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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기록]

[산행기]대성골-세석-큰새골

■지리산 대성골-세석-칠선봉-큰새골-백무동 산행후기

♣시간기록

*2003년 2월15일(개별접근)

15:00 택시타고 의신으로 이동(13,000원)
15:05 산행시작
15:50 대성마을도착(식사 45분소요)
16:35 출발
17:02 작은세개골다리(의신3.9km , 세석5.2km)
17:30 큰세개골다리(휴식10분)
17:55 이정표(의신5.5km , 세석3.6km)
19:30 능선갈림길(삼신봉5.3km , 세석2.2km , 의신6.9km)
20:24 음양수
20:36 세석대피소 도착(첫째날 산행완료)

*2003년 2월16일

07:00 기상(식사)
10:15 세석출발
11:11 능선안부 휴식(10분)
11:28 칠선봉(해발1,558m)
11:34 출발
12:50 계곡식사(해발1,200m)
13:40 출발
15:55 한신계곡길 합류
16:24 백무동매표소통과(둘째날 산행완료) 뒷풀이
17:30 해산

■산행후기

당초 2월 셋째 주말은 낙남정간 답사팀의 구간종주 일정이(9구간:마산 무학산-천
주산 구간) 잡혀 있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낙남정간 답사일정이 넷째 주로 연기되
어 셋째 주가 비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참가신청 없이는 오지마라는 운영진의 엄
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자연스럽게 지사동팀이 집결하는 '토요일
저녁, 세석'으로 자리잡고 말았다.

정월대보름 산행이라 달빛산행과 산상에서 바라보는 휘영청 밝은 달을 염두에 두
기는 하였지만 며칠 전부터 들려오는 일기예보로는 흐린 날씨 탓에 보름달 보기
가 힘들 것이라 한다.

하긴 근래들어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에 두고 산을 찾은 적이 있었던가. 산자락에
들어가 있음만으로도 좋았고, 또 그 때마다 맞닥드리는 자연과의 만남에 마음이
편안해졌으며, 새로운 풍경에 늘 가슴벅차하지 않았던가....

토요일 아침부터 시간이 나는 터라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세석으로 들어가는 연
결등로코스를 짜내어보지만 세석으로 들어가는 길은 여러 코스로 엮기가 만만치
않다. 마침 의신마을에 지난 수요일 밤차로 내려와 있는 만강이와 금요일 저녁에
내려 온 산유화, 아차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함께 오르기로 하고 의신쪽으로
접근키로 한다. 오름코스는 직접 세석으로 들어가는 대성골코스를 대략 마음에
두고..

09:10분경에 집을 나서 서부터미널로 향했건만 10:30에 출발하는 하동-구례행 버
스를 놓쳐버리고 11:10분에 쌍계사로 가는 버스를 탄다. 이 버스는 하동 지나서
악양을 둘러가는지라 20분 이상을 더 걸려야 될 듯하다. 오전에 불일폭포와 쌍계
사 탐방을 하고 쌍계사입구에 기다리고 있는 산유화와 아차를 만난 시간은 물경
14시 20분, 미리 메세지로 연락을 주기는 하였지만 기다리던 사람들은 엄청 지겨
운 시간이었으리라. 만강이는 아침에 산으로 올라가 와운골로 하산을 하기로 했
단다.

바로 택시를 불러 의신으로 향한다(택시요금:13,000원). 신흥-의신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아직도 군데군데 지난 여름 폭우(루사)의 상흔을 그대로 안고 있고, 신흥
다리 좌측 계곡에는 안타깝게도 2층 양옥집이 그대로 폭삭 주저앉아 있다.

의신마을 정대장은 고로쇠작업하느라 산으로 들어가고 없단다. 오랜만에 얼굴이
라도 보려했으나 못보고 바로 산행길에 들어 선다. 의신에서 접근하는 대성골
초입 공단매표소에는 오후 3시를 갓 넘긴 시간인데도 직원이 없다. 왠 재수!!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그 곳을 벗어난다.

