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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종주]

詩와 함께한 지리종주[2]

 

[벽소령대피소]

 

 

 

 

 

■볼쌍 사나운 꼴-형제바위/강영환

 

형제봉 포근한 가슴에 안겨
마른 숨 토하며 쉬고 싶은 곳
그러나 형제는
볼쌍 사납게 서로 돌아앉았다.
답 없는 다툼만 남아
서늘하게 산녀의 유혹을 떨쳤다
유혹에도 한 번 쯤 빠져도 볼 일이지
이승의 일 얼마만큼 안다고
사나운 꼴로 길을 지키는가
등 맞대고 견딘 꼴이 가관이라
지나는 이마다 웃음거리 되게
떡갈나무는 키도 세우지 않았더라

 

 



 

 

[형제봉]

 

 

[형제봉 지나 되돌아 본 지리주능선. 중앙 왼쪽 솟아오른 봉우리가 천왕봉이고 왼쪽으로 중봉,

하봉이 이어진다. 사진 뒤,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것은 촛대봉 능선. 영신봉에서 시작되는 낙남

정맥(남부능선)은 중첩되어 확인이 잘 되지않는다. 중앙 오른쪽 높은 봉우리는 덕평봉]

 

   

 

[연하천대피소. 사진 오른쪽 맨 아래에 있는 이가 산장지기인 노대장이다]

 

 

■떠도는 영혼-연하천/강영환 시

 

푸욱, 한 사나흘 쉬어감도 좋으리

천년 가뭄에도 솟는 물이 좋으니

삼나무 그늘에 자리 깔고 누워

집을 잊어 먹는 일 흔한 일이다

 

집없이 떠도는 푸른 안개는

목 마른 빨치산들의 그리움

쫓겨 온 그늘에 아물지 않은 상처는

연하천을 아직 떠나지 못한다.

 

잡목 우거진 숲에 누워 있는 자

그 넋까지 한자리 불러 앉혀

몸에 감긴 붉은 문신을 베어 먹고

구상나무는 수도승처럼 뼈골만 남아 있다.

 

 

[토끼봉에서 바라본 반야봉의 모습]

 

 

■비밀-반야봉/강영환 시

 

검푸른 눈은 볼수록 맑아지고

산길 내내 가슴 설레게 했던 여인은

부끄러운 몸 어디로 숨어 갔는지

정작 보이지 않는다

서서도 보고 누워서도 보고

눈 버려가며 탐할 일은 무엇인가

구름 속에 떠있는 노고단은

가진 것이 외따로 떨어진 하늘뿐이고

만복대는 먼 전설속 궁궐 같아

저로 마음 가벼워진다

지리산은 어디서나 깊은 산이니

반야의 혼은 집에 가서 느낄 일이다

 

 

 

 

 

 

 

[토끼봉]

 

 

■지보초-토끼봉/강영환 시

 

아직도 눈에 남아 있는지 몰라

골짜기에 뒹굴던 임자없는 주검들

피아간 마지막 일전을 숨겨 가진

넓게 트인 봉우리에 엎드린 지보초

여저기 흩어져 전설처럼 슬프다

빨치산 질긴 손이 목숨을 보전하던 풀은

박토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철쭉 관목을 계관처럼 두른 구상나무는

토벌꾼처럼 아직도 뻣뻣한 채

화개골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그늘 깊은 뱀사골 검푸른 조망에

노을은 절로 숨을 멈춘다

 

 

 

 

 

 

[토끼봉 아래에서 바라본 불무장등. 중앙 저 멀리 뾰족 솟은 봉우리가 노고단]

 

 

[화개재. 전망대에서 삼도봉을 보고 찍은 모습. 사진 왼쪽이 목통골, 오른쪽이 뱀사골.

