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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人들의 智異山

■산중일기<상> 9.01일 ~ 9.10일[끝]

 

[현대불교www.buddhapia.com/기획연재/정시한의 산중일기/'부디엔스'님의 글]

 

9월

1일 아침에 얼음이 얼었다. 맑았다.
답장을 써서 함양 관아의 아노편에 부치고 또 약간의 짐을 보냈다. 경수도 짐을 지고 갔다. 군자사 무량굴의 승려 석륜이 왔다가 바로 갔다. 의철 수좌가 와서 보고 가싿. 경수가 약간의 잡물을 지고 왔다.

2일 맑았다. 아침에 얼음이 얼었다.
의철 수좌가 아침식사를 차려주었다. 아침 식사 후에 파자 및 사철 수좌와 함께 묘적암을 보러 가니, 지나다 잠시 머물고 있는 승려 계학이 맞이하였다. 내친 걸음에 서암의 터를 가서 보았는데 군자사의 승려 자신이 와서 인사를 하였다. 또 묘적암으로 돌아가서 전대에 올랐다가 방안으로 들어가 앉아 있었더니 박광선이란 사람이 와서 인사를 하는데 나이는 을축생이라고 하였다. 집은 함양 읍내 서원촌에 있다고 그가 말하였다. 한동안 있다가 돌아왔다.

길에서 그물을 쳐서 매를 잡는 자가 산봉우리에 여기저기 있는 것을 보았다. 무주암으로 돌아오니 자신이란 승려가 소주와 과자 두어 그릇과 산과일을 주기에 암자의 승려들과 나누어 먹었다. 자신은 작별하고 떠났다.

태남이 돌아와서 함양태수의 서찰을 전하고 파자로 하여금 행선축원을 써 주어서 암자의 벽에다 부치도록 하였다.

3일 서리가 내리고 맑았다.
여행이 아침을 차려주었다. 파자와 함께 암자의 승려를 작별하고 산을 내려왔다. 의철과 사철 양 수좌가 함께 천인암까진 내려왔다. 군자사의 승려가 왔다가 바로 돌아갔다. 또 의철과 사철 양 수좌와 작별하고 능연과 함께 견성암으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태감 승려와 작별하고 군자사에 도착하여 법당에 앉아 있노라니 전이와 해철 노장과 법안과 성문과 홍간과 자신 등 여러 승려가 와서 보았다.

운봉 노인 강응해를 견성암에서 만났는데 군자사로 뒤따라 와서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나이는 82세인데 기력이 강건하여 40, 50대 사람과 차이가 없었다. 절에서 저녁밥을 지어 주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 군자사의 승려와 작별하고 말을 타고 금대암으로 올라갔는데, 파자는 안국사를 구경하고 혼자서 입이와 함께 금대암으로 온다고 하였다. 종장 대오 및 계심이 나와서 영접하였다. 노승 영안은 나이가 80세였다.

잠시 후에 파자가 오고 안국사 승려 일잠과 원기 등 5,6인이 왔다. 일잠이 일겸의 의견에 따라 와서 큰 배 3개를 대접하였다. 대오는 꿀물을 주었다. 고향에 편지 3장을 썼다. 촛불을 밝혀놓고 다써서 봉하였다. 또 함양태수에서 편지를 써서 금은화를 요구하였다. 걸어서 25리를 가고 말을 타고 5리를 갔다.

4일 맑았다.
대오가 아침을 차려 주었다. 경복이 군자사로부터 와서 유숙하였다. 새벽에 문옥 수좌가 와서 보고 갔다. 아침 식사 후에 입이를 원주로 보내고 경수를 함양으로 보냈다. 문옥을 동암으로 가서 보냈다. 두 암자의 도량을 두루 살펴보니, 지대가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았다. 안산은 매우 정교하였다. 남향에다가 바람이 닿지 않아서 명당이란 이름을 얻은 것이 헛된 말이 아니었다.

실상사 승려 계오와 영기가 함께 와서 보고 저녁을 제공한 뒤에 작별하고 떠났다. 안국사의 승려 일잠과 택종이 와서 보고 갔다. 일겸이 와서 보고 갔다. 안국사 서암 승려 정찬은 나이가 을축생인데 와서 보았다. 각가지 자반을주고 조용한 대화를 나누다가 갔다. 본 암자의 승려 담희가 단 향기가 나는 큰 배 3개를 주고 갔다. 계오가 향기로운 버섯을 주고 갔다.