언덕을 넘어서며 두사람은 가볍게 걸어가는데 뒤쳐져 걷는 내 발걸음은 몹씨 무
겁다. 이제 70리터 배낭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일까....

대성마을에 도착하니(15:50) 앞집 할머니 집은 조용하고 기식씨 집 마루에는 하
산한 일군의 산행팀이 자리잡고 있다. 점심도 거른 터라 식사를 하기로 하고 아
주머니께 밥을 달라고 부탁하니 밥을 새로 해야 된단다. 시간상 어려울 것 같아
라면으로 간단히 떼우기로 하고 막걸리만 한병 시킨다. 라면을 먹는 데, 말아
먹으라며 오곡밥 찬밥 한 그릇을 아주머니가 슬그머니 건넨다.

식사를 하고 일으서는데 큰 물통을 지고 내려오는 츄리닝차림의 앳된 아가씨가
있다. 옆집 할머니댁 처자인데 고로쇠 작업을 하고 내려오는 모양이다. "저 아
가씨는 왜 이런 산골마을에서 살까요?" 그 처자의 모습이 안스러운지 아차가
한마디하는데 아마도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다만 '행복의 기준
이란 건 자족의 정도 차이일 뿐' 아니겠냐며 나도 모를 소리를 듣건 말건 흘려
버린다.

고로쇠작업을 끝내고 산에서 내려 온 기식씨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어찌 이
리 오랜만에 오느냐며 손을 건네면서 대뜸 막걸리 한잔하셨냐며 묻는다. 어쨋
든 술좋아하는 내 모습이 가장 낯익었나보다. 그러고보니 작년 여름 수곡골산
행 이후로는 대성마을이 처음이다.

작별인사를 하고 드디어 대성골 깊은 산자락쪽으로 들어간다.

대성골...

좌우익 이념의 대립으로부터 발생한 민족간의 최대비극, 한국전쟁, 그리고 그
전쟁을 전후하여 지리산자락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토벌대와 빨치산의 처절한
싸움. 그 싸움의 끝을 앞당기는, 말하자면 빨치산이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는
곳이 바로 이 곳 대성골이다. 의신부락쪽에서 쉴 새 없이 퍼붓는 박격포탄에
빨치산들은 초토화되고 더러는 남부능선을 넘어 거림골로 피해갔고, 또 더러는
영신대 아래 굴속에 은거하다가 토벌대의 수색이 두려워 나오지도 못하고 그대
로 굶어 죽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대성골, 이 크고 우람찬 계곡의 사면을 따라 나있는 산길은 걸을 때면
나의 오감은 늘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원대성마을-작은세개골-큰세개골로 이어지는 길은 평탄한 길이 지루할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하지만 본격적인 산행은 큰세개골 지나 오름길과 바위길을 걸
으며 고도를 올리면서 부터이다. 눈도 제법 쌓여 있지만 녹았던 눈이 다시 얼
어있는 등산로는 미끄러워 발끝에 무척 신경을 쓰이게 하고 걸음이 더디게 된
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헤드램프를 준비한다.

큰세개골 지류를 벗어나며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서면 우측으로 지능선이 흐르
는 능선의 턱을 밟고, 좌측으로 향한다. 다시 조금 더 진행하면 나오는 무덤
있는 곳에서 다소 긴 휴식을 취하고 출발하는데 자주 다니긴했지만 이 곳의
밤길은 무척 낯설다. 뒤 돌아본 산자락 아래 깊숙한 곳에 하나의 불빛이 반짝
인다. 무슨 불빛일까?

