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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탐방]

악양 고소산성

 

[고소산성 길. 05년 5월 사진]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이 있는 상평마을을 아늑히 감싸고 있는 지리산 형
제봉(해발 1,115.2m) 능선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한산사(寒山寺)가 있다. 하
동군지 상 악양편 소상팔경(蕭湘八景)에 「운무(雲霧)에 잠긴 한산사의 저
녁 풍경」을 뜻하는 한산모종(寒山暮鍾)의 고즈넉한 작은 절집이다.

겨울 함박눈이 내리는 날 한산사로 오르는 길은 흰 벚꽃이 만개한 것처
럼 아름다운 눈 꽃길을 연출한다. 한산사 대웅전 축대 밑으로 난 산길을 따
라 0.7km 가면 고소산성이다. 악양은 북서쪽으로 지리산이 병풍처럼 둘러처
져 있고 서쪽으로 섬진강 물이 유장하게 흐르며, 남쪽으로는 동정호를 끌어
안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너른 악양 들판을 가슴 탁 트이게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사적 제
151호 하동 고소성(河東 姑蘇城)이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신라
시대의 석축 산성으로 성벽 둘레는 약 800m다. 높이 300m 정도의 능선을 따
라 5각형에 가까운 평면으로 쌓은 산복식석성(山腹式石城)으로 현재 성내
에 특별한 시설물들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 성의 내력에 대해서는 하동군읍지가 유일한 자료인데, 이 기록과 성
의 위치 및 규모로 보아 신라나 백제가 군사적 목적으로 쌓은 것으로 보인
다. 최근에는 이 산성이 5세기 초에 고구려 광개토왕이 신라를 거쳐 왜(倭)
를 토벌하면서 남하했을 때 축조한 고구려 계통의 성으로 보는 의견이 있기
도 하다.

성벽은 장방형의 가공석과 자연석으로, 바닥 너비 6m, 윗너비 2m, 높이
3.5∼4.5m의 단면 사다리꼴로 견고하게 축조했다. 산성의 동·북·서 삼면
은 성벽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으나, 서남쪽의 섬진강을 굽어보는 구간
은 거의 허물어져서 돌무더기만 남아 있다. 이곳은 지리산에서 서남향으로
뻗어 내린 산맥이 섬진강에 의해 끊어지면서 강의 양쪽은 험준한 비탈을 이
룬 곳이다. 뒤로는 준령을 등지고 섬진강의 큰 강이 앞을 가로막은 천연의
요충지로서 남해에서 호남 지방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지리산의 주능선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악양 들판을 굽어보는 시리봉∼형
제봉∼신선봉∼고소산성구간의 빼어난 산세 때문에 주말에는 산꾼들의 발길
이 끊이질 않는다. 형제봉은 우뚝 솟은 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와 흡사하
다해 붙여진 지명이다. 악양 들녘의 풍성함과 아름답고 푸르게 흐르는 섬진
강의 비경 그리고 섬진강 건너 지리의 지맥이 그대로 이어져 우뚝 솟은 백
운산의 자태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형제봉이다.

우리나라 어딘들 절집이 없으랴마는 악양에도 7개의 작은 사찰이 있다.
신선봉에서 정서리로 내려가는 길에 강선암(庵)이 있다. 옛날 땅속에서 부
처가 발견돼 이를 모셔놓은 절이 강선암이다.

 

[신선대 구름다리. 05년 5월 사진]

 


강선암에서 입석리로 내려서는 마을 뒤 논바닥에 거대한 입석(立石)이 마
을을 굽어보고 있다. 입석은 고대 거석문화의 일부분으로 장승문화와 함께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마을의 표시 혹은 경계로 삼았으
며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높이 약 6m, 밑둘레
약 9m의 거석으로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동신제(洞神祭: 마
을을 지켜주는 신에게 동민이 함께 드리는 제사)를 매년 섣달 그믐날 지내
는 풍속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악양벌과 섬진강]

입석리에는 마을의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는 입석 외에도 당산으로 모시
는 오래된 팽나무가 있다. 악양면 사무소에서 고향을 지키며 입석리에 사
는 강기용(54)씨는 매년 정월 보름날 마을 당산에서 지신(地神) 밟기를 통
해 마을 사람들의 화합과 안녕을 빌고 있다고 한다. 입석리 마을을 수호하
는 입석과 당산, 우물 앞에서 어른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입석리 마
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마을에 복(福)을 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석양에 물든 섬진강으로 돌아오는 돛단배와 강안(江岸)의 풍경이 아름다
운 악양 소상팔경의 원포귀범(遠浦歸帆)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여행의 행복
감을 느꼈다./심재근(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 회장)/


[2002년 경남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