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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기록]

[비망록]6월 지리의 숲길을 걷다.

나는 지금 지난 6월 첫째 주 주말, 경남 하동군 화개면 의신마을에서 대성마을을 거쳐
작은세개골 지나 큰세개골로 이어지던 대성골 사면으로 난 산길과 큰세개골 계곡을 좌
우로 가로지르거나 거슬러 오르면서 지리산 주능선으로 다가가던 영신대(靈神臺) 오름
길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영신대는 지리산, 아니 우리나라 최고의 기도처라고 하는 신령스런 곳이다. 지리산 영
신봉 아래의 주능선길 남측 사면 바로 아래 울퉁불퉁한 표면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
가 그곳인데, 영신대 아래에는 무속인들, 혹은 공부하는 이들이 조성했음직한 평평한
공터와 제단이 조성되어 있다.

대성골은 작은세개골, 큰세개골등의 지류가 모여 이루는 큰계곡으로 의신마을에서 대성동
가는 넓은 길의 모퉁이를 돌아서자마자 우렁찬 계곡의 물소리로 귀를 멍하게 하는 곳이
다. 하지만 그 소리에 비해 수량은 그다지 많지가 않은 편이다. 이 골짜기는 한국전쟁
이후 군경토벌대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벌어진 빨치산소탕작전시 빨치산들이 궤멸적 타
격을 입었다는 곳이다.

영신대로 들어서는 초입인 큰세개골 계곡 다리 인근은 맑디 맑은 청류와 잘 빚어놓은
듯한 멋진 암반이 놓여져 있어 지나가는 산꾼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할 정도이지만
이상스럽게도 위로 이어지는 계곡에는 수량이 거의 없는 마른 골짜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산길은 계곡의 좌우를 가르지르며 나있어도, 대체적으로 계곡을 그대로 따라간
다는 기분으로 진행해도(몇 곳은 우회해야하지만) 영신대로 오를 수 있다.

훤히 드러난 계곡길을 쉬엄쉬엄 오르다보면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바위
협곡을 만나게 된다. 육중, 장중, 포근한 육산등의 이미지로 곧 잘 표현되는 지리산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이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거대한 직벽아래 드리워진 좁
은 계곡은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늘 일정한 수량을 유지한다고 의신마을의 정대장에게
서 들었다.

눈이 부신 연초록의 숲은 바위벼랑위에도 손을 뻗혔고, 거대한 바위는 그 크기만큼의
넓은 마음을 가진 냥 모두 손을 맞잡고 보듬고 있다. 비교적 넓고 완만하던 길은 경사
가 급해지며 바위들을 타고 오르기도 해야한다. 계곡 좌우 양쪽은 꽉 막혔고 골짜기는
깊어 새삼 지리산의 넓은 품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힘든 발걸음을 디뎌 오르면 이윽고 대성폭포다. 거대한 4단의 암반위로 물길이 이어져
폭포라는 이름을 얻긴했지만 폭포라고 할 정도로 흐르는 수량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흥분하게 되며, 그 수량의 많고 적음을 가지고 말들을
나누어 본 적은 없다.

대성폭포를 올라선 이들은 폭포 주변의 계곡 풍광을 둘러보면서 코끼리바위(오래전부
터 지어 나만 부르는 바위 이름)등의 풍광을 음미하거나, 아니면 훌러덩 옷을 벗고 물
길 아래에 머리를 들이대게되며, 그 곳까지만큼의 걸음만으로도 스스로 대견스러워지
게 되는데, 그것은 영신대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임을 잘 알기때문이다.