군데 군데 산길이 패여져 있던 곳에는 나무계단을 만들어 놓아 걷기도 편했고
산길이 더 이상 패이지 않는 것 같다. 내 생각만이라는 전제이지만 요즈음 관
리공단에서 하는 일 중에서 가장 박수받을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부능선 갈림길 직전의 오름길은 가파르고 또 얼어붙어 있어 걷기에 엄청 힘
이 든다. 흐르는 땀에 옷이 흠뻑 젖어버린다. 세석대피소까지 2.2km 남겨진
삼거리에 닿자 비로소 마음이 탁 놓이며 긴 휴식을 취한다. 어둠과 구름으로
숨막히듯 내려앉은 밤하늘에 잠시 보름달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라도 하듯
뿌연 제 몸을 드러내다가 이내 감춘다. 남서쪽 하늘을 가로로 가르지르며 우
윳빛 띠가 길게 드리워져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남부능선길도 역시 얼어 있다. 벼랑위의 좁은 길을 지나갈 때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 딛는다. 능선의 오름길로 올라 전망대 바위를 지나자 정면 저 멀
리로 세석대피소의 불빛이 아련하게 보이고, 희미하지만 우측으로 촛대봉의
실루엣이 가늠된다.

어둠에 파묻혀 적막한 우측 거림골쪽으로 혹시나 움직이는 불빛이 있나하고
눈길을 두어보지만 산자락 아래 저 멀리 평화롭게 드문드문 켜져있는 마을
의 불빛 외에는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둠밖에 없다.

음양수샘 도착.(20:24)

혹시 우리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남부능선을 걸어오는 우리 불빛
을 보았으리라는 생각에 한결 마음이 푸근해지자 음양수샘에서 편안한 휴식
을 취하며 수통에 물을 담는다. 거림골 갈림길에서 달리듯 내려오는 이 길
도 오르기에는 은근히 힘이 든다.

하지만 참나무와 사스레나무가 성기게 서있어 시원한 이 숲속길은 어둠속에
서도 상쾌함을 느끼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점점 걸음이 빨라지고 거림
골 갈림길 삼거리를 지나 3명은 그림자처럼 세석대피소 취사장으로 빨려 들
듯 들어 선다. (20:36)

취사장을 들어서니 지사동 식구들이 놀란듯 반긴다. 조금 전 한신계곡길로
힘들게 올라오셨다는 산죽님, 거림골로 가고파,태백이 두 개띠를 거느리고
올라 온 야니, 이렇게 4명이 벌써 자리를 준비해 놓고 있다.

늦은 시각 산장에서의 만남, 아니 언제 어디서라도 산자락에서의 만남은 얼
마나 반가운 일인가! 태백이와 가고파는 정말 오랜만에 산에서 만났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산유화도 띠동기들과 야니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
는데, 역시 산사람들은 금방 친숙해진다. 그 때쯤 고니님이 오시지 못한다
는 소식을 접했는데 뵙지 못하게 되어 아쉬웠다.

대피소 예약확인을 해보니 여명과 구단의 이름이 보이고 15명 예약이 확보
된다. 예상보다는 대피소를 들런 사람들이 적어 침상자리는 엄청 널널하다.
세석대피소의 화장실이 새로 지어져 있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깨끗한 새
건물에다 관리도 아주 잘 되어있다. 공단직원들의 수고로움을 느낄 수가
있었다.

참고로 관리공단대피소에서는 모포는 대여를 하나 침낭은 대여를 하지 않는
다고 한다. 새벽에 보일러를 끄면 추우니 미리 잘 대비해야 할 것 같다.

밤 11시가 조금 넘어선 시각, 취사장에서 소줏잔을 돌아가며 기울이고 있
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성큼 문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다. 여명,고산자,
그리고 길봉형님이시다. 거림에서 올라왔단다. 형님과는 예상치 못한 산상
에서의 해후를 하게 되었다.

거림골에서 21:00시경 출발하여 올라 온다는 마지막팀을 기다리며 대피소
취사장에서 즐거운 만남의 시간을 보내는데 산죽님의 배낭에서는 링게르
병처럼 생긴 보드카가 1병 나오고, 산유화의 배낭에서는 고맙게도 오미자
주와 LA갈비가 나온다. 담근 술 중에서 뒷탈없이 가장 잘 마셔지는게 오미
자주인데, 갈비까지 가져오다니....