뱀사골로 조금 내려서면 뱀사골대피소가 있다]

 

 

■붉은 비-화개재/강영환 시

 

어디를 그렇게 서둘러 갈까

목통골 건너 온 구름은 몸이 무겁다

화개장에서 무슨 짐을 졌는지

뱀사골 그늘로 쉬이 내려서지 못한다

앞서 가려고 밀치고 당기는 나무들이

충혈된 눈에서 지워지고

쓴 바람소리 뜬 물소리가 귀를 빠져 나간다

뼈에 드는 뱀사골 그늘을 거느리고

산의 침묵이 숨어 쉬는 화개재에서

비가 피 되어 내린다

피가 비 되어 내린다

 

 

 

 

 

[삼도봉 오름길의 550계단. 아마도 딴 생각을 하며 힘들다는 생각을 잊어버려야 쉽게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서 480계단 쯤 오르면 오른쪽으로 붉은 함석을 이고 있는 묘향암이 보인다]

 

 

[삼도봉. 전북 남원,전남 구례,경남 하동의 3도가 모이는 곳. 예전에는 날라리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졌다.]

 

 

 

[목통골 방향으로 본 삼도봉]

 

 

■날라리봉-삼도봉/강영환 시

 

가까운 반야봉에 녹음이 짙고

먼 섬진강은 소리죽여 젊은 넋을 달랜다

바위 등에 올라 노고단 바라보면

지나온 길 아득하고 갈 길도 마찬가지

불무장등에 육자배기 뽑을 일 절로 생긴다

 

낯익은 봉우리를

입 속으로 가만히 읊조리기만 해도

어깨 들석이에 하지 않던가

낫날봉,낫날봉,날라리봉

동편제를 넘는 송만갑의 홍보가가 들려온다

 

가슴에 흐르는 피의 소리

어는 산에서 신명으로 다시 토할 텐가

살 떨림에 소리를 질러 본다

듣는 이 어느 곳에 없어도

힘 뻗는 불무장등이 득음을 한다

 

 

[삼도봉에서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를 가르며 이어지다 섬진강에 몸을 담구는 불무장등.

이 기록에 인용된 강영환 시인의 시집 이름이 '불무장등'이다]

 

 

[임걸령 샘터 입구에 2005년 8월(?)에 심은 기념목].  

 

 

■그대 앞에 놓인 빈 술잔-임걸령/강영환 시

 

임 두령은 어디로 갔는가

저 푸른 능선을 고리 눈에 넣고

이 검은 골을 왕발 끝에 놓아

산야의 간담을 서늘케 하던 도끼는

잡풀 속 어디에서 녹슬고 있는가

두어라 홀로 세월이 되게

산객들의 발길질에 채인 산채 우물은

아픈 가슴을 쓸어안고 아직도 펑펑

잊혀진 왕조의 골짜기로 흘러가는데

그대 앞에 놓인 빈 술잔에는

캄캄한 이슬만 방울방울 맺혀있다

누가 세월을 탓하고 가는가

 

 

 

 

 

 

[돼지령 오름길에서 숨 고르며 만난 풍경]

 

[돼지령에서 바라본 왕시루봉]

 

■누워서 하늘을 본다-돼지평전/강영환 시

 

노고단 고개에 다 와 가는

종주길 긴 끝머리에서

간간이 죄어오는 허벅지 통증은

긴장이 앞서 풀린 탓일 게다

돌아온 길을 되짚어 볼 여유도 없이

한 숨 돌리지 못한 몸은 지쳐있다

여기쯤 오면 누구든

자음과 모음이 결합되는 말이

입속에서 소용없게 된 때

내달리는 사람은 먼저달려가고

남는 사람은 누워서 여유를 가져 보는 곳

맨몸에 왕시리봉 트인 조망에

아직은 살아있는 무릎을 푼다

 

 

 

 

 

 

 

[노고단고개의 돌탑]

 

[노고단]

 

 

[노고단에서 바라 본 종석대와 구름, 그리고 노을 조각]

 

 

■운해 속에서-노고간/강영환 시

 

