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기록]

[비망록]함양독바위

by 지리산 마실 2003. 6. 26.
상내봉, 새봉, 노장대, 선녀굴, 함양독바위.....

사실 이 이름들에는 지리산을 자주 다닌다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곳들이 많다. 지리
동부능선 독바위 근처에서 산청군과 함양군을 경계지으며 북쪽으로 달리는 지능선이
있는데, 이 능선이 갈라지는 곳에 있는 동부능선상의 봉우리가 새봉이고, 지능선이
끝나는 곳에 있는 봉우리가 상내봉이다.

상내봉은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있는 이름난 사찰인 벽송사 뒤쪽 능선을 따라 오
르면 닿게 되며, 북쪽자락인 휴천면 송전리 송대마을에서 올라도 된다. 하지만 이렇듯
버젓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두 봉우리는 능선상에 우뚝 솟아있는 고스락이 아니라
그저 평평한 마루금상의 구릉지대일 뿐이다. 짐작컨데 이 봉우리들은 지리적인 중요
성등으로보아(분기점) 특별히 이름을 얻은 듯하다.

이번에는 지리산 동북부자락의 상내봉 아래에 있는 함양독바위 인근의 숲향을 느껴
보기로 한다.

경남 산청의 유림면에서 함양군쪽으로 들어서면 강을 가르는 다리를 지나며 휴천면
으로 들어선다. 이 2차선 도로는 함양 마천면으로 이어지며 지리북부자락을 바라보
다가 전북 남원의 인월면 혹은 산내면으로 연결된다.

이 도로를 따라 들어서서 진행하다보면 지리산 북쪽사면 골골의 물길을 보듬은 임천
강이 길 왼쪽 사면아래 길게 드리워져있다. 최근 '함양댐 건설'과 관련하여 환경단체
와 지자체간 거센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댐을 세우고자하는 곳은 휴천면 문
정리인데 이 인근에는 무속인들이 치성드리는 기도처로 유명한 용유담이 있다.

지자체가 추진하는대로 이 곳에 댐이 들어선다면 상류지역인 마천면 주위의 산자락
은 모두 수몰된다는 끔찍한 사실에 경악하지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지리산 생명연
대 등의 댐건설반대운동에 팔을 걷어부치고 동참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동네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댐건설에 찬성하는 이는 별로 많지않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지리산 북부자락을 많이 떠 받치고있는 함양땅에서도 산행코스로 가장 이름이 나 있
는 곳은 추성리, 백무동등 주로 마천면 쪽에 많이 있다. 이번에 답사하는 상내봉은
첫머리의 소개글과 같이 벽송사로해서 오를 수도 있으나 가까운 코스로는 송대리로
오르는 길이 있다.

이 곳은 워낙 교통사정이 좋지않은 편이라 그리 잘 알려진 곳은 아니나 대종교와
불교(문수사)와 관련된 종교시설이 있다. 송대마을로 들어가는 임천강 위의 다리가
지난 해 수해(루사)에 파손되어 재 가설공가가 한창이고 일부 드문드문 비포장도로
가 있긴해도 송대마을 산자락의 초입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이어져 있다.

송대마을로 오르는 길은 산길이 덜 알려진 편에 비하면 산길정비는 잘 되어있고,
특히 선녀굴이라는 특별한 이름과 사연을 가진 장소와, 대(臺)라는 이름을 붙여도
충분할만한 거대한 바위, 샘등이 있어 주능선으로 급하게 접근하려는 마음없이 느
긋한 산행으로 숲향을 즐길 마음만 있다면, 그 먼곳으로의 다가섬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이 코스로 오르는 길에도 빨치산 마네킨들이 서있는 모습이 보이기도하고, 옛 집터도
있으며 고로쇠고무관등이 많이 이어져있다. 산길은 아주 잘 나있고 길은 유순한 편
이다. 모처럼 산자락에서의 비박을 염두에 두고 오후 늦게 올라서는데 오후 7시가
다되어감에도 서쪽하늘에 걸려있는 해의 높이가 한참인데, 마치 발목잡혀 꼼짝을 못
하는 듯하다.

하지만 몸을 사르듯 마지막으로 비추는 햇빛은 강렬해서 잎새사이로 파고드는 빛에
숲은 환하다.

갈림길에서 계곡쪽으로 난 길로 계속 진행하면 선녀굴로해서 작은 능선을 타게되고
이정표가 서있는 대로 왼쪽 급경사 사면을 바로 치고 올라도 된다. 선녀굴 근처에는
집터가 있고, 굴 뒤에 드리워진 큰바위에는 빨치산과 토벌대간에 벌어진 총격전으로
생긴 탄흔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급경사 오르막길을 올라 잠시만 진행하면 멋진 바위전망대가 나온다. 확 트여진 서
쪽을 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산에 올라 일망무제로 탁 트이는 공간과 첩첩으로 이어지는 산자락들을 바라보다보
면 '우리가 살아가는 주위에 산이 있음'이 아니라 '산속에 우리가 들어앉아 있음'
이라는 생각을 늘 가지게 된다.

내가 땀 흘리며 산길을 걷는 사이, 멈춰 서 있던 해도 어느 새 황급히 서둘러 제 갈길
을 갔나보다. 바라보는 붉은 해의 모습이 왠지 처연하다. 마치 어쩔 수 없이 뿌연
대기속에 몸을 맡긴 듯, '그대로 있음'도 더 나아감도 모두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해는 져야하고, 또 내일 떠 올라야만한다.

이 길을 잠시 진행하면 좌측으로 함양독바위가는 길이 나오고 우측으로도 큰 바위
아래 샘이 있는 곳이 있다. 새재쪽의 바위를 독바위라하듯 이 곳의 커다란 바위도
함양쪽에 있다하여 함양독바위라한다. 독바위 조금 못미친 곳에도 거대한 절벽을
이루는 바위 아래에 소량이지만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그 바위 앞에는 절
터였는지, 집터였는지 구들장의 흔적이 많다. 혼자라면 그 밤의 기운을 감당하기
가 쉽지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동료가 있어 나는 이 곳에서 오늘 하루 밤을 보낸
다.

깊은 산중에서의 밤의 적막은 잔을 기우리는 산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로 한동
안 이어진다. 이슬을 피하기 위해 내 키보다 조금 높은 나무가지 위를 가로지으며
플라이를 펼쳐서 묶어 놓았다. 침낭은 그 아래에 두고. 비워지는 페트병의 소주량
이 만만치가 않다. 슬그머니 침낭속으로 들어가 모처럼 편안한 지리에서의 밤을
맞이하다.

함양독바위에는 최근에 낡아서 위험하던 나무사다리를 교체해놓았다. 또 지리산을
사랑하는 권호아우는 더욱 오르기 쉽게 고정 로프를 가져다 설치해 놓았다. 고마
운 일이다.

지리의 자락이라면 어느 곳이고, 또 어느 때이고 좋고 나쁨을 따지거나 이야기 할
것도 없겠지마는,

사람들이여!
가을 어느 날 함양독바위에 올라 산자락 주위를 바라보시라!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카펫에 드러눕고 싶어 몸을 날리고픈 충동감을 느낄 것이리
라!.

울렁거리며 들뜨는 마음을 겨우 진정하며, 6월의 짙은 숲향에 취하여 허위적허위
적 걷는다. 오솔길처럼 잘 나있는 상내봉 오름길을 내딛는 발길은 가벼워, 마치
허공을 가르듯 거침이 없다. 다만 중력의 부담을 이겨내는 내 몸에선 주체할 수
없는 물길이 솟아나 온몸을 적시고 있다.


선릉에서 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