찌개와 고기안주를 곁들여 술잔이 몇 순배 도는 사이, 길봉형님, 산죽님,
여명아우, 고산자, 산유화가 차례로 잠자리에 들어가고 나도 아우들을 기
다리다가 결국은 새벽 1시 조금 못 미친 시각에 야니를 비롯한 아우들을
취사장에 남겨두고 대피소 침상에 펼쳐 둔 침낭속으로 들어간다.

뜻밖에 산죽님이 잠을 조금 잤다며 아우들 마중 나가본다고 다시 나온다.
남쪽하늘을 가로지르며 드리워진 긴 띠는 그 두께가 많이 두터워져 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깊은 잠을 자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머리는 맑다. 배낭
을 꾸려 취사장으로 내려오니 늦게 올라 온 아우들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
가 분분하다. 그들은 새벽 3시에 올라 와 대피소에서 잤다는데, 산죽님과
취사장에서 기다리던 아우들도 3시까지 꼬박 기다리다 포기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그 시간에 취사장에 들어 와서 고기를 구워먹으며 술을 마
셨다나 어쨌다나 하는데, 취사장 한복판에서 침낭펴고 자던 한 아저씨는
아침에 우리 동료인지 물으며 혀를 내두른다. "저 사람들 새벽에 들어 온
뒤부터는 술마시며 떠드느라 나 잠 못잤어요!"...

하긴 그 너른 대피소 침상 놔두고 취사장 중간의 탁자를 차지하고 잤으니
그 이도 아우들을 나무라진 못했을 것이다.

길봉형님은 동행을 권했으나 당초 마음 먹은대로 치밭목을 거쳐 내려가시
겠다며 먼저 길을 나섰다.

산죽님이 정월대보름이라 가지고 온 오곡에 쌀을 섞어 오곡밥등으로 아침
과 점심까지도 준비하고, 여유로운 아침을 먹는다. 지난 밤 쌀을 불려놓
고 뜸을 오랫동안 잘 들여서인지 오곡밥이 아주 잘 되었다. 모처럼 아침
을 많이 먹게 되었다.

아침 일어날 때부터 과연 '백무동 민박팀이 몇시에 올라올까?'하고 저마
다 점쳐보는데, 어제 밤에 그 길로 올라 온 산죽님의 길 상태에 대한 이
야기를 참고하여 짐작해 볼 때 대략 10:30분경이 가장 유력하다.

하지만 취사장 정리를 하며 어느 아우가 가져 온 홍차 한잔을 마시고 기
다리던 대략 09:30분이 지난 시각, 민박조의 폭풍이와 푸름이가 불쑥 취
사장으로 들어 선다. 뒤 이어 산사들, 바닥이,유리엄지,굴렁쇠,까치,까치
(덩)등 민박조가 모두 들어서며 반가운 해후를 한다.

04:10분에 기상하여 06:00에 산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동계산행으로서는
엄청 빠른 속도로 올라온 셈이다.

10:15분, 대피소 위의 주능선길로 올라서서 서쪽 칠선봉쪽으로 향한다.

촛대봉 위로 약하기는 하지만 햇살이 조금씩 환해지기 시작한다.

포근한 날씨다. 영신봉 아래 산길을 걸으며 본 사방의 대기는 멀리로 희
뿌옇다. 다만 흰눈을 소복히 이고 있는 제석봉과 천왕봉의 늠름한 모습은
선명하게 드러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세석대피소 바로 뒤에 있는 영신봉은 백두대간 마루금상의 낙남정간 시발
점이다. 이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갈래치며 뻗어가는 능선이 남부능선이며
이 능선은 계속 이어지며 김해 신어산까지 달려 와 낙동강에 발을 담근다.

