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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기록]

[산행기]지리산 수곡골-단천골

♣지리산 수곡골-남부능선-삼신봉-단천골 답사후기


♧산행일시 : 04년 8월 7일~8월8일
♧참석자 : 구리외 18명(대성마을 3명포함)

♧운행시간

07:10 의신출발
07:30 대성교 갈림길
07:52- 08:07 대성마을
08:14- 08:22 수곡폭포
08:32 단천마을 갈림길
08:36 염소목장집
09:00-09:20 양진암
10:32 남부 주능선
10:35-10:50 한벗샘 갈림길 공터 (이정표)
(배재길님 기록참조)

12:10-12:20 삼신봉/단천골 하산시작
13:20 계곡상류/점심
14:30 휴식후 출발
16:30 단천마을

♧산행후기


지리산 골짜기의 습한 기운과 짙은 숲향을 머금은 바람이 삼복더위와 삶에 지쳐 일찍 잠자리에 든 나를 살짝 찾아왔다.부드럽다는 느낌이 들던 그 바람은 서서히 맨살의 허벅지를 휘어감더니 이내 끈적거리는, 지리산바람답지않은 이상한 느낌을 준다. 갑갑함을 느끼다 벌떡 일어나보건만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 바가 있길레, 옆에서 들려오는 마음 가까운 이들의 두런거림도 애써 외면하며 다시 그대로 누워버렸는데, 어찌 깜박 잠이 들었나싶었는데 어느새 알람소리가 귀를 때린다. 그렇게해서 우리는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이른 아침부터 지리자락에 들어 갈 준비를 한다.

일사분란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산자락에 든다. 약 30명에 이르는 인원 중 가족과 함게 피서를 겸해서 온 몇몇이 산행에 빠지는 등하여, 대성마을까지는 19명, 수곡골로는 15명, 참으로 단촐한 인원으로 산행을 하게된다.

언제나처럼 맨 후미로 산자락에 든다. 매표소를 지나 고개를 오르자 짙은 숲향이 사방에서 저며온다. 후~욱하며 입과 코로 맞이하던 그 내음은 급기야 온 몸으로 차고올라 나의 몸과 마음을 진저리치게 만든다. 그러다가... 까닭모를 감정에 휘말려 무언가 쿡하고 치밀어오름을 느끼게도된다. 굵은 땀방울이 주르르 흐르고 있는 중에도 팔에는 소름이 끼치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한동안 찌부등하니 무겁던 머리는 하얗게 비워지는 듯, 어제 선잠을 잤음에도 그렇게 맑고 가볍게 느껴질 수가 없다. '지리자락으로의 듬', 나의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고양시키고 행복하게하는 귀하고도 소중한 통로다.

모퉁이를 돌자 대성골의 우렁찬 물소리가 들려온다. 물과 바위의 교합이 어찌 저렇게도 큰 소리를 낼까.... 인간들의 슬픈 역사를 목도하였고, 어쩌면 그 지독한 가슴앓이를 풀지못하고 있을 대성골은 아마 그리라도해야 시퍼렇게 응어리진 가슴을 풀 수가 있는 것일까.....

나의 땀과 눈물, 그리고 마음까지 실어 숲으로, 물길로 보낸다. 가끔씩 본류에 실려가지 못하고 소(沼)에 갖혀있는 물빛은 처연한 푸름이다. 오래전부터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골짜기가 머금고 있을 애처로운 마음과, 산자락에만 들어오면 상처받고 찌들린 심신을 토해내는 듯한 우리를 위무하느라 그 물빛속은 더욱 퍼래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약 40분여 길을 걸어 닿는 대성마을은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집 뒤에 우뚝 서있는 키 큰 후박나무의 이파리와 매끈한 수피가 싱그럽게 느껴진다. 아직도 '순수'란 말이 느껴지는 집주인 기식씨와 모처럼 인사나눈다. 그러고보니 일년만이다.

대성마을에서 잘 나있는 길을 그대로 진행하면 작은세개골(다리)-큰세개골(다리)-남부능선-음양수샘-세석평원에 이르게되지만, 이곳에서 우리는 그 길을 뒤로하고 오른쪽 아래의 계곡으로 내려서서 건넌다. 만약 비가 많이 왔다면 수곡골길 답사는 포기하는 것이 좋다.

계곡을 건너, 계곡 물길로 떨어지는 작은 능선을 에돌면 습하고 짙은 골짜기가 나타난다.이 골짜기가 바로 수곡골이다. 아직 산길로서는 사람들의 때가 덜 탄 곳이지만 예전에는 동쪽으로 남부능선 너머 거림마을로 갈 때 잘 이용되던 길이었다고한다. 마을을 이루었던 이 골짜기에는 지금은 사람이 살지않고 집터 흔적만 남아있다.

