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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종주]

[스크랩] 태극능선, 발길 닿는대로 걷다 - 제 2일차

< ♣지리산 태극종주 제 2일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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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자 : 두류/조용섭, 만강/김정구
♧답사코스 : 밤머리재-깃대봉-왕등재-새봉-3거리-조개골 입구 3거리(지계곡 초입)
♧운행시간
-8월 15일
09:00 기상
11:30 산행시작
12:20 도토리봉
14:23 깃대봉(동왕등재)
15:10 왕등재/중식
16:23 출발
19:33 새재
21:50 새봉
22:35 독바위
23:14 3거리
23:25 운행중지/되돌아 옴
23:55 3거리/휴식

-8월 16일
00:10 계곡 내려 옴
01:15 조개골 입구 3거리(지계곡 입구)
04:00 취침

♧답사후기


새벽 4시경 불어닥친 세찬 바람과 플라이를 때리던 굵은 빗줄기는 먼 산길을 떠나야 하는 우리
의 마음을 아예 답사포기쪽으로 몰아붙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을 편히 먹고 푹
자고 일어났더니 황당하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 조금 흐리기는하지만 하늘은 멀쩡하다.

새벽에 잠을 깨긴했어도 어제보다는 확실히 컨디션이 좋은 것 같다. 기상 후 아침식사를 하고 장
비정리와 배낭패킹을 하는데 무려 2시간 이상이 흘러가버렸다. 기상상태때문이라고는하나
야영후 출발이 너무 늦어졌다. 하지만 체력이 버텨 주고, 날씨만 제대로 받혀준다면 야간산
행으로 갈 수 있는 곳까지 최선을 다해 가보자고 다짐한다.

[밤머리재][이 곳에서 삼장면(대원사쪽)으로 조금만 내려서면 도로가에 물이 나오는 곳이 있다]
[오른쪽 산자락 이정표 있는 곳이 웅석봉 오르는 등산로] [좌측 달뜨기능선과 딱바실골등 홍계쪽의 산자락. 오른쪽 정면 희미하게 나있는 길이 덕산가는 길]

도토리봉 오름길의 경사도 만만치가 않다. 어제 식수문제로 혼이 난 우리는 왕등재에 물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하고도 각각 2-3리터의 식수를 배낭에 넣었다. 잠시 오르면 잡초가 무성
한 헬기장 터가 나온다. 예전에 두어번 야영을 한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다.

도대체 대여섯 시간전까지만해도 우리를 추위에 떨게 만들던 그 날씨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온
몸은 이내 땀범벅이 되고, 새벽녘의 비때문에 산길 옆 풀섶이 머금고 있는 물알갱이도 고스
란히 다 받아들여야한다. 이내 온몸과 옷, 그리고 신발도 다 젖어버린다. 산길 주변의 풀섶
에는 풀꽃들이 한창 피어나고 있다. 몇 번의 휴식을 취한 끝에 도토리봉에 오른다.

도토리봉에서는 방향이 약간 우측으로 비켜 진행하는데 한동안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이렇게 내
려선 길은 깃대봉 오름길에서 또 한번 고도를 엄청 올려야한다. 깃대봉은 국립지리원 발간
지형도상 왕등재라 표기되어있는데, 무책임하게도 지형도상 서쪽에 있는 진짜 왕등재와 함
께 2군데를 똑같이 왕등재라 표기하고있다. 그래서 흔히들 깃대봉을 동왕등재라는 이름으
로 구분하여 부르기도한다.

급경사를 이루는 산자락 위에 버티고 있는 봉우리를 보고있노라면 심리적으로 지레 지쳐버리기
쉽다. 그래서 위를 쳐다보지않고 한발한발 땅만보고 움직여 산을 오른다. 저녁늦게까지 운
행을 하려면 오버페이스도 안된다. 다소 속력이 늦어지더라도 지치지않을 정도의 페이스로
천천히 오래 걸어야한다. 자연히 운행속도는 늦어진다.

숲에는 참나무 중에서 이파리가 큰 떡갈나무와 신갈나무가 많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열매(도토
리)가 하나도 남아있지가 않다. 산길 사면 군데군데에는 멧돼지가 땅을 파헤쳐놓은 흔적이
자주 보인다.

이따금씩 가는 빗방울이 뿌려 갈 길 먼 우리를 불안하게하는데 다행히 더 이상 내리지는 않는
다. 오히려 오늘같이 흐린 날이 운행하기에는 훨씬 수월하다. 푸드덕하는 소리에 깜짝 놀란
다. 큰 꿩 한 마리가 쏜쌀같이 내뺀다.

