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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人들의 智異山

지리산 청학동기(智異山 靑鶴洞記)

■미수기언/기언(記言) 제28권 원집(原集) 하편/산천(山川)

▣지리산(智異山 청학동기(靑鶴洞記)/허목(許穆)

남방의 산 중에서
지리산이 가장 깊숙하고 그윽하여 신산(神山)이라 부른다. 그윽한 바위와 뛰어난 경치는 거의 헤아릴 수 없는데 그중에서도 청학동(靑鶴洞)이 기이하다고 일컫는다.

이것은 예부터 기록된 것이다. 쌍계(雙溪) 석문(石門) 위에서 옥소(玉簫) 동쪽 구렁을 지나는 사이는 모두 깊은 물과 큰 돌이라 인적(人跡)이 통하지 못한다. 쌍계 북쪽 언덕을 좇아 산굽이를 따라서 암벽을 부여잡고 올라가 불일전대(佛日前臺) 석벽 위에 이르러서 남쪽으로 향하여 서면, 곧 청학동이 굽어보인다. 돌로 이루어진 골짜기에 가파른 바위요, 암석 위에는 소나무ㆍ대나무ㆍ단풍나무가 많다. 서남쪽 석봉(石峯)에는 옛날 학 둥우리가 있었는데, 산중의 노인들이 전하기를,

“학은 검은 깃, 붉은 머리, 자줏빛 다리로 생겼으나 햇볕 아래에서 보면 깃이 모두 푸르며, 아침에는 빙 돌아 날아올라서 하늘 높이 갔다가 저녁에는 둥우리로 돌아오곤 했는데, 지금 오지 않은 지가 거의 백 년이 된다.”

하였다. 그리하여 봉우리를 청학봉(靑鶴峯), 골짜기를 청학동이라고 하였다.
남쪽으로 향로봉(香爐峯)을 마주하고, 동쪽은 석봉(石峯) 셋이 벌여 솟았으며, 그 동쪽 구렁은 모두가 층석기암(層石奇巖)인데 어젯밤 큰비로 폭포수가 골짜기에 가득하였다. 그 대(臺) 위의 돌에는 완폭대(玩瀑臺)라고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는 못이 있다.

숭정 13년(1640, 인조18) 9월 3일에 나는 악양(嶽陽 하동(河東) 악양(岳陽))에서 섬진강(蟾津江)을 거슬러 올라가 삼신동(三神洞)을 지나 아침에 쌍계의 석문을 보고, 또 쌍계사(雙溪寺)에서 최 학사(崔學士 최치원(崔致遠))의 진감선사비(眞鑑禪師碑)를 관람하였는데, 천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끼 사이로 보이는 문자를 읽을 수 있었다. 이어서 불일전대에 올라가 청학동기(靑鶴洞記)를 지었다.

[민족문화추진회 번역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