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의 글을 이 곳에 다시 올리며 마음을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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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즐겨찾는 선배들의 사람됨에 이끌려, 산을 다니던 것 보다는 그 어울림이 좋아
산을 찾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부산에서 밀양 천황산(현재는 재약산이
라는 옛 이름을 사용합니다), 청도 운문산, 언양 가지산
등을 당일 산행으로 다녀오
기에는 힘이 들었지요. 오히려 좀 멀긴해도 기차여행으로 접근이 용이한 원동
천태
산, 대구 팔공산, 구미 금오산, 김천 황악산등이 비교적 인기있는 산행지였던 걸로
기억납니다.
그러던 중 76년 1월초, 저는 이 산선배들로부터 저의 첫사랑을 소개받게됩니다.
7명의 작은
동아리로 운영되던 우리팀은 동계 지리산행을 결정하고 전원 참석키로
한 것이지요. 물론 막영산행은 아니었습니다. 중산리의 민박집을
이용하고 이른 아
침에 칼바위-법계사-천왕봉으로 올랐다가 장터목에서 하산하는 그야말로 고전적인
코스지만 당시로서는 자부심을
가질만한 산길이었습니다.
1월의 지리산 천왕봉....
그 첫사랑과의 첫대면은 부끄럽게도
저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다가서
게됩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모든 일을 다 기억해내기란 어려운
일입니다만,
깜깜한 밤에 차를 몇번이나 갈아타고서야 도착한 중산리 산골마을의 허름한 일자
형 민박집, 그 뜨끈뜨끈하던
구들목, 칼바위에 닿기도 전에 이미 휘어져버려 나를
허둥거리게만든 아이젠의 날, 능선을 오르자 버려진 초막처럼 을씨년스럽게 서있
던
법계사, 그리고 정상에 이르기 직전 마지막 오름에 목숨을 걸다시피(?) 엉금엉금
기어오르던 공포의 순간들, 등정의 기쁨에 들떠있던
선배들과는 달리 '두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나의 모습등은 오랜 시간이 흐르긴해도 아직 선명하게 각인
되어 있는 당시의
단상들입니다.
산을 내려온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다만 집으로 돌아온 뒤 며칠동안을 그
산에서의 기억으로
열병을 앓았던 것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나도 이제
그 산을 당당하고 늠름하게 만나고 오르리라'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외면하지 아니
하고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것, 바로 첫사랑의 시작이었던것 같습니다.
그후로 그 열병을 앓았던 바에
비하면 지리자락으로 자주 가지는 못했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그 곳으로의 접근이 쉬운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가끔씩
틈나는대로 산
자락을 기웃거리기는 했지만 첫대면과 같은 그 치열한 산행은 하지않았습니다.
제법 긴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장년의 시절에 그 곳을 오른 때였습니다. 늘 오르던
그
곳이었지만 왜그런지 그 날 저는 정상석을 붙잡고 저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답답함, 우울함, 그리고 그 시절이 주는 고단함으로 지쳐있던
한 사람이 첫사랑의
포근한 품에 안기다보니 감정이 북받혔던 모양입니다. 정말
그러하였나봅니다.
그러고는 다시 느낀 그 첫사랑의 감정을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겠다며 저는
저 자
신에게 감당도 못할 다짐을 하고 맙니다.
'지리자락을 외면하면 너 자신에게 배신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다행히 그 사
랑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간혹 조금이라도 게을러지려하면 쓴소리로
저
자신에게 엄격해지려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그 곳으로의
다가감만을 오로지하겠다는 맹세를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랑을 무슨 이유나 목적을 달아
설명할 수 없
듯이 말입니다.
스무살 즈음, 비수같이 날아 들어와 박힌 매서운 첫사랑으로 다시 돌아가 순종하
며
살으렵니다.
다시 만난 첫사랑....
정말 잃지않고 싶습니다.
두류/조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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