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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탐방]

쌍계사, 흩날리는 다향(茶香)

쌍계사

한중기 기자 hana@gnnews.co.kr
2001-10-24 13:34:41

되새떼 群舞에 흩날리는 茶香
쌍계사 옥천 속세번뇌 말끔


겨울철 지리산의 화개골, 특히 쌍계사와 불일폭포를 찾아 나서면 색다른 감흥에 젖어볼 수 있다. 신라불교의 흔적과 신선이 되어 지금도 살고 있다는 고운 최치원의 족적에다 불일폭포의 뼛속까지 파고드는 우렁찬 위용이 자리하고 있는가 하면 근년 들어 무리 지어 창공을 나는 되새 떼의 군무를 감상할 수 있다.
사시사철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지리산의 풍광 가운데 불일평전 일원의 겨울철 운치는 눈이 없어도 돋보인다. 겨울이 길어질수록 여름철 그 시원스런 얼음으로 변해져 거대한 빙폭을 빚어내는 불일폭포와 불일평전 상공을 떼지어 날아다니는 되새 무리는 이곳이 바로 신선이 노닐었다는 삼신동이며 청학동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2년여 전부터 겨울철이면 찾아 드는 진객인 되새 떼들은 수천 마리가 한꺼번에 하늘을 뒤덮기도 해 겨울철이면 새들이 연출하는 군무를 감상하려는 행렬이 끊이질 않고 있다. 되새 무리가 예전엔 간혹 출몰하긴 했으나 그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2년 전부터 다시 모습을 드러내 이곳 주민들은 큰 길조라며 좋아하고 있다. 되새 떼의 장관을 보려면 가벼운 산행을 마치고 해질 무렵에 쌍계사 주변의 겨울하늘을 향해 보면 된다.


우리나라 차(茶)문화의 산실인 화개골에는 그윽한 차향과 함께 융성했던 불교문화 신라의 범패음곡이 서려 있는 쌍계사가 있다. 화개천을 가로지르는 쌍계교를 지나면 쌍계사의 관문임을 쉽게 알 수 있는 "雙磎", "石門"이라고 큰 바위에 새겨진 각자를 볼 수 있다. 최치원의 글씨로 알려진 이 각자는 자연석에 굵고 힘차게 새겨져 있다.


즐비한 음식점과 노점상들이 자리하고 있는 길을 따라 매표소를 지나면 왼편 숲 속에 커다란 비석이 있다. 김대렴(金大廉)공이 이 땅에 차를 전래한 것을 추원하는 비석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흥덕왕 3년(828)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김대렴이 차 종자를 가지고 오자 왕이 그것을 지리산에 심게 했다고 적고 있다. 아울러 차는 이미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 때에 번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대렴이 차 종자를 처음 심은 곳, 즉 차시배지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여러 조건으로 볼 때 화엄사 인근이 아닐라 쌍계사 부근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쌍계사 입구에 김대렴의 차시배 추원비가 세워져 있다.
차 향 그윽한 분위기를 생각하면서 숲 속 길을 조금 오르다 보면 "삼신산 쌍계사"라고 쓰인 현판이 보인다. 일주문과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면 최근에 세운 8각 9층 석탑이 있다. 그리고 한 계단을 더 올라야 대웅전이 나타난다.


대웅전 바로 아래 뜰에는 국보 47호인 진감선사 대공탑비가 있다. 쌍계사를 크게 중 창건 한 진감선사와 뜻을 기리기 위한 부도탑비이다. 최치원이 쓴 글 2천4백17자가 음각 되어 있다. 환영스님이 글자를 새겨 넣은 이 비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금석문 가운데 으뜸이다. 또한 신라 불교사 연구의 귀중한 사료이기도 하며 2m가량의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임진란 당시 왜병에 의해 파괴되어 금이 가 있고 또 6.25전란 와중에 총상을 입어 훼손되어 있지만 대체로 온전하다. 진감선사의 부도탑은 부도탑비와 떨어진 왼편 산길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데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경내에는 또 팔영루(八泳樓)가 있는데 진감선사 혜조가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여덟 음률로 범패를 작곡한 곳으로 전해진다. 신라에 범패음곡을 널리 보급한 불교 음악의 중심지로서 쌍계사는 유명하다.


