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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人들의 智異山

■산중일기<상> 8.01일 ~ 8.15일[10]

 

[현대불교www.buddhapia.com/기획연재/정시한의 산중일기/'부디엔스'님의 글]

 

8월

1일 맑았다
일찍 일어나 의관을 갖추고 앉아서 가묘(家廟)를 우러러 생각하였다. 아침식사 후에 명안이 떠났다. 본암의 승려 정안이 아침식사를 차려 주었다. 정안과 해철이 동령(動鈴)할 일로 작별하고 떠났다. 지붕에 비가 새는 곳을 다시 덮었다. <심경발휘> 30장을 보았다. 저녁을 먹은 뒤에 청언(淸彦)과 함께 연곡사(燕谷寺)로 가다가 중도에 먼저 돌아와서 시냇가에 앉아 있었더니 청언대사도 뒤따라와서 암자로 돌아왔다. <독서록(讀書錄)> 하편과 속선 끝편을 읽었다.

2일 흐리다가 오후부터 종일 비가 내렸다
구름과 안개의 변화하는 모습이 볼만하였다. 경수(庚宿)가 금강대(金剛臺)에 다녀왔다. 연곡사의 승려 철영이 왔다가 바로갔다. <심경발휘> 21장을 보아서 하권을 마쳤다. 또 상권 11장을 보고 <독서록> 수편과 <황정도장초> 4장을 보았다.

3일 흐렸다
종일 비가 내리고 밤까지 내렸다. 호열이 와서 잣을 조금 주고 갔다. <발휘심경> 22장을 보고 <독서록> 중편을 보았다. 연곡사 승려 선인과 구례에 사는 정자선(鄭自善)이란 상놈이 저녁에 왔다. 내일 새벽이 제삿날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황정도장초> 10장을 보았다. 청언에게 쌀 6승을 꾸었다.

4일 새벽부터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밤부터 방울을 흔들며 주문을 외우더니 새벽이 되어서야 그쳤다. 아침에 연곡사 승려들 수십 명이 와서 아침을 먹느라고 소란스러웠다. 종해가 들어와서 보고 진주의 승려 혜심과 함께 잠시 이야기한 후에 모두 갔다. 연곡사 승통 여인(如印)이 햅쌀로 아침을 잘 차려 가지고 상좌 최광두(崔光斗)를 데리고 비가 오는데도 지고 와서 대접하였다. 아침을 방금 먹고 난 뒤라서 두었다가 저녁밥으로 먹기로 하였다. 한동안 앉았다가 작별하고 떠났다. 일계가 와서 보고 갔다. 저녁을 먹은 뒤에 비어 있는 다락에 나아가서 앉아 있노라니 구름과 안개가 변하는 태도가 무궁하여 보고 있노라니 싫증이 나지 않았다.

<발휘심경(發揮心經)> 27장을 보고 <독서록> 하편과 <속선> 종편을 보았다. <황경도장초> 17장 끝편을 보았다.

5일 종일 비가 내리고 밤에는 더욱 심하였다
효이와 청언이 철물을 가지고 연곡사로 갔다. <발휘심경> 18장을 보아 상권을 마치고 또 하권 11장을 보았다. <독서록> 상중 2편을 보고 <황정경> 10여 장을 보아 하권을 마쳤다. 효이 등이 문의 돌쩌귀 등 잡물을 만들어 가지고 돌아왔다.

6일 새벽부터 비가 내리더니 온종일 더욱 많이 내렸다
조금 늦게 차거운 바람이 불더니, 나무가 꺾이고 지붕이 걷혔다. 밤새도록 비바람이 몰아쳤다. <발휘심경> 40장을 보고 <독서록> 상편과 속선 종편을 보았다. <황정경> 채약 등의 그림 10여 장을 보았다.

연일 차가운 비가 지루하게 내려서 만물이 다 손상을 입었다. 오늘 차가운 바람이 또 불어서 농사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산 속에 승려들도 모두 한심해 하면서 유의를 입었다.

7일
어젯밤부터 찬바람이 거세게 불고 찬비가 더욱 심하여 새벽까지 내리고 하루 종일 내리니, 사람들이 모두 추위에 떨고 냇물도 많이 불었다. 새벽이 되면서 비가 그치고 바람이 잠잠했다. <발휘심경> 36장을 보아 하권을 마치고 <독서록> 상중하 3편과 속선 끝권을 보았다. 재차 <황정경> 오장도를 보았다. 아침에 유고를 입었다. 효이 노장에게 쌀 4승을 꾸었다.

길상대에는 바람이 그다지 심하게 불지 않았으나 금강대와 오향대(五香臺)에는 기왓장이 모두 날리고 큰 나무가 뽑혔다. 대체로 바람은 서쪽에서 부는데 이곳은 동쪽으로 향하여 산을 등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8일 새벽부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밤에까지 그러했다. 수일 전부터 눈이 불편하여 책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발휘심경> 23장을 보고 <독서록> 상중 2편과 <황정경> 내경 9장을 보았다. 문을 만들기 위하여 나무를 베어서 판자를 만들었다.

9일 가끔 흐리고 맑았다
바람이 불었다. 언사가 집지을 나무를 베어 왔다. <발휘심경> 36장을 보고 <독서록> 하편과 속선 끝권을 보았다. 일계가 상좌 탁습을 보내 와서 내일 안국사에 가서 병을 치료하겠노라고 말하기에 일겸에게 편지를 보냈다. <황정경> 내경 9장을 보았다. 발을 씻었다.

