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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금 답사일지/백 두 대 간

백두대간 내려잇기 13구간(도래기재-마구령)

 

[비내리는 박달령 산령각 앞에서]

 

 

▣백두대간 내려잇기 13구간

 

 

1. 서벽을 들어서며

 

토요일(8.19일) 저녁, 영주시 단산면 옥대리의 면사무소 주차장에서 넷산의 백두대간 내려잇기 본대를 만나, 경북 영주 부석면-봉화 물야면-춘양면 서벽을 잇는 좁은 지방도로 방향을 잡는다. 물야면의 오전약수를 지나 사람 칸, 짐칸 할 것 없이 공간을 가득채운 갤로퍼가 힘겨운 소리를 내며 해발 780m 고갯마루인 주실령을 넘는다. 이제 오늘 숙영지인 도래기재가 있는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로 들어선 것이다.

 

서벽(西碧), ‘서쪽 옥돌봉에서 반사되는 찬란한 햇빛’이 마을 이름 유래라고는 하지만, 밤이 깊어질 즈음 이 곳으로 들어서는 느낌은 ‘서쪽의 벽(壁)’이다. 백두대간 옥돌봉에서 남으로 주실령-문수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서쪽으로 벽을 이루며 막고 있는 이 곳은, 맞은 편 동북 쪽으로 역시 백두대간에서 가지를 친 산줄기가 높은 벽을 이루며 마을을 더 깊고 아득하게 만드는 곳이다. 이름하여 사람이 숨어 살아갈 만한 곳이라 했던가. 문득 첩첩으로 갇힌 벽(壁) 안으로 들어선다는 느낌이 들자, 나는 이 곳으로 이르는 길을 떠올린다.

 

(嶺),치(峙),재,고개, 중력의 느낌이 부담스럽지만, 이 이름을 꼬리에 단 이름들은 길을 의미한다. 길은 다가감일 수도 있지만 벗어남일 수도 있다. 내게 있어 길의 이미지는 늘 ‘다가감’이지만, 느낌은 무슨 이유인지 대체적으로 우울 모드이다. 그건 아마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충동질하는 ‘그리움’이란 놈에 감당할 수 있는 용기가 없음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역마살은 바람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멈추면 죽기에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만 하는 숙명성, 용맹하게 달려들어 단숨에 이르는 방법 외에는 달리 해결의 묘안이 없는 그 중독성,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먼 발치로 길을 바라보아야 하는 나의 눈빛은 늘 잿빛의 흐림 속에 갇혀 있게 된다.

 

도래기재 넘어 영월 땅으로 가는 길, 바람의 제왕, 거리낌 없이 길을 걸었던 삿갓 쓴 옛사람의 흔적을 떠올리며 마음이 분분해짐을 느낀다.

 

2. 강원도여 안녕.. .

예닐곱 명이 충분히 잠을 잘 수 있는 도래기재 쉼터 정자에서 짐을 풀고 식사를 마친 후, 잠자리에 든 시각은 23시. 내일 04:00기상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한다. 기상예보로는 태풍은 소멸되었으나 열대성저기압으로 바뀌었다고 하며, 춘양면의 일요일 일기예보는 시종일관 ‘강수량 50m 예상, 일요일 오후 늦게 갬’이다.

 

쉬이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는데, 우리가 잠들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기어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우들은 어느새 잠이 들었고, 나는 자정을 한참 넘긴 시각 겨우 잠이 들은 듯하다.

 

04:00시, 선잠 끝에 일어나 아침을 해결하고 도래기재로 이동한다. 비는 퍼붓지는 않으나 줄기차게 내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빗발이 조금씩 굵어지는 느낌이다. 땀 때문에 소용없겠지만 방수바지에 스패츠까지 착용하고 절개지의 나무계단을 오른다.

 

[도래기재에서 옥돌봉 오름길 나무 계단]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옥돌봉 아래의 철쭉나무는 안내표시를 잘 해두어 찾기가 쉽다. 카메라를 꺼내보나 비 때문에 제대로 모습을 잡을 수가 없다. 주변 쉼터의 의자역할을 하기 위해 밑둥만 남겨진 아름드리 참나무의 흔적, 일부러 살아있는 것을 잘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옥돌봉 아래 550년 생 철쯕나무]

 

옥돌봉 지나, 숨을 죽이지 않는 빗줄기에 점점 부담을 느끼게 될 즈음, 임도가 나있는 박달령에 닿는다. 쉼터는 비를 피하기에 안성맞춤이고, 산령각의 모습도 정겹다. 조심스럽게 오늘 운행에 대한 의견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빗속을 무리하지말고 천천히 걸어 당초 목적지인 고치령 약 8Km 앞 지점인 마구령까지 운행하자는 쪽으로 뜻을 모은다. 무려 45분 남짓 휴식을 취하는 여유를 부리고 출발한다. 산령각에 모셔놓은 위패의 박달(朴達)이라는 한자 이름은 뜻밖이다. 부유물이 많아 식수를 보충하지 못한 것도 조금 마음에 걸린다.

