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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탐방]

지리산 마을, 궁항리 가는 길

 

 [궁항지. 2001년 농업용수 공급을 위하여 건설되었다. 정면 왼쪽에 보이는 산이 주산]

 

▣지리산 마을, 궁항리 가는 길.

 

경남 산청군 시천면과 하동군 옥종면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되는 낙남정맥 마루금의 고운재 뒤, 790봉에서 분기(分岐)된 산줄기인 오대 주산 능선을 경계로 서로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 오대 주산 능선이 東으로 달리다가 산줄기를 마감하는 곳에 지리산의 강, 남명 조식 선생이 읊조렸던 두류산 양단수가 합쳐진 덕천강이 산자락을 에돌면서 흐르고 있다. 이 강은 산청군 시천면, 삼장면에서 발원하여 덕산에서 합쳐진 뒤, 산청군 단성면, 하동군 옥종면, 진주시 수곡면의 마을들을 적시며 흐르는데, 특히 옥종면은 덕천강이 동쪽 경계를 이루고 있다.

 

단성에서 20번 국도로 타고 지리산 쪽으로 가다 보면 양반촌으로 잘 알려진 남사마을과 청계 갈림길을 차례로 지나고, 도로는 잠시 고도를 높였다가 길게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이 내리막의 거의 끝 지점에 삼거리가 있다.(칠정 삼거리). 왼쪽으로 크게 꺾이는 길은 하동 옥종 방향이고(옥종 유황불소온천 안내판), 오른쪽으로 약간 휘어지며 직진하는 길은 지리산 산행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덕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칠정 삼거리에서는 정면 오대 주산 능선 끝자락을 보듬으며 물줄기의 방향을 크게 트는 덕천강을 만나게 된다.

 

 [남사마을 영모재(永慕齋) 성주 이씨 재실이다]

 

오대 주산 산길 들머리가 있는 하동군 옥종면 궁항리로 가기 위해서는 왼쪽 옥종 방향으로 진행한다. 궁항리는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마을 서쪽 길마재(낙남정맥과 오대 주산능선 분기점인 790봉 아래 고개) 너머의 하동군 청암면 소속이었는데, 주민들의 생활편의를 위하여 이웃하고 있는 위태리,회신리와 함께 옥종면으로 편입되었다고 한다. 궁항(弓項)은 우리말로 활목, 즉 지형이 마치 활처럼 휘어진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칠정 삼거리에서 옥종으로 이어지는 한갓진 1005번 지방도를 진행하면 하동딸기 입간판이 서있는 두양교를 건넌다. 이 다리가 산청군(단성)과 하동군(옥종)을 이으며, 다리 아래 흐르는 덕천강이 군의 경계가 된다. 들어선 마을의 이름은 옥종면 두양리, 귀주대첩의 영웅, 은열공 강민첨 장군의 고향이다. 좁은 이차선 도로이지만 곧게 뻗어있어 모처럼 거침없이 달릴 수 있다. 곧 이어 종화리를 지나면 짧은 고갯길이 기다리고 있다. 지도상에 까막고개로 나와있는 곳이고, 고개를 넘어선 마을의 이름은 안계리인데, 이 고개에는 그냥 흘러보낼 수 없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까막고개의 본래 전해 내려오는 이름은 가마고개라고 한다. 옥종면이 서부 경남에서 진주와 더불어 유림의 세가 가장 왕성하였다는 사실을 뒷받침이라도 해주듯, 조선시대에 이 고개를 사이에 두고 살아가던 양반 사대부간 자존심을 건 명분 싸움이 이 고개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축복과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할 결혼이, 어처구니 없이 양 가문의 며느리들을 죽음으로 내몰게 한 이야기의 전말은 이러하다.

 

가마고개 설화는 당파를 달리하는 두 명문 사대가 집안의 가마가 좁은 고갯길에서 맞닥뜨린 데서 시작된다. 두 가마에는 혼례를 막 치른 신부들이 타고 있었다. 하지만 가문 대대로 원수였던 두 집안은 먼저 길을 비켜주는 쪽이 무릎을 꿇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한 치의 양보 없이 대치한다.

