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벗에게 부탁함` [중앙일보]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올 봄에는 저 새 같은 놈 저 나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봄비가 내리고 먼 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면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저 꽃 같은 놈 저 봄비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나는 때때로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 같은 놈이 되고 싶다 꽃이 귀해서, 새가 귀해서, 현대인의 삶과 가슴속에 봄비가 하도 귀해서 욕으로라도 꽃으로, 새로, 봄비로 불리고 싶네. 꽃이 지천이어도 꽃을 모르고 사랑과 고통이 지천이어도 사랑과 고통에 둔감해지네. 꽃으로도 나무로도 새로도 실패하고 겨우 냉혈인간이나 된 나에게 욕이라도 봄비 같은 놈이라고 해다오. 모두 잎일 때 꽃인 놈, 새가 사라진 뒤에도 새인 놈, 비 그친 뒤에도 봄비인 놈으로 기억해 다오. 나의 내밀한 행불행의 벗들이여. <김선우.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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