5일 흐리고 가끔 우박이 내렸다.
아침 식사 후에 파자와 함께 동암으로 가서 문옥을 보니, 계오 대사도 따라 왔다. 일겸이 와서 보고 한동안 있다가 돌아갔다. 경복은 군자사로 돌아갔다. 경수가 함양에서 금은화와 형개의 이삭을 가지고 돌아왔다. 또 파손된 죽립으로 보수할 것을 가지고 왔다. 저녁을 먹은 뒤에 한 그릇을 달여서 먹었다.

6일 맑았다.
안국사 승려 일겸, 원기, 각희 등이 두부를 만들어 아침을 차렸다. 아침 식사 후에 태남이 군자사에서 왔다가 바로 갔다. 동암에 가서 문옥 수좌와 반나절 동안 대화를 나누었는데 계오가 뒤따라 와서 바로 함께 돌아왔다. 경복이 양미를 가지고 군자사로부터 왔는데 저녁을 먹인 후에 돌려보냈다.

동암의 해균은 감을 매우 빠르게 잘 깎았다. 날이 저문 이후에 천여 개를 깎는다고 하니 역시 기이한 광경이었다. 계오대사의 양제인 묘연이 마을 집으로부터 들어왔다.

7일 흐리다가 오후부터 비가 내렸다.

아침 식사 후에 파자와 함께 금대암으로부터 출발하니, 대오, 문옥, 계심 등이 몇리 밖까지 전송을 해 주었다. 선익이 물품을 지고 귀창촌에 이르니, 안국사의 승려 일겸과 각희가 창촌 앞에 뒤따라와서 잣 1승과 짚신 한 켤레를 주고 모두 작별하고 갔다.

안국사 동암의 각자승인 채간을 길에서 만나 함께 동행하여 오도현에 도착하였는데, 산길이 무척 험하여 걷기도 하고 말을 타기도 하면서 겨우 재를 넘었다. 30리를 가서 제안역 마을에 이르렀다. 비를 무릅쓰고 빠르게 달려 함양읍 서쪽에 있는 백연서원이 있는 마을 김후달의 집에 이르러서 파자를 함양 태수에게 보냈다. 사례하기 위해서다.

석양에 사근찰방 우홍성이 함양태수와 함께 왔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가 날이 어두워진 뒤에 우독우는 도로 가고, 밤이 깊은 뒤에 태수가 돌아갔다. 채간 승려가 와서 유숙하였다.

8일 가끔 흐리고 맑았다.
남하느이 승려 승준이 와서 보았는데 나이는 경신생이었다. 경치 좋은 산에 유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동안 있다가 채간과 함께 갔다. 식후에 김후달과 함께 파자를 데리고 이은대에 올라가서 읍내를 굽어보니 반듯한 큰 들에 논들이 몇천 석 두락이었는데 농사가 흉년이 들어 모양이 쓸쓸했다. 조대에 내려가서 노는 고기를 구경하였다. 파자를 보내 행장을 꾸리도록 하고 혼자서 후달과 함께 성내로 걸어가 학사루에 오르니, 승준 등 4,5 명의 승려가 와서 보았다.

태수가 양식과 반찬 및 노자를 넉넉하게 주고 또 술자리를 열어서 송별연을 배풀어 주었다. 석양이 되어 아쉬운 작별을 하고 동문으로 서둘러 나오면서 주주 뒤돌아보니 태수가 학사루 머리에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20리를 가서 개평촌에 이르러 생원 황재겸을 찾아보았다. 그는 곧 상주 중모현에 사는 생원 황재후의 아우인데 이곳에 처가살이를 하고 있었다. 인망이 있는 자 중에 노생원 봉, 구, 익 삼형제가 저녁을 잘 대접하였다. 한동안 앉았다가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주인이 중모현의 황씨 누이 앞으로 서찰을 보냈다. 또 짐을 나누어 태남 편에 먼저 보냈기 때문이다.

함양 태수가 아노인 분상 및 관아의 말로 하여금 양식과 찬을 싣고 수행토록 하고 또 아전 조계달과 사령 김제일을 보내서 숙소에서 편히 쉬게 하였다.