이 소식을 들은 두 집안의 문파 사람들은 아예 고갯길로 찾아와 끝까지 버티라고 응원을 보낸다. 몇 달간 첨예하게 대치된 상태에서 지쳐버린 두 가문은 결국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로 암묵적 합의에 이르고, 신부에게 가문을 위한 희생을 강요한다. 두 집안은 신부들을 절벽 밑으로 떨어뜨린 뒤 빈 가마를 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얼마 뒤 거대한 열녀비가 세워진다.

 

동서분당이 생긴 초기에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문인들은 같은 동인으로 동색이었다.  그 후 이산해와 유성룡의 대립, 우성전과 이산해의 대립, 유성룡과 이발의 대립, 우성전과 이발의 대립 등이 복합되어 조식 문하인 이발·정인홍·최영경·정여립·이산해·허균 등이 북인이 되고, 이황 문하인 유성룡·우성전·김성일·정구·정경세·장현광 등이 남인으로 갈라졌다. 그 이후로 남인과 북인이 반목하여 가마고개의 비극을 자아내며 400여년을 지내온 것이다.

 

명분이라는 것, 고금을 관통하며 지금도 버젓이 우리 삶의 향도로서 행세하는 것, 부디 내려놓고 벗어남에 인색하지 말자는 다짐으로 애틋한 사연의 고개를 넘는다

 

고갯마루, 조용한 마을 입구에는 모한재(慕寒齋)라는 이정표와 겸재(謙齋) 선생 유적비가 서있다. 안계 출신의 겸재 하홍도(河弘度) 선생(1593~1666)은 조선 중기(광해군,인조) 代의 학자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경학 공부와 후진 양성에 힘써온 분이고,  모한재는 겸재 선생이 창건한 건물로 미수 허목 선생이 현판을 썼다고 전해진다. 녹록치 않은 역사와 후손들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마을이다.

 

 

 [가마고개의 겸재 허홍도 선생 유적비]

 

월횡 삼거리를 만나면 청암(청학동) 방면으로 우회전을 한다. 왼쪽 도로 옆 훤하게 드러나는 계곡으로는 이따금씩 너르고 멋진 암반 지대도 나오고 주변의 전답도 꽤 너르다. 문득 나지막한 산자락에서 늦가을의 모습을 발견하다. 마치 잊어버린 것을 되찾은 듯 차에서 내려 큰 숨 들이키며 한참을 서성거려 본다.

 

 [월횡리의 늦가을 풍경]

 

드디어 궁항리 들어가는 길목, 갈성 삼거리를 만나면 청학동 방향의 직진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곧 나타나는 위태 삼거리 이정표에는 마을 방향으로 당당하게 59(도로번호),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이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 도로는 아직 운행을 할 수는 없고, 붉은 X표시로 통행금지를 알리고 있다. 국비지원지방도로 산청의 시천면과 삼장면에서 도로공사가 진행 중인데, 머지않아 이 길과 연결되며 지리산 산줄기를 관통하는 도로가 또 다시 생길 예정이다.

 

정면 약간 왼쪽으로 비켜선 저 멀리로 주산의 모습이 보인다. 삼거리 인근의 집에 할머니가 나와 계시길레, 주산과 오대사에 대해 몇 마디 여쭤보았다. “오대사는 저기 저 먼당에 있었지. 나물 캐러 많이 다녔어. 그리고 저 위 불당골에는 예전에 쌀 씻은 뜨물이 내려오기도 했어.라며 회상에 잠기듯 말씀을 해주신다. 그러시더니 오대사는 저기 있어. 라며 가리키시는데, 새로 지은 마을의 오대사를  말하시는 모양이나 둘러보지는 않았다

 