 

[박달령 산령각 앞에서]

 

 

[박달령 쉼터에서.오른쪽이 거시기. 왼쪽은 평택에 사는 해나리 아우]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산길을 걷는 일, 마치 깨우침에 목숨을 건 듯한 수행자처럼 비장함이 서린 모습이다. 선달산을 조금 앞둔 지점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멈출 때가지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매미소리가 사라졌다는 생각을 한 것과, 휴대전화 통화상태를 점검한다며 올라 온 봉화소속 경찰관 1명을 만난 것 외에는 없을 정도이니 거의 무념 속에 걸었다는 말도 크게 잘못된 말은 아닌 듯하다.

 

11:00

빗속에서의 점심식사, ‘빗물에 밥 말아 먹는다’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하겠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는데, 이제 비와 땀에 젖지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고, 한기까지 느껴 셔츠를 하나 더 껴입는다. 

 

흔한 정상석 하나 갖추지 못한 수더분한 선달산의 모습이 다소 의외다. 이제 백두대간은 내려잇기를 시작한 이래 지금껏 함께해오던 강원도를 벗어나게 된다. 지나온 산길들의 추억을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던 점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선달산 정상]

 

제법 경사가 급한 길을 내려서면 늦은목이다. 식수를 보충하고 휴식을 취한 뒤, 맞은 편 오름 길을 이으면 영주 부석사를 품고있는 봉황산과 산줄기가 이어지는 갈곶산 삼거리에 이른다. 2005년 1월, 폭설예보로 국망봉 산행을 포기하고 부석사를 둘러본 뒤 다녀간 곳이다. ‘언제쯤 이 곳 대간길을 지나갈까 하는 생각으로 다녀가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갈곶산 봉황산 갈림길 05년 1월 사진.함께갔던 남동호,고향미]

 

[부석사 전경. 05년 1월 사진]

 

 

늦은목이부터는 소백산국립공원 관할구역이라, 이정표가 500미터 간격으로 촘촘히 잘 설치되어 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신발 안이 젖을 무렵 1057봉(헬기장)에 오른다. 이제부터 마구령까지는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16:20분. 비포장도로인 마구령 도착. 미리 연락을 취해놓은 차량 지원조의 산하아우가 올라 와있다. 아쉽지만 운행을 정지하고 산행을 마친다. 차를 타고 계곡을 낀 도로로 내려와 몸을 씻을 무렵, 그제서야 그 지긋지긋하던 비가 그쳐있음을 알았다. 끝

 

두류/조용섭

 

[백두대간 내려잇기 13구간 산행일지]


1. 산행지 : 도래기재-마구령 : 선달산, 갈곶산 : 17km)
2. 위 치 : 강원도 영월군 / 경상북도 봉화군
3. 산행일 : 2006.8.19(토)-20(일) 흐리고 비
4. 산행종류 : 야영 및  마룻금이어걷기
5. 사용 지도 :  용진, 남대, 서벽 1/25000
6. 참가자 : 두류, 요사니, 해나리, 솜다리, 하늘나무, 산하(운전지원)
7. 교통 : 회원 차량
8. 일 정 :
19일(토)
   17:30 감곡 IC 출발
   20:00 도래기재
          저녁 식사 & 취침.
20일(일)
   04:00 기상
   05:45 도래기재 출발
   06:20 옥돌봉 1.3K, 도래기재 1.4K
   06:45 550년 철죽
   07:10 옥돌봉
   08:37 박달령 휴식
   09:20 박달령 출발
   11:00 1200고지 점심
   12:00 점심식사 후 출발
   12:25 선달산
   13:20 늦은 목이
   14:05 갈곶산
   15:20 1057봉 헬기장 휴식
   15:45 출발
   16:10 894봉 헬기장
   16:20 마구령 산행 종료
   19:00 산행정리 및 저녁식사후 해산
    
※기타
1) 태풍 우쿵의 영항으로 산행 시작부터 종료까지 비를 맞고 진행 함.
   10시간 이상 비를 맞으며 운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슴.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
2) 박달령는 산령각과 쉼터 간이 화장실이 있고 화장실 옆으로 약 1분정도                  내려서면 물을 구할 수 있으나 비오고 갈수기엔 식수로 사용하기엔 부적합함.
3) 늦은 목이 식수 구할 수 있슴.
4) 등로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함.
5) 삼거리인 부분엔 이정표, 표지기등이 잘 되있어 길 잃을 염려 없슴.
6) 소백산 국립공원시작인 늦은 목이 부터는 이정표가 500m마다 설치되어                         있슴.
7) 계획된 고치령까지 진행 하지 못하고 마구령에서 산행 종료함.

                 [기록 : 하늘나무, 총무: 솜다리, 산행대장:요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