깃대봉 오르는 사이 마루금 좌우에 있는 마을들의 모습이 아주 깨끗하게 잘 보인다.
[산청군 산장면 홍계,유평,대포리의 마을들]

[왕산-필봉산 능선과 산자락 아래 수철리,향앙리의 마을들]

깃대봉에는 부서진 삼각점이 있는데 반파되어있다. 이 곳에서 동남방향으로 떨어지는 길은 대원
사 들어가는 들머리에 있는 평촌마을로 내려서게되며 중간에 밤나무단지가 있다.

이제부터는 길도 비교적 평탄하고 숲길도 잘 나있다. 그런데 나로서는 조금 좋지않은 시비거리
가 생겨버렸다. 길 주위에 서있는 철쭉은 툭툭 나를 건드리며 슬슬 시비를 걸어오기 시작했
다. 내 키가 크다나 어쨌다나... 거의 하루종일 배낭이 철쭉가지에 걸려 힘을 낭비하게된다.

산길에 붉은 노끈을 쳐놓은 곳이 한참동안 이어지는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산죽사이의 길을 오르며 또 한바탕 땀을 흘린다.

[산죽사이길을 걷는 만강]

주능선이 많이 가까워져 있으나 아직도 아득하다. 오늘 저기까지 닿을 수 있을까...

[왼쪽의 볼록 솟은 봉우리가 중봉이고 우측 능선은 두류능선]

남쪽으로 나있는 바위전망대에서 남쪽을 향하여 하염없이 보고있으니 남해바다까지도 조망이
된다. 흐린 날씨이지만 시야는 깨끗하다.

가볍게 올랐던 기억밖에 없는 왕등재 오름길을 오늘은 무척 힘겹게 올라 왕등재 습지로 이동한
다.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에 배낭을 풀고 점심준비에 들어간다.

[정면에 보이는 풀밭이 왕등재 습지]

[왕등재 습지 다리위에서 만강(위).두류(아래)]


의외로 습지에서 흐르는 물은 수량도 많고 녹색을 조금 띠긴 해도 깨끗한 것 같아 그대로 마시기
로한다. 점심시간을 최대한 단축한다했는데도 약 40분이 걸려서야 배낭정리가 끝나고 출발
한다.

[참취] [?]

왕등재에서 외고개,새재로 이어지는 길은 왜 그런지 늘 정신이 없어 능선의 좌우로 내려서는 길
들을 확인하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키낮은 나무들의 저지선을 뚫으
며 억새가 무성한 외고개, 그 정신없는 길을 통과한다. 짧은 셔츠를 입어 드러난 팔에는 몇
자욱 흔적을 남기게 된다.

능선의 오름길 턱을 넘어서니 바람이 조금식 불어오는데, 휴식을 취하며 가만 있으니 어느 사이
엔가 그 거침없이 울어제끼던 매미소리와 새소리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갑자기 숲은
적막해졌고 어둠의 색으로 엷게 채색되어 있다.

새재로 내려선다. 왼쪽으로 불이 켜져있는 윗새재마을이 아름답고 평화롭다. 우리도 헤드랜턴
을 꺼내 오늘의 야간산행에 대비한다. 지금부터 올라야 할 새봉까지의 오름길은 고도도 고
도이거니와 험하기도 해서 긴장감을 늦추지않고 한발한발 조심스럽게 올라야한다.

랜턴에 비치는 풀섶에는 며느리밥풀꽃 천지이다. 꽃들이 놀랄까싶어 카메라 들이대는 것을 포기
했다. 아주 밝지는 않지만 하늘에는 어느새 별이 총총 떠있다. 마침 오늘이 음력 그믐날이
다. 하늘은 칠흑같이 깊은 어둠이다.

오후 10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새봉에 닿았다. 멀리 마을에서 비치는 불빛도 맑고 평화롭다. 사
위가 캄캄할 때 다른 방향에서 여기저기 나부끼는 표식기(시그널)는 그 것을 진행 좌표로 삼
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혼돈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방위각을 잘 살펴서 진행해야한다. 조심
스럽게 바위지대를 통과한다.

20여분 진행 후 독바위 바로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내려서는데, 어디선가 골짜기의 물소리가 크
게 들린다. 이미 밤 11시가 지난 시간이라 우리는 오늘 운행을 식수 구하기가 용이한 쑥밭재
에서 마치기로했다.

독바위에서 약 30여분 진행하니 능선상 3거리가 나온다. 직진하는 마루금길 좌측으로 웅석봉부
터 '백두대간종주'로 이어지던 모은행의 노란 시그널과 또 몇몇 시그널이 달려있다. 즉 조
개골 지류가 합수하게되는 3거리 방향으로 나있는 길로, 탈출 내지는 하산하기가 무난하겠
다는 생각을 하고 마루금길을 그대로 약 6~7분정도 진행을 하는데, 갑자기 길이 오르막길
로 바뀐다.

