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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종주]

詩와 함께한 지리종주[1]

10월 첫째 주, 개천절 연휴 지리종주에 들다.

치밭목대피소에서 맞이한 아름다운 별빛, 그 눈시린 별빛에 취했는지 잠을 잊다.

고작 3시간 여의 짧은 잠이었지만, 숙면을 취한 비박도 달콤했다.

 

오랜 시간동안 함께 한 75리터 배낭이 낯설고 부담스럽다.

구절초,쑥부쟁이,투구꽃..풀꽃들이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느라 바쁜 사이,

산자락은 군데군데 붉은 붓질을 시작한 듯 또한 바쁘다.

 

이번 걸음에는 풀꽃들에게 양해를 구해야겠다. 몸하나 운신하기도 힘든 터라

데려가지 못하겠다고

 

다만, 시인의 아름다운 노래와 풍경에 내 지친 영혼과 육신을 정화시키고 싶다.

 

다음은 오래 전 나의 산행노트에서 옮긴 글이다. 함께 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별빛 쏟아지는 밤풍경을 만나다 보니 이 기록이 머리에 떠 올랐다.

 


[치밭목대피소 뒷마당에서 바라 본 중봉]

 

『외로움이 몸을 휘어감는 어느 조용한 저녁,  홀로 외롭게 치밭목에 올라
뒷마당을 서성거려보자.  숨막히듯 농밀한 숲과 밤의 정령들에 몸을 맡기고, 달과

, 혹은 내리는 비와 ()에게까지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어보자. 대화의

대상은 곳에 존재하는 어느 것이라도 좋겠고,  ' 다른 '라면 더욱 좋을

하다.

숲과 , 밤의 숲에 침잠되어 보자.  아마도 우리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아우르

숲에 동화되어 대자연의 일부분이 자신을 발견할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일상에서의 묵은 때와 고단함,고독감을 떨쳐버리고 한없이 왜소해지는 자기자신을

위로하며 '바로 ' 사랑해야겠노라고 다짐하며 손을 건네게 지도 모를 일이
.

 


[중봉 아래에서 바라 본 지리주능선. 중앙에 반야봉의 모습이 보인다]

 

■눈물/권경업 시

 

눈물이 뜨거운 것은

너를 바라본 내 눈을 식힌 때문이다

 

언 손 맞잡고 부벼댈

잘 있었습니까. 잘 왔습니다

한줄기 백두대간

아직 봄은 멀어 차가운 이 세상에도

뜨거워진 눈을 식힐 수 있는 것은

오직 눈물뿐

 

너를 바라보면 아! 눈물이 난다

 



[하봉 헬기장 오름길의 숲]

 


[하봉헬기장에서 중봉을 배경으로]

 





[중봉에서 바라 본 천왕봉]
 

 

■우뚝 선 사랑-천왕봉/강영환 시

 

보았니 한 밤 중

지상에 내린 별들이 가만가만

발끝으로 걸어가고 있는 산 끝

태극에 서 보았니

 

산이 돌고 물이 돌아

가슴속에 흘러가는 별 무리가

심장에 흐르는 피를 멈추게 하는 그 때

산도 없고 나도 없는

 

맑은 숨소리로 거울을 닦는 별을

가슴에 하나씩 품고

우주 가운데 서 보았니

이보다 더 눈물겨운 빛을 간직할 수 없는

우뚝 선 사랑을 보았니

 

 


[천왕봉에서 바라 본 주능선]

 


[천왕봉에서 만난 산그리메]

 


[통천문]

 

■하늘로 가는 문-통천문/강영환

천왕의 심부름으로 지상에 내려 갈 때

구름 드나드는 바위 문 출구에는

하늘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부정한 자는 출입을 못하느니]

 

도처에 문은 엄숙하다 때로는

좌절의 아픔을 남겨 주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만든 문을 목에 건다

 

[사람에게는 지나야 할 문이 있다]

 

말씀을 전해 주고 서있는

하늘기둥天柱에는

[通天門]세 글자가 무겁기만 하다

 