9일 맑았다.
아침에 생원 황재겸과 생원 노봉이 그의 아들 노세당을 데리고 와서 보았다. 그리고 함께 가서 일두 정여창 선생과 옥계 노정이 출생하여 성장한 집 터를 보았다. 또 시냇가에 괴정과 석대 위에서 안산을 감상하고 산천의 형세를 살펴보니 산세가 둘러 있고 주산이 춤을 추는 듯하고 수구가 촘촘하며 들녘이 드넓고 교목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으며 민가 100여 채가 사대부의 집들과 서로 섞여 있어서 상당히 풍요로와 보였다. 선현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어서 보통 다른 곳과는 차이가 있었다.

아침 식사 후에 황생원과 노생원을 작별하고 아전과 사령도 돌려보내고 출발하여 큰 냇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안음현을 지나 화림동구에 이르러서 향교 앞에 있는 긴 다리를 건너 점풍루에 올라가서 보니 심진과 화림 두 고을에서 흘러오는 큰 냇물이 점풍루 앞에서 합해지고 푸른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고 조대가 나열되어 있으며 인가가 송죽 사이와 시내 가에 분포되어 있어서 마치 신선이 사는 별세계처럼 느껴졌다.

한동안 조망하다가 뜰에 내려서 배회하노라니 집을 옮겨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복로로 ㅗ딘 다리를 건너서 시내를 따라 올라가니 계담과 철벽이 곳곳이 볼만하였다. 10여리를 더 가서 군자대에 이르니 골짜기가 온통 돌로 되어 있고 그 돌들은 하얀 빛을 띄고 있었다.

말에서 내려 파자와 함께 느린 걸음으로 오르내리면서 한동안구경하노라니 폭포수의 물살은 웅장하였고 깊은 못은 밑이 보이지 않았다. 못에 임하면 매우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연못가에 있는 바위 위에 요으이 발톱 흔적이 서너군데 있었다. 마치 새로 그어 놓은 듯하여 황당한 듯하면서도 차마 떠나지를 못하였다. 맑은 물에 손을 씻고 있노라니 복부가 떠나기를 재촉하기에 드디어 말에 올라 출발하였다.

시냇가 곳곳에 있는 반석 위에서는 벼곡식을 타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좌우 양쪽 산에는 단풍 잎사귀가 물에 비쳐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맑은 기운이 감돌았으며 산봉우리가 수려하였다. 수구를 돌아들면 반드시 넓은 들이 있는 곳에 마을이 있고 논이 있어서 곳곳마다 살만하였다.

40여리를 가서 신평 전망수의 마을에 이르러 말을 먹이고 또 20여리를 올라가서 옥산창 마을 김근추의 집에서 유숙하였다. 주인이 관대하고 방사도 새로 지어서 양지바르고 편히 잘 수 있었다.

군자대는 곧 일두 선생이 안음 태수로 부임했을 당시에 항상 이곳에서 유람하였으므로 후인이 바위에다가 군자대라고 새겨 놓았다고 한다. 안음현에 도착하여 먼저 태남을 보내 잡물을 싣고 상주 중모현 황씨 집안으로 시집간 누이를 찾아가서 해인사로 맞아오게 하였다.

10일 맑았다.

주인이 아침 식사를 차려 주었다. 식후에 출발하여 10여리를 가서 작은 재를 하나 넘어 바라보니, 덕유산이 가장 높았다. 두 봉우리 아래에 영각사란 절이 있었다. 길에서 영각사 강선암의 승려 의옥을 만나고 또 은적암의 승려 율의를 만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또 10여리를 가서 절에 도착하였다. 전후 좌우가 빙 둘러 감싸고 산세가 잔잔하여 굴곡이 없이 능선이 부드러웠으며 지대의 층계가 반듯하고 온편하였다. 법당이 그 진인이 말한 덕유산의 정맥을 차지한 명당이라고 한 것이 빈말이 아닌 듯 했다.

법당에 들어가니 객승 덕화와 불존의 승려 한운과 87세된 노승 도천과 승통 담호가 서로 영접하여 저녁식사를 차려주었다. 향로전에서 식사를 하고 식후에 혼자서 은경대로 올라가서 천순 수좌를 방문하니, 그는 나이가 무자생이었다. 암자가 절 뒤 2리 쯤 떨어진 곳에 있는데 천순 수좌가 새로 개척한 도량으로 간좌곤향에 좌우 암석이 특이한 것이 많았다. 바위 아래 솟는 우물은 맑고 차가웠다. 터가 기묘하여 도인이 수도하기에 알맞은 곳이라고 이를만하였다. 한동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자도 와서 유숙하였다. 암자의 승려 일천이 잘 도와주었는데 암자를 만든 사람은 바로 일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