위태 삼거리에서 백궁선원 이정표가 표시하는 방향으로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며 커브길을 돌자, 왼쪽으로 산골마을 답지 않게 산뜻한 양옥집들이 들어선 마을이 나온다. 오율마을이다. 그리고 길 오른쪽에 궁항지(弓項池)가 있다. 궁항지는 2001년에 완공된 농업용수용 저수지이고, 지금의 오율마을은 저수지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자 다시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궁항지 옆의 오율마을. 저수지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어 다시 조성하였다 한다]

 

궁항지, 어감이 참 특이하다. 저수지의 둑을 거닐며 고요한 수면을 응시하니 오후 저녁나절로 들어가는 산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 북쪽 하늘금을 이루는 곳에 우뚝 솟아있는 주산은 오후의 나른한 햇살을 받아서인지 졸음에 빠져있는 듯하다.

 

 [산그늘이 길어지는 궁항지. 정면 뒤의 산이 주산]

 

오율마을에서도 할머니 한 분을 만나 주산과 오대사에 대해 여쭤보았다. 역시 망설임 없이 오대 주산이라고 부르시는데, 44년 째 이 마을에 들어와 살고 계신다는 할머니의 말씀은 비교적 자세하다. 오대사는 저 먼당에 있었고, 지금의 백궁선원 자리에는 수정사가 있었어. 오대사는 계시던 스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아무도 돌보지 않아 지금은 폐허가 되어버렸어.

 

다시 차에 올라 잠시 길을 따르면 오른쪽으로 해정사 이정표와, 너덧 채의 집이 연이어 나온다. 해정사가 있는 좁은 골짜기는 불당골이고, 바로 위의 마을(역시 오율마을이라고 함) 오른쪽으로 드리워진 골짜기는 시양골이라 한다. 마을 바로 위, 도로를 벗어나며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 좁은 길이 바로 국선도 수도장인 백궁선원 가는 길로 오대 주산의 산길이 열려있는 곳이다. 이 길은 약 1km 정도 시멘트포장도로로 이어지나 차량운행에 큰 어려움은 없다.

 

 [불당골에 있는 해정사]

 

 

 

 [국선도 수행도장인 백궁선원]

 

도로를 따라 그대로 진행하면 궁항마을이 나온다. 마을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도로는 시멘트 포장길로 바뀌며, 낙남정맥의 고개인 길마재를 넘으며 하동군 청암면으로 들어선다. 4년 전, 낙남정맥 답사시 하산을 한 곳이라 감회가 새롭다. 그 때는 이 곳이 청암면 관할이었고, 길마재 도로의 포장도 되지않았었다. 휴대전화마저도 잘 터지지 않던 그 산골 오지마을은 도로와 통신시설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만 하산 후 휴식을 취하던 마을회관의 모습은 여전하다.

 

 [궁항마을회관]

 

아무래도 이번 답사의 테마로 잡은 오대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더욱 많은 자료의 수집과 공부가 필요할 듯하다. 상대,중대,하대,좌대,우대 등 다섯 군데의 臺가 있어서 그리 불리어온 것인지, 혹은 다섯 명의 성인이 나와서 그리 부르게 되었는지, 이름의 유래에 대한 옛 자료를 아직 찾아보질 못했다. 경남신문 강동욱 기자의 문화기행에서 남명 선생의 흔적을 더듬어 보았고, 권적 선생의 수정사기(水精社記)에서 結社의 모습만 확인하였을 뿐이다.

 

고려시대 대각국사는 이 첩첩산중의 아득한 골짜기를 수행의 터전으로 지목하였고, 이 말을 좇아 수정사라는 수행단체가 결성되었다는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있는 곳이라, 그 흔적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깊은 지리산의 역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야영장소로 물색해둔 궁항지 옆의 쉼터로 다시 돌아 왔다. 문득 적막감이 몰려온다. 오늘 만났던 풍경들이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더니 까맣게 지워진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량 이외에는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없다. 나그네에게 무심한 모든 것이 오히려 고맙다. 궁항지에도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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