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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금 답사일지/백 두 대 간

백두대간 내려잇기 14구간(마구령-죽령)-②

[소백산 비로봉]



▣백두대간 내려잇기 14구간(마구령-죽령)-②

 

일시:11월 12일. (08:15~19:00)

 

오랜만의 만남은 비워져 있던 시간만큼의 정을 메우려는 듯, 끝없이 이야기 속을 넘나들며 술과 잠을 야금야금 잡아먹고 있었다.

 

자리를 파하고 잠자리에 든 시각은 새벽 3시 무렵, 조금 있으면 운행에 나서야 한다는 나의 호소가 그나마 받아들여진 것이다. 2시간 여 잠에 빠져든 사이, 5시에 맞춰둔 알람은 속절없이 지나쳤고, 꿈결에서 들리는 듯한 벨소리에 눈을 뜨니 모텔에서 잠을 잔 성산아우의 전화다. 벌써 6시를 훌쩍 넘긴 시각, 세 사람 모두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저녁에 해둔 밥과 국으로 가볍게 속을 채우고 죽계호의 하얀집을 나선다. 주무시는 내외분을 깨울 수 없어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 모텔에서 잠을 잔 두 아우를 만난 후, 산행 기점인 고치령으로 함께 향한다. 아우들은 원기를 되찾은 듯 무척 밝은 모습이다.

[고치령에서]


 

도로가 패여 차량운행에 애를 먹었다던 선답자들의 기록에 조금은 우려했지만 뜻밖에 고치령을 지나는 도로사정은 양호해서 승용차로도 충분히 이동이 가능하다. 장승과 산령각이 있는 해발 770m의 고치령은 조선시대 영월에 유배되었던 단종의 복위를 꿈꾸던 이들이 넘나들던 길로 잘 알려져 있다. 단종의 숙부인 금성대군이 순흥에 유배되면서 고치령을 통해 양쪽의 소식이 전해졌다는 것이다.

 

결국 복위시도가 실패로 끝났으니 이 길을 넘던 이들은 그때 모두 목숨을 잃었을 터이겠지 세상의 벽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그런 비장함이었거나, 그 벽을 부수거나 넘을 수 없다는 무력감의 자각에도 불구하고 이 첩첩산중의 고단한 고개를 넘나들던 옛사람들의 발걸음에는 붉은 마음의 흔적 아직도 남아있으리.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1/200)s iso200 F3.5

 

오늘 운행 코스는 고치령과 죽령 사이의 약 22.5km 거리, 소백산의 연봉을 움켜진 장쾌한 산줄기가 꿈틀대는 구간이다. 아우들의 걸음은 힘있고 빠르기로 정평이 나있다. 걸음 빠른 아우들의 스피드에 맞추면 내 페이스를 놓치기 십상이다. 거리 차이가 나더라도 개의치 말고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운행하자고 수 차례 서로의 뜻을 확인한다. 하지만 앞서가면서 기다리고 챙겨주던 아우들의 마음과 행동을 어찌 모르겠는가.

 

황갈색 산자락 위로 드리워진 하늘빛이 눈이 시릴 정도로 맑다.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1/400)s iso200 F9.0

 

형제봉 갈림길을 가로지르며 마당치까지 순조롭게 이어지던 걸음이 서서히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구인사 갈림길(늦은맥이재)까지의 오름길이 무척 힘들었다. 모처럼 나타난 바위 군상들을 그저 눈으로만 훑고 지난 것이 다소 아쉽다. 갈림길 인근에서 아우들과 점심을 먹고, 상월봉 옆으로 비켜 오르자 비로소 부드럽고 광활한 소백의 능선이 펼쳐진다.

[상월봉]


[상월봉에서 국망봉 가는 길. 비로소 장쾌한 소백의 산줄기가 드러난다]


 

국망봉에서 아우들을 먼저 보내고 비교적 긴 휴식을 취한 후 홀로 출발한다. 거침없이 사방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눈부시다. 눈길 끝으로 이어지는 산그리메는 물론, 이미 말라있는 마른 억새가지도 정겹다. 늦가을 오후, 튼실하고 광활한 백두대간 등뼈를 혼자 걷는 나그네의 느낌 또한 각별했다. 비로봉 오름길, 바람에 몸을 맡기고 산사면에 일제히 드러누워 있는 억새의 질기디 질긴 생명력, 삶에 대한 적응력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국망봉. 성산아우]


[국방봉 부근에서 바라본 동북 방향의 산하]


[국망봉 아래에서 남서녘으로 바라본 풍경]


[국망봉-비로봉 방향, 정상 직전 드러누워있는 억새의 모습]



소백산 비로봉, 바람의 나라, 내가 늘 추억하는 비로봉의 느낌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산정을 홀로 거닐며, 외로움마저도 깊이 받아보려 했던 나의 낭만적인 시도는 여지없이 깨져버리고 만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바람에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하고 쫓기듯 내려오고 만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소백산 비로봉]

 

사람들로 북적대던 산불감시초소가 텅 비어있으니 오히려 외로움이 더 짙게 묻어나는 듯하다. 오후 4시, 이제부터 빠른 걸음으로 달려야 한다. 모처럼 힘을 내어 진행을 하니 석양을 등진 채 서있는 천문대가 보인다. 뜻밖에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만났다. 기다리고 있던 아우들과 함께 죽령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들어선다. 이제 남은 거리 7km, 어쩌면 오늘 운행의 가장 힘겨운 길이 될 지도 모른다. 걸음 수를 헤아리며, 남아있는 거리를 재어보며 부지런히 내려오지만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거리, 지겹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서서히 힘이 빠지는 듯하다.

[감시초소에서 바라본 소백산 비로봉]


[석양을 등에 진 소백산 천문대]

 

다만, 붉은 띠가 가로로 길게 드리워진 일몰 후의 아름다운 풍경을 어둠 속에서도 한동안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어둠속에서도 한동안 이어지던 아름다운 일몰 후의 풍경] 

 

죽령을 약 1.5km를 남겨둔 즈음, 정기아우가 마중을 나와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함께 내려선다. 풍기쪽 산자락 아래로 유난스레 짙게 드리워졌던 운무는 화재 때문이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죽령 하산 후 서두른 결과, 다행히 영주 발 서울행 버스편이 연결되어 서울 아우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헤어질 수 있었다.

 

이틀동안 차량이동을 전담해준 정기아우, 전날 동행한 동호아우, 그리고 산에서 만나 이튿날 산행을 함께한 두 아우, 나의 소중한 山 인연들이게 깊은 신뢰와 함께 고마움의 인사 보낸다.

 

2달 만에 쓰는 기록임에도 그때의 고양되던 느낌이 새롭다.

 

[운행시간표]

 

-고치령-죽령 약 22.5km 

 

08:15 고치령 출발

09:00 형제봉 갈림길

09:15 마당치

12:12 갈림길(늦은목이재)/구인사 갈림길

12;20 중식

13:30 출발

14:00 상월봉

14:14 국망봉

14:30 출발

15:40 비로봉

17:10 천문대

19:00 죽령매표소/산행종료

 

[참고]하얀집 농원 소개 :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죽계호(저수지) 안쪽에 있는 농원

주인 :송명락(독립투사 송영호 선생의 손자) 054-632-7643, 011-412-7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