어이에서 몰려 왔을까

,해,만,리

한 점 소리도 떠오르지 말라

산허리를 안고 속세를 덮는다

화엄골은 소리없이 메워지고

몸을 낮춘 구름이 산을 높인다

차일봉은 점점이 멀어져

부드러운 항해를 꿈꾸는 섬이거니

몸의 신경세포를 가닥가닥 풀어내

몰래 가서 다시 빚은 형체

나도 섬으로 띄워

다도해 아침에 한 몸을 더한다

 

 

[노고단대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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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소령의 밤, 나도 아우도 그리 깊어 갔는 지 몰랐다. 별을 헤아리지도, 잔을 헤아리지도

않았는데... 두 아이의 아버지인 아우의 산상생활, 늘 건강하길 빈다.

 

치열해야 할 홀로산행, 갈 길 먼 나그네는 너무나 태평스럽게 09시 기상이다.

그러니 이곳 저곳 둘러보지만 이미 떠난 코재는 찾을 수가 없고... 

 

10시 경에 작별하고 길을 나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는 걸음이 형제봉을 넘어서자

다소 처지기 시작한다.

 

'유혹에도 한 번 빠져볼 일이지/이승의 일 뭘 안다고..'

형제봉 지날 때는 돌아앉아 있는 바위를 한번 쯤 바라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통쾌한 시인의 일갈이다.

 

연하천대피소, 노대장이 반갑게 맞이한다. 우린 그저 보고 웃는 것이 인사다

이 곳은 오래 전 아들아이와 동계종주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그 때 산장에서

만든 이글루에서 소줏잔 나누다가 서로 알았다.

 

토끼봉 너머 오느라 혼이 난 그 중학생 아이가 올해 말이면 제대라니...

 

아침을 거른 터라 망설이고 있는 중이었다.

 

뜻밖에 음정에서 올라온 부산의 전 직장동료들을 만나 일거에 고민이 해결되다.

동료들이 가져온 김밥으로 함께 점심을 먹다. 아울러 조금 전까지 마음에 두던

몇 가지 근심까지 여기서 다 해결이 된다.

 

늦게 출발한 게 오히려 반가운 만남과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세상에는 버릴 일이 없다.'는 명제를 다시 확인하다.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계단을 오르는데, 걸음이 조금 가벼워 진 듯하다.

하지만 토끼봉 오름길은 여전히 길고 힘들다.

 

생태계 복원한다고 들어가지 못하게 해놓은 화개재 다리 목책 사이의 너른 공간은

폐자재로 온통 널브러져 있어 마음을 편치않게 한다.

 

하지만 그대여, 그럴 마음의 여유가 있는가.

550계단 오름길이 기다리고 있다. 이 곳은 딴 생각을 하며 올라야 쉬이 오를 수 있다.

엉키는 셈부터 시작해서 무수한 생각끝에 삼도봉에 닿았다.

몸만 움직이고 힘들다는 생각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왠 일인지 삼도봉을 쉬이 떠나지 못하고 오랫동안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부드럽게 드리워진 불무장등의 유혹때문이었을까?

 

멀리서 보이는 노고단은 늘 거리보다 멀게 느껴져서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임걸령 샘터의 물빛은 여전하다. 다만 목책속에 갖혀있다는 느낌이 들어 안스럽다.

 

은근하게 걸음을 더디게 하는 돼지령 오름길, 빠른 걸음으로 올랐다.

이 길은 힘들다고 느끼면 한없이 힘들게 되는 곳이다.

 

노고단 고개에 들어서자 어둠을 묻힌 바람이 꽤 스산하다. 쟈켓을 걸치고 한참을

주저앉아 어둠의 하늘을 응시하다. 오늘은 저 위에서 들려주는 울림도 없다.

그저 이 자리에 있음만으로도 행복해 하자.

 

빨리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야함은 언제나 아쉽다.   

 

18:50분, 마중나온 산하 아우가 기다리는 성삼재에 도착하며 산행을 마치다.

반선의 일출 춘식아우 내외에게서 정깊은 대접을 받다.

 

 

긴 기록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두류/조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