쌍계사는 원래 옥천사였다고 한다. 신라 성덕왕 22년(732)에 삼법화상이 당나라에서 육조혜능의 머리뼈인 정상(頂上)을 봉안해 왔을때 "康州智山下 雲裡葛花處"(강주(지금의 진주) 지리산 눈 덮인 산에 칡꽃이 만발한 곳)이라는 몽수를 받았다한다. 그래서 그곳에 정상을 안치하고 이후 진감선사가 이를 봉안할 절을 중창했다. 절 이름은 옥천사이며 정강왕(正康王)때인 서기 886년에 쌍계사로 바뀌었다. 왕이 두 개의 시내가 합쳐 흐른다는 지형적 특색으로 이름을 정해 왕명으로 바꾸었으며 최치원은 왕명을 기념해 자연석에 "쌍계""석문"을 새겼다 한다.


쌍계사에는 약수가 여럿 있는데 그중 옥천(玉泉)이란 약수터가 유명하다. 절이름이 원래 옥천사로 정해졌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옥천은 대웅전 앞뜰의 약수가 아니라 스님들만 이용하기 위해 일반에 내놓지 않고 있다. 옥천은 최근 스님에 의해 물줄기가 하나 더 발견됐는데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물줄기가 서로 달라 물빛과 맛이 서로 다르다. 음수와 양수로 나누어지고 있는데 물맛이 그만이지만 모두 스님들과 귀한 손님들 몫으로 정해놓고 있다. 쌍계사 이전의 옥천사 유래가 담겨진 옥천의 음양수를 맛볼 수 있도록 하는 사찰의 배려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신라 불교문화를 되새기면 인근의 국사암과 불일평전 그리고 불일폭포를 찾아 나서보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불일폭포에 가기 앞서 잘 알려진 등산로를 따라 쌍계사에서 2백m 쯤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2백m 가량 내려가면 조그마한 암자가 있는데 국사암 이다. 별다른 특징은 없으나 입구의 사천왕수(四天王樹)가 특이하다. 진감선사가 심었다는 거목이다. 사방으로 뻗은 네 가지의 사천왕수는 여성의 하반신을 빼어 닮아 많은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국사암 가는 삼거리에서 불일 폭포방향으로 걷다보면 커다란 반석의 바위가 있다. 최치원이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환학대이다. 여기서부터 최치원이 찾아 다녔다는 이상향, 즉 삼신동의 운치가 느껴진다. 어디선가 청학이 날아들 듯한 분위기를 맛보며 숲 속 터널을 지나면 널따란 평전이 나온다. 불일평전이다. 불일휴계소로 불리는 아담한 집이 있다. 변규화씨가 가꾼 집과 정원이 특이하다. 정원에는 한반도의 모양새를 한 조그마한 못이 있다. 반도지(半島池)로 불리며 바로 곁에는 아기자기한 돌탑이 가꿔져 있는데 소망탑으로 명명되고 있다.


불일휴게소에서 2백m가량 깎아지른 듯한 비탈길을 내려가면 58m의 거대한 불일폭포를 만날 수 있다. 2단 폭포로 하늘에서 떨어지듯 하는 물줄기가 중간의 학연(鶴淵)에서 한숨 돌려 다시 쏟아져 내린다. 사방이 석벽으로 둘러쳐진 원통형 수직 직벽 위로 하늘마저 간신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폭포 오른쪽에는 불일암 터가 있는데 보조국사 지눌이 수도했다고 한다. 지난 83년에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다. 그 곁으로 삼신봉 가는 등산로가 열려있다.


여름철 불일폭포는 우렁찬 물줄기로 으뜸 피서지이지만 겨울철 불일폭포는 한 방울 두 방울 물줄기가 차례로 얼어붙어 한겨울이 되면 거대한 빙폭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불일폭포 주변에는 기암절벽과 노송이 어우러져 마치 어디선가 학이 찾아들 듯한 환상에 사로잡히는 경관이 있다. 최치원과 남명 등 선인들이 이곳을 삼신동 청학동으로 보았던 까닭을 알 것도 같은 분위기이다.


이 겨울에 신라 불교와 지리산의 그윽한 차향, 그리고 청학이 노닐 듯한 불일의 정취에다 되새 무리의 군무를 찾아 한번쯤 나서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