희미하기는하나 산길은 계곡의 왼쪽으로 잘 이어진다. 그리 조금 걷다보면 길이 왼쪽 능선쪽으로 오른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나오는데, 그 곳에서 계곡쪽으로 곧장 진행하는 길이 있다. 이리로 가면 시원한 물보라를 만들고있는 수곡폭포를 만나게된다.

잠시 폭포 앞에서 더위를 씻으며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갈길 바쁜 우리들은 다시 길을 나서야만한다. 그렇게 묵은 길을 걸으며 고도를 올리며 한참을 걷다보면 붉은 양철지붕으로 된 산중암자인 '양진암'을 만나게 된다. 대성마을을 출발한 지 약 1시간여만이다.

이 깊은 산중에 어떤 인연으로 저리 처절하고도 외롭게 마음을 닦으려고했을까? 서쪽으로 공간이 훤하게 트여 방향을 그리로 잡고있는 암자의 마당에는 상추등 채소가 심어져있고, 우측 모서리에는 잣나무가 심어져있다. '뜰 앞의 잣나무'라...

불교에서 선(禪)의 목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방법은 화두(話頭 또는 公案)를 붙잡고 탐구하는 것인데, 대개는 논리적인 해답을 얻을 수 없는 물음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그 수많은(1700여개) 화두 중의 하나가 바로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祖師西來意), 뜰 앞의 잣나무다(庭前栢樹子)"라는 화두라고한다. 나도 잘 모르는 이 이야기는 이즈음에서 접어야겠다.

양진암을 나와 이제 남부능선 오름길을 치고 올라야하는데, 묵은 바위길은 이끼가 그대로 서려있어 매우 미끄럽다. 그 이끼를 밟으며 지나가는 것, 그 또한 아픔이라고 길을 같이 걷던 어떤 이가 말했다. 산길은 대체적으로 정동(正東)방향으로 이어지는데, 남부능선에 거의 이르는 마지막 오름길은 마치 왼쪽으로 크게 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 쉽지만 나침반을 보면 거의 정동으로 진행하고 있음을 알 수있다.

모처럼 키 큰 산죽이 얼굴을 때리는 길이 한동안 이어지고, 이윽고 하늘이 열리면 우리는 남부능선에 닿게된다. 능선상, 양쪽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 있는 곳은, 그 곳이 고스락이든,안부(鞍部)이든 '재''티''치(峙)'등의 이름을 붙인다. 즉 '고개'라는 말이다. 그래서 방금 우리가 올라 온 능선상의 지점을 '수곡재'라고한다.

남부능선에 닿은 뒤, 우측(남쪽), 즉 삼신봉 방향으로 조금 진행하면 '한벗샘' 가는 길이 나오고 이정표가 서있다. 한벗샘에서도 동쪽 사면 아래로 내려서는 길이 있는데, 이 골짜기의 이름이 자빠진 골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곳이다.

몇몇이 물을 보충하러 간 사이 그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구리형님의 배낭에서 무려 5개의 큰 참외가 나온다. 무게가 만만찮았을텐데 고맙기도 미안하기도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설탕님도 사과를 꺼내다가 구리님의 참외를 보고는 도로 배낭에 집어넣었다고한다.

이정표 도착시간 10:30분, 운행시간을 감안하여 점심은 단천골 상단부에서 하기로하고 잠시 휴식후 삼신봉으로 향하는데, 정말 더워도 보통 더운 날씨가 아니다. 능선길 앞뒤로 산행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오늘 행사에 처음 참석한 지리산꾼 배재길님은 단천지릉으로 진행하여 하산, 다시 의신마을에서 만나기로하고 헤어진다. 잠시 산길을 달리한다고 님이 가져 온 중국술 죽엽청주를 한잔씩 돌렸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독한 술이 산뜻하게 느껴진다.

가끔씩 바람이 부는 전망대에서 휴식을 취하며 1시간 남짓 걸어 삼신봉에 닿는다. 2004년 우리 '지'산'님들이 시산제(始山祭)를 지낸 곳이다. 새해의 그 다짐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지만 제대로 이루어지거나 마음먹은 대로 취한 바 없음이 너무도 아쉽다.

삼신봉은 그야말로 지리주능선 전망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주능선 조망이 잘 되는 곳이다. 그 장쾌한 마루금은 가슴을 후련하게 해 주다가도 한없는 그리움을 가슴가득 안겨주기도한다. 오늘은 개스에 둘러싸인 천왕봉이 끝내 그 모습을 드러내지않는다.

이 삼신봉은 마치 두 갈래 능선을 고삐를 잡고있듯 분기점을 이루고 있는데, 동남쪽으로 길게 뻗어나가는 산줄기와 서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동남쪽으로 흐르는 마루금이 이른바 '낙남정맥'으로 낙동강과 섬진강,혹은 남해로빠지는 물길을 가르며 경남 김해까지 이르게 되고, 서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형제봉, 혹은 구재봉을 거쳐 섬진강으로 흘러들게된다.