10일 맑았다
효이 노장에게 쌀 6승을 꾸었다. 명학이 와서 보고 갔다. 연곡사 동쪽 방장산(方丈山)에 있는 종장 신감(神鑑)은 나이가 을해생(乙亥生)인데 그의 제자 탁성(卓性)을 데리고 와서 큰 약과 5잎과 꿀물 한 병을 주기에 암자의 승려들과 나누어 먹었다. 잠시 앉았다가 모두 작별하고 떠났다. 선혜가 미후도를 따와서 주었다. <발휘심경> 27장을 보아 상권을 마치고 <독서록> 상중 2편을 보았다. 언사가 나무를 쪼갰다. 연고사 승려 선인이 와서 초피와 좌반 한 포대를 주고 갔다. <황정경> 내경 9장을 보았다.

11일 가끔 흐렸다
새벽에 마음이 불편했다. 금강대 경천(敬天) 노장이 와서 보고 동과(冬瓜)를 주고 갔다. <발휘심경> 33장을 보고 <독서록> 하편과 속선 끝편을 보았다. <황정경> 내경 9장부터 내경의 끝까지 보았다. 언사가 나무를 쪼갰다.

12일 맑았다
경수가 금강대를 다녀오면서 무김치를 얻어 가지고 왔다. <발휘심경> 30장을 보고 <독서록> 상중하 3편을 보고 <황정경(黃庭經)> 외경 상편을 보았다.

13일 가끔 흐리고 맑았다. 밤에 비가 약간 내렸다
효이대사에게 쌀 5승을 꾸었다. 호열과 묘언이 들어왔다가 바로 갔다. 암자의 승려가 경수를 연곡사로 보내서 두부 비지를 구해가지고 오게 하였다. <발휘심경> 23장을 보아서 하권을 끝마쳤다. <독서록> 속편과 상편 중편과 <황정경> 외경 중편을 보았다. 묘언이 말하기를 이번 풍수의 재난은 여태까지 없었던 바이므로 벼곡식이 탕진되어 사람들이 현재 굶주리고 있으므로 길거리에서 울부짖고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으니 애처로운 마음이 들어서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다. 마음이 편치 못하여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14일 흐리고 밤에 비가 조금 내렸다
아침식사 후에 함양에서 온 인편이 함양태수의 서찰을 전하고 대미 3두와 적두 1두와 포목 1필과 석어 2속과 마른 포와 꿩고기와 미역을 조금씩 보내왔다. 함양의 사령 신애발(申愛發)과 군자사(君子寺)의 승려 은탁(隱卓)이 왔다. 경수가 금강대로 가서 물건들을 약간 지고 왔는데 은탁이 지고온 베로 만든 크고 작은 홑옷 두 벌과 포목 1필과 포대 각 한 개와 향용(香茸), 지대, 편죽(片竹) 등의 물건을 군자사에 두고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함양태수에게 답장을 써서 보냈다. 효이에게 빌린 쌀 1두 5승과 언사에게 빌린 쌀 6승을 갚았다. 발을 씻었다. <발휘심경> 9장을 보고 <독서록> 하편을 보고 <황정경> 외경 하편을 읽었다. 저녁에 행장을 꾸렸다.

15일 가끔 흐리고 맑았다
일찍 일어나서 옷을 차려 입고 묘산(墓山)을 경건한 마음으로 우러러 생각하니, 마음이 배나 서글펐다. 아침식사 후에 암자의 승려와 선혜를 작별하고 연곡사로 내려왔다. 길에서 4, 5차례 쉬고 절에 있는 승방에 도착한 다음, 처음으로 법당에서 밥을 먹었다. 비전(碑殿)에 들어가 한동안 앉았다가 법당을 두루 보니, 법당이 자못 웅장하고 삼불(三佛)이 근엄하였다. 해인사의 불상(佛象)과 비슷하였으나 단지 원광(圓光)만 없었다. 각 방이 초라하고 잡초가 뜰에 가득했다. 승려들이 가난해서 앞으로 지탱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애처로웠다.

승통 여인과 노승 학의(學儀)와 희감(希鑑)이 모두 법당으로 와서 보았다. 여러 승려들이 모여서 보았고 신감(神鑒)도 왔다. 신감과 함께 와서 머물고 있는 동전(東殿)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신감이 저녁 식사를 차려서 주었다. 선인(禪印)도 와서 보았다. 식사를 한 뒤에 호열(湖悅)과 함께 금선대(金仙臺)에 올라갔다. 3, 4리를 가니 암자에 도착하였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으며 단청을 해 놓은 전각이 화려하였다. 암자의 승려 성인(省印)이 나와서 맞이하였다. 잠시 앉아 있다가 법당으로 왔다. 대위의 소나무와 대나무가 좁은 길에 푸른 빛을 띄고 있어서 마음과 정신이 상쾌하였다. 1, 2리를 가서 암자에 도착하니, 암자의 터가 꽤 묘해 보였다. 암자도 조용하였다. 암자의 승려 신은과 처민(處敏)이 서로 영접하였다. 상좌 국림(國林)은 나이가 경술생인데 사랑스러웠다. 비전의 승려 행철이 뒤따라 와서 말을 하다가 갔다. 금선대의 승려 성인도 따라와서 한동안 앉아서 말하다가 갔다. 대략 10여 리를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