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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탐방]

지리산의 여의주, 화엄사

'지리산의 여의주' 구례 화엄사



억센 氣마저 품어안은 부처의 뜰 번뇌를 쓸어내는 빗질 소리가…

한반도의 어머니산 지리산. 전남 구례와 전북 남원, 경남 하동, 산청, 함양 등 3개도 5개군 15개면에 걸쳐있는 지리산은 그 둘레만도 850리에 달한다. 영험한 기운의 지리산은 삼국시대에는 불교의 탯자리였다. 구례의 화엄사, 하동의 쌍계사, 남원의 실상사, 산청의 내원사 등 대찰이 지리산 너른 품에 안겨있다. 이중 가장 크고 장엄한 사찰이 화엄사다.

이른 아침 ‘지리산의 여의주’라는 화엄사로 올랐다. 단풍 곱게 물든 진입로는 얇은 안개 옷을 입어 더욱 고혹적이다. 계곡을 따라 가벼운 걸음으로 오르다 보니 벌써 절 앞. 스님들이 빗자루 하나씩 들고 바닥을 쓸고있다. 낙엽을 쓸어내고, 지난 날의 발자국들을 지워내고, 마음을 비워내고 있었다.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년) 연기조사가 창건했다는, 1,500년이 넘은 사찰이다. 현존 목조건물로는 가장 크다는 각황전(국보 67호)과 그 앞의 석등(국보 12호), 4마리의 사자가 탑신을 떠받치는 4사자3층석탑(국보 35호), 영산회괘불탱(국보 301호) 등 국보만도 4개에 이르는 문화재의 보고다.

사찰 건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리산의 억센 맥을 누그러뜨리려 세웠다는 각황전이다. 지리산이 아니라면 과연 이런 건물을 앉힐 수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웅장하다. 겉에서 보기엔 2층인데 안은 하나의 방으로 이뤄져 있다. 각황전 옆으로 108계단을 오르면 4사자3층석탑이 있다.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대웅전을 지나 계곡을 따라 100m 올라가면 구층암이다. 문화해설사 박미연씨는 “화엄사에 왔다가 구층암을 안보고 가면 분명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천불보전이 있는 구층암의 가장 큰 볼거리는 승방 건물이다. 이 건물은 남북 양 방향 어디에서 보아도 정면이 되는 특이한 구조다. 남북 양쪽에 출입문이 있고, 독립된 마당을 갖춰 남쪽에서 보면 남향집이고 북쪽에서 보면 북향집이 된다. 이 건물이 유독 사랑받는 이유는 북쪽 마루에 있는 2개의 모과나무 기둥 때문이다.

서산의 개심사처럼 이리 휘고 저리 틀어진 나무를 기둥에 사용한 예는 여럿 있다. 하지만 이 모과나무 기둥은 베어낸 나무를 전혀 가공하지 않은 채 살아있던 나무 모양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천불보전 앞에는 살아있는 모과나무 한 그루, 죽어서 승방 기둥이 된 모과나무를 마주보고 서있다. 화엄사 (061)782-0019

지리산이 섬진강을 넘지 못해 아쉬운 듯 멈춰선 곳, 그 바로 강 건너편에 오산이 오롯이 솟아있다. 풍수에선 오산이 ‘섬진강 물을 마시는 자라의 형상’이라 말한다. 높이는 비록 531m에 불과하지만 섬진강과 지리산을 바라보는 최고의 전망대다.

이 산의 꼭대기에 사성암이 있다.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본래 오산에 있어 오산암으로 불리다가 원효, 의상, 도선, 진각 4대 성인이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산의 정상 부분은 기암으로 이뤄졌고 그곳에 터를 잡은 사성암의 건물들 또한 기묘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기다란 기둥 세개에 의지한 약사전은 깎아지른 절벽에 붙어있고, 산신각은 바위틈에 구겨넣은 듯 자리잡고 있다. 계단을 타고 약사전 안에 들어가면 고려때 새겨진 마애불을 볼 수 있다.

사성암 산신각에서 돌담 너머로 내려다 보면 곡성에서 흘러 들어온 섬진강이 오산을 크게 감싸 안고 하동으로 내려간다. 섬진강 물길 너머로 구례의 너른 들판이 풍요롭게 펼쳐지고 그 뒤로 지리산이 웅장하게 버티고 섰다.

오산 사성암을 오르기는 어렵지 않다. 사성암까지 시멘트 포장길이 뚫렸기 때문이다. 경사가 급해 조심해서 운전해야 한다. 사찰에서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왕복 2,000원. 사성암 (061)781-4564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