개면의 의신마을로 들어가 오랜만에 '산악인의 집'에서(정영훈:화개119구조대장)의 일박을 하며 가족들과 함께 제법 많은 고로쇠물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다음날은 아침 일찍 정대장의 집을 나와, 인근의 칠불사,쌍계사,연곡사 사찰 순례를 하였고, 귀가는 하동 횡천면에서 28km 들어가야 있는 청학동을 들렀다가, 삼신봉 터널을 통과하여 산청 시천면-원지에 돌아오는 지리산 자락 순례를 마친 뒤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연곡사에서 이제 막깨어나는 산수유를 만나고는 참으로 마음이 환해졌었는데, 그 옆에
 서있는 범종각과 어우러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발길 떼기가 싫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길을 돌고 돌아 집으로 오는 길, 산청군 시천면 덕천강 옆 마치 버려진 듯한 옛 주유소 건물을 지나며 잠시 남명 선생과 입덕문을 생각하였고, 갑자기 넓어지는 도로를 지나다가 문득 봄, 졸음, 평화로움, 그리운 것들을 떠올렸었는데, 뜻밖에 시인은 봄편지를 보내와 아직도 그 기분 좋은 나른함에서 머물라 합니다.  

두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