낙남정간마루금의 가장 높고 힘센 구간인 남부능선은 낙동강과 섬진강의
수계를 가르며 삼신봉으로 이르고, 묵계치-고운재로 이어지며 동쪽으로
치닺는 낙남정간은 큰 강을 이루지 못하고 남해로 바로 빠지는 물길까지
아우르게 된다.

진행방향의 전방 좌측으로 주능선에서 가지치며 남녘으로 드리워진 강한
근육질의 능선들, 왕시루봉,불무장등능선의 모습은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듯 역동감이 넘친다.

영신봉 아래 전망대를 내려서는 산길은 언제부터인가 나무계단을 잘 설치
해 놓았다. 지나가기에 한결 수월하다. 물론 편리함의 기준이기는 하지만
이런 시설물은 동계산행 때에 나름대로 그 효용성이 큰 듯하다.

역시 주능선 길답게 반대편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당초 오늘 하산길은 이른 바 곧은재능선으로 칠선봉에서 백무동쪽으로 내
려서는 능선길을 타기로 했다. 하지만 이리저리 길을 살펴보던 사들아우
는 칠선봉 바로 전방에서 우측으로 빠지는 큰새골로 방향을 잡는다.
(11:28)

지난 번 눈이 내린 뒤로 아무도 지나 간 흔적이 없는 그 길로 선두조가
서슴없이 내려 서는데, 이 길은 오히려 눈이 쌓여 내려가기에는 수월했던
것같다.

고도 약 400여 미터를 급경사로 내려서는 동안에는 서서 진행하는것보다
는 앉아서 진행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선두조가 러셀을 하느라 애썼겠지
만 엉덩이를 깔고 진행하는데야 땀흘린 수고로움이 무색할 정도이다.

급경사 길을 미끄럼치며 내려오는 도중, 바위의 돌출부분에 부딪혀 엉덩
이나 허벅지에 시퍼런 멍자욱을 간직한 사람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고,
산행을 마치고 바지 궁둥이부분이 찢어진 몇몇을 위해 바지공동구매를
추진하자는 긴급제의도 나올 정도로 모두 거침없이 궁둥이 썰매를 타고
내려왔다. 하긴 다른 하산방법이 없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계곡에서 가져 간 밥을 볶는 등하여 점심을 해결한 후 다시 계곡으로 내
려 서는데 생각보다는 계곡의 길이가 만만치가 않다. 우측의 지능선을
벗어나면 곧 나올 것 같은 계곡합수점은 한참을 내려 가서야 나타나게
된다.

계곡합수지점 약 30분여를 남기고 고로쇠 채취를 위해 우리와 반대로 올
라 오는 마을분을 만났다. 이 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이
계곡과 능선의 이름을 물어보니

계곡의 이름은 '새골', 내려 서는 길의 우측 능선을 가르켜 '곧은재'라
고 하는데, 좌측능선도 같은 이름을 쓴다고 한다. 그러하다면 주능선 칠
선봉 부근의 고개이름이 '곧은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계곡을 가로질러 좌측 사면으로 난 좁은 길을 진행하니 계곡이 탁 트이
며 드디어 합수골에 닿는다. 합수골은 첫나들이 폭포를 약 400여 미터
내려 선 지점이된다. 계곡에서 전방 우측의 바위 사면을 타고 오르면 백
무동에서 첫나들이폭포로 이어지는 산판길이 나온다. 이 곳에서 백무동
뒷풀이 장소인 느티나무집까지는 25분여 정도가 소요된다.

느티나무집에서 비빔밥과 두부,막걸리로 간단한 뒷풀이를 끝내고 각자
또 삶의 터전으로 향한다. 서울팀은 비좁지만 산죽님의 차량으로 모두
같이 이동하고, 부산경남팀은 17:30분에 출발하는 함양행 군내버스에 몸
을 싣는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 차창으로 보이는 만월(滿月)은 따스한 온기를 머
금고 있었다.



두류/조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