 


[산그리메-남쪽]

 



 


[제석봉]

 

■그리운 안개-제석단의 안개/강영환 시

 

안개가 가끔은 그리울 때가 있다

한갈 앞도 보이지않는 지독한 현기증

관절염 같은 안개를 만나면

사지가 마비되어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한다

그런데도 제석봉에 이르면 안개가 그립다

나무가 하얗게 서서 내려 갈 길을 묻는

백골을 아픔 없이 가려주기 때문이다

신들의 회동이 끝난 제석봉이 비 아니면 안개로

안으로 가다듬은 수 천 년 호흡을 뿜어낸다

쫓기는 네게도 그렇게 다가섰을까

아직도 산을 넘지 못하고 서있는 나무는

하연 뼈가 다할 때까지 몇 천년을 더

하늘을 받들고 서 있어야 한다 가끔은

지독한 안개를 그리워하며

 


[일출봉 능선과 능파]

 


[장터목대피소. 일부 보수공사중이다]  

 

■안부를 묻다-장터목/강영환 시

 

시천 유기쟁이와 마천 옹기쟁이가

,가을로 안부를 나누더니

오늘은 노고단으로 가는 보리 문디와

치밭목으로 가는 찹쌀 깽깽이가 서로

지나갈 험로를 묻는다

 

언덕 아래 숨어사는 산희가

남녘,북녘 어느 고울에서도 오지 않는

장꾼을 기다리다 마른 애간장을 끓이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란다

 

북에서 오는 눈보라와

남에서 넘는 봄바람이

장터목에서 일없이 몸 섞는 4월

중천에 떠오른 해는

바람 사이 세월을 헤집어 본다

 


[일출봉 능선]

 


[연하봉 오름길에 되돌아 본 천왕봉]


[세석고개에서]

 



[사진 오른쪽 아래 불켜진 세석대피소, 그 뒤 영신봉. 왼쪽 뒤 멀리로 반야봉이

보인다. 산자락은 먹구름이 몰려와 벌써 어둠에 휩싸여 있다]




 

■어둠을 넘어서-세석고개/강영환

 

지척에 세운 촛대에는 불이 꺼지고

그믐이라도 천왕을 밝게 보라 한다

운무 속 산장은 아득하여

쫓기는 이의 고달픔에 고개가 높다

땀 씻은 바람이 뚝뚝

무거운 물방울을 지상에 떨군다

까마득한 어둠 속을 달려 온 사람들이

맨발로 평전에 간다

누가 고개에서 쉬어 넘지 못하는가

정해진 거처가 없는 바람처럼 나도

견고한 거처 하나를 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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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를 방불케 하는 세석대피소에는 지친 내 몸하나

쉴 곳도 없다. 오후 6시를 조금 넘긴 시간,

아침에 담아온 마른 밥이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갑자기 내리는 빗방울이 심상찮다. 

 

물로서 밥을 먹다 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 났다.

사람찾느라, 자리찾느라, 비 핑계대느라, 

허비한 시간이 1시간이 넘어버렸다.

 

벌써 19:10분,

 

혹시나 마음이 바뀔까 봐,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능선으로 달리듯 올랐다. 

 

캄캄해진 사위에 온 몸이 눈을 열었다. 

걸음이 빨라진다. 다행히 백두대간 첫구간을 걷는

이천에서 온 분을 만나 편안한 마음으로 걷다.

 

우리보다 조금 앞서간 젊은 분들은 선비샘에

비박 플라이를 이미 쳤다.

 

22:30분, 벽소령에 도착하다.

다행히 은아우가 자지않고 대피소 창구를 지키고 있다. 

가지고 간 김치를 건네며 반가운 해후를 하다.

 

오랜만의 만남은 우리를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한다.

 

비를 뿌리던 하늘은 언제부터인가 영롱한 별들이

자리잡고 있다. 갑자기 눈이 시려지면서 물기를 

느끼다. 

 

아우의 배려로 침낭을 꺼내지도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