어! ... 이거 이상한데. 지금쯤 나와야 될 낯익은 쑥밭재가 나오지않고 왜 이리 오르막으로 연결되
는 걸까? 체력도 많이 소진되어 있는데다가 오르막이 연결되니 나름대로 당황을 하게된다.
만강이가 비무장으로 잠시 진행하고 되돌아오더니 계속 오르막길이란다.

나름대로 생각을 했다.

'쑥밭재(윗)는 조개골 3거리에서 올라 와, 하봉-치밭목대피소로 갈 때 올라서던 고개이다. 그 길
을 올라오다보면 큰 바위 있는 곳에서 길이 갈리는데, 좌측으로 돌아 진행하면 계곡 상단부
가 나오고, 바위 우측으로 진행하면 쑥밭재 뒤쪽, 즉 우리가 서있는 능선 3거리쪽으로 올라
서게 된다. 그러면... 여기서(능선 3거리) 내려가다가 큰바위 있는 곳에서 계곡쪽으로 돌아
가면 그리 힘들지않게 식수를 구할 수가 있겠다'는 판단을 하게되고, 조금 전의 능선 3거리
로 되돌아가 계곡쪽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이제 시간은 막 자정을 넘어가고 있다.

내려서는 길은 참으로 황당했다. 능선에서 작은 주름을 만들 듯 뻗어내린 능선은 생각보다 계곡
쪽으로의 길을 빨리 열어주지않았고, 거의 반 이상 내려와서야 시야를 트여주며 작은 물길
을 겨우 만나게 해주는데, 그 능선 3거리로 오르는 갈림길은 내가 생각했던 '큰바위' 있는 곳
이 아니라 조개골 3거리에서 올라온 지 얼마되지않아 나오는 곳이었다.

이 길은 산죽지대과 큰 바위돌이 많아 야간에 운행하기에는 아주까다로운 길이었다. 시그널은
드물기는하나 잘 붙어있었는데, 반갑게도 우식형님의 '사랑합니다'를 만났다.

되돌아 올라서기에 너무 지쳐있었다. 그대로 계곡 끝까지 내려서기로하는데, 왠일인지 그 길도
전혀 낯선 길처럼 보였다. 마지막 산죽을 뚫고 나가니 눈에 익숙한 이정표와 최근에 설치힌
통신관련 시설물이 보인다. 5분, 아니 길어도 15분여를 예상하고 물을 찾아 계곡길로 내려
섰던 우리는 무려 1시간여만에 지계곡의 상류가 아닌, 지계곡의 하류, 즉 조개골 본류에 합
수하기전의 매우 낯익은 너른 계곡에 당도한 것이다.

함박꽃나무가 있는 계곡 건너는 길에서 야영을 하기로하고 잔돌을 치우고 취사준비에 들어간
다. 이미 새로 한시가 지나있었다. 만강이는 벌써 물속으로 몸을 담그는데 나는 꼼짝도하기
싫었다.

[야영지 옆 계곡 :다음날 아침에 촬영]

그러는 대신에 씻고 나온 만강이에게 은근한 말로 물었다.

"만강아 술 좀 남아있나?"
"예, 형님 아직 많이 있습니더"
"늦었지만 나는 한잔 마셔야겠다. 내일 좀 일찍 출발하도록하자."
"예!"

그 다음날 우리의 배낭에 들어있는 조그만 소주 패트병 8개에는 모두 물이 가득 채워져있었다.

처음에는, 조금만 더 진행하면 될 것을 판단착오로 길을 놓친 나 자신이 미련스럽고도 아쉬워 한
잔하였으나, 조금 뒤에는 깨끗한 계곡물을 옆에 둔 정갈함과 포만감(수량)에, 또 깊은 밤, 깊
은 계곡의 정취에 취해 나머지 술들을 모두 마셔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만강이에게 물어보았다.

"만강아 주능선 가서 소주 앵벌이 할 수 있겠나?"
"행님 걱정 마이소!"

취침에 들어 간 시각은 새벽 4시, 어떤 이들은 일어나야 할 시간에 우리는 잠에 든, 참말로 '발길
닿는 대로''묻지 마' 산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불굴의 투지를 잃지않고 있
었음은 물론이다. 계곡 자갈이 조금 불편하기는 했으나 모처럼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두류]

[3일차로 계속]

출처 : 지리산 산길따라
글쓴이 : 두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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