삼신봉 아래, 산길쪽 바위벼랑 아래 옴폭 들어 간 공간에는 바위틈 사이로 정말 시원한 바람이 송송 나온다. 그 곳에서 자리를 펴고 우리는 소위 정상주를 한잔씩 돌리는데, 구리님 배낭에서 또 중국술 '회계산'이 나오는데, 아이쿠! 그 무거운 도자기병 채로 가져왔다. 무슨 술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중국의 거래처로부터 받은 선물을 가져오셨다니 아마도 귀한 술임은 분명한듯한데, 약술이어서 그런지 술맛은 그리 당기지는 않는다.

한참 동안 산상의 유쾌한 시간을 보낸 뒤 삼신봉 아래를 지나 오른쪽의 삼신봉능선쪽으로 잠시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단천골 초입이 나온다. 길을 막아놓은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 혹시나 다른 길이 있나 조금 더 진행해 찾아보지만 그 길이 확실하다. 늘 다니던 산길이 낯설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꽉 틀어막듯 둘러쳐진 목책을 넘어 산길을 내려선다.

예전보다 바위의 이끼도 많이 벗겨졌고, 길도 제법 환해져 있다. 숲향 가득한 이 깊은 골짜기를 걷는 아름다운 이들이여...유쾌한 이야기와 흥에 겨운 발걸음들에 오늘 이 오붓한 산행의 큰 보람을 느끼게 된다.

산길로 이어지는 물길은 생각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려 닿게된다. 거의 한시간 정도 진행해서야 찾은 물길은 그나마 수량도 적고 물도 깨끗하지 못하다. 13:00를 훌쩍 넘긴 시각, 여기서 우리는 점심먹을 준비를 한다.

組長을 잘 만난 組는 역시 점심시간이 아주 여유있어 보인다. 약간의 소주가 곁들여진 유쾌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약 20분여의 휴식후 본격적인 하산을 하게된다. 출발시각 14:30분, 운행상태를 보니 아무래도 계곡물에 몸 담글 시간여유가 없을 것 같다.

지금부터의 하산길은 길찾기가 그리 어려운 곳은 없다. 다만 계곡길이긴하지만 거의 1시간 이상을 산사면을 가로 질러 진행하며 점차적으로 고도를 떨어뜨린다. 물길 건너는 곳이 있어 내가 앞장을 서서 내려오는데, 바로 이웃 계곡인 선유동계곡으로 올라 용추폭포가 있는 단천지계곡으로 하산하기로한 이송아우와의 교신이 이루어졌다. 하산시간에 그리 큰 차이가 나지는 않으나 조금 늦을 듯하다.

산사면을 내려서자 계곡이 성큼 다가왔다. 반들반들한 큰바위들이 물길 한복판에서 흐르는 물을 희롱하며 포말짓게하는 바위와 물이 눈부신 계곡... 나른한 느낌과 함께 그대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아침, 대성골을 지나며 가졌던 무겁고도 진중했던 산자락과의 만남이, '포말지으며 흐르는 물길이 유쾌하게 떠들고 웃으며 흐른다'는 느낌으로 산자락과 이별할 준비를 한다.

본류 큰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를 지나고, 삼거리 지나 계곡을 건너오면서도 나는 뒤에 오는 사람들이 무었때문에 그리 운행이 늦어지는 지를 몰랐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사실 아무도 정확하게 입을 열지는 않지만) 극히 일부의 동지들이 옷입은 채로 알탕을 즐겼다는 이야기가 들렸는데, 나는 그 이름들을 다 잊어버렸다.

드디어 계곡을 벗어나 단천마을에 이르는 마지막 산자락을 걷는다. 저 아래 계곡쪽에는 물놀이 나온 사람들이 꽤 많이 들어 와있다. 마지막 산자락 모퉁이를 돌자 단천마을에 이르는 입구가 나오고 드디어 오늘 산행을 종료한다. 다소 휴식시간이 길었지만 약 9시간 20분여에 걸친 제법 긴 시간의 산행이었다. 이 푹푹 찌는 더위에 시종 유쾌한 모습으로, 아무런 탈없이 걸음을 같이한 지'산님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보낸다.

뒷풀이 준비하느라 먼저 내려간 산이가 연락해 노란색 버스가 이미 와있고, 당산나무 아래에는 아내만 산으로 들려보낸 피아골아우와 대기조 만강이가 얼음과자를 준비해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그 얼음과자의 맛은 잊지 못할 것같다.

나의 지리산 사랑은, 이제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사랑하게되어버렸다. 그 사랑은 마치 지워지지않는 문신으로 나를 드러내게하여 꼼짝을 못하게하거나, 혹은 난공불락의 벽으로 에워싸서는 나의 의지마저도 좌지우지할 지경에 이르게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病마저도 즐거워할 줄을 알고 있으니 어쩌랴.....
나의 이 병을 어이할까...


두류/조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