폭포 위로도 마른 계곡이 완만하게 이어지지만, 그 동안의 오름길에 지친 이들은 고생
스러운 길이 된다. 흔히들 말하는 Y자 계곡이 나타날 즈음에는 영신대로 오르는 이들
은 진행할 길을 선택해야한다. 오른쪽길의 바위길을 오르느냐, 아니면 그대로 곧장 진
행하는 숲길로 오르느냐 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 어느 쪽 하나라도 여유가 있다면 우측의 바위길을 택할 것이다. 그러면 또
하나의 바위벽을 만나고 영신대 옆 졸졸 흐르는 석간수가 있는 것으로 갈 것이고, 곧
장 숲길로 오르면 약 30분 정도 짧은 시간내에 영신대로 바로 오를 수 있다. 하긴 어
느 길이면 어떠랴...

영신대.....

이 곳에만 오르면 우리는 알 수 없는 어떤 이에게 무언가 늘 빌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지리산신이시여....
우리 산사람들의 안전산행과 아름다운 모임이 되게 해 주소서...'

요즈음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있는 친구 내외는 그 절실함이 더한 것 같다. 그 힘든 길
에 매고 온 과일의 종류와 수량이 만만치가 않다. 홀로 조용히 빌고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세상을 바르고 성실하게,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의 앞날에
좋은 일이 생기길 나도 산신께 빈다.

늘 그렇지만 산속에서는 어디든지 엉덩이를 붙이면 떠나기가 싫어진다. 하지만 본래의
일상이 따로 있는 우리에게 그런 생각들은 바램으로만 끝나고 다시 바쁜 길을 서둘러
야만 한다. 주능선 칠선봉 앞으로 이어지는 9부능선 사면길을 따라 하산길에 나선다.

역시 연휴의 지리주능선답게 사람들이 많다.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라가면 덕
평봉 아래에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휴식처이자 식수를 보충할 수 있는 선
비샘에 다다른다. 하산길은 이 선비샘에서 의신쪽으로 드리워져 있는 지능선을 따라
나있는 길이다. 얼마전 버려진 오토바이가 있다해서 누군가가 오토바이능선이라 불렀
지만 이런 이름들을 사용하기는 삼가해야겠고, 덕평능선이라는 이름이 괜찮은 듯하다.

선비샘에서 이 지능선을 따라 내려서는 길은 지정등산로가 아니지만 아마도 주능선과
이어진 길중에서 가장 순하여 아주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는 산길이다. 이 능선을 조
금 내려서다보면 우측 양치식물이 무성한 너른 공간쪽으로 좁고 희미한 길이 나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른바 '임걸년못터'이다. 전설에 의하면 배를 띄울 정도의 연못이
었다고 하는데, 주변과는 다르게 지금도 제법 넓은 습지를 이루고 있음은 분명하다.

지능선을 잠시 벗어나 우측으로 내려서면 북서쪽으로 바라보는 함박꽃나무 위 전망대
가 나온다. 여기서 잠시 숨을 돌리며 쳐다보면 벽소령대피소가 그리움처럼 마음을 울
렁이며 서있다. 약 1000m고지의 이 곳 산사면에는 뜻밖에도 낙엽송숲이 너르게 자리
잡고 있다. 늦은 가을 멀리서 바라다 보이는 노랗게 물든 낙엽송숲은 참으로 아름답
지만 태생적으로 이 나무는 주위를 어지럽히고 더불어 살기를 꺼린다. 그래서 이 숲
아래에서는 늘 칙칙하다는 느낌이 든다.

산죽밭 지난 길은 짙은 산그림자에 어둑해지지만 산길을 걷는 이들의 땀에 절은 얼굴
에는 행복감과 정신의 풍요로움이 보인다. 무언가 전설을 품고 있음직한 큰 바위 앞
에서 휴식을 취한 후, 이윽고 수량이 풍부한 큰 계곡을 만나고 신작로처럼 너른 길이
이어져 의신마을까지 연결되게 된다.

6월 녹음이 우거진 영신대 오름길과 주능선, 그리고 덕평능선 하산길에서의 지리와의
만남, 그 숲향에 취한 나는 선릉숲가 마른 먼지 나는 곳에서도 얼마동안은 눈빛을 잃
지 않고 숨을 쉬며 지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