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무장등능선과 당재에서 이어지는 황장산능선은 남으로 드리우며 섬진강으로 몸을 적시게 된다.
이 능선의 끝, 동쪽자락의 동네가 바로 그 유명한 화개장터가 있는 하동군 화개리 탑동이다. 섬
진강을 이용해서 많은 물산이 집결되는 이 화개장터에서 남녘의 물산, 특히 소금 등은 바로 이
황장산능선-불무장등능선-삼도봉-뱀사골로해서 전북내륙지방으로 공급이 되었다고한다. 뱀사골
의 '간장소'란 이름의 유래가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는데, 소금장수가 물에 소금을 빠트려 물이
짜서 '간장소'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물론 내륙으로 들어가는 길은 불무장등의 오른쪽 산
자락이자 칠불사의 서쪽으로 나 있는 연동골로해서 바로 화개재로 이르는 길도 있다)
배낭안쪽은 비닐을 둘러 아직 젖지는 않았으나, 배낭은 배낭커버를 했음에도 이미 물에 흠뻑 젖
어 매우 무겁다. 그리고 아무리 무념의 상태라고는하지만 내리는 빗속에 서서 음식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 하지만 그 때 나는 주능선으로의 걸음이외에는 다른 어떤 생각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불무장등능선길은 지금은 구례지역의 대부분의 산자락들이 반달곰 보호를 위하여 입산통제가 되
듯이 그 동쪽의 칠불사에서 오를 수 있는 토끼봉까지 묶어 입산금지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하
지만 입산이 통제되기 전에도 주능선자락으로 이르는 다른 계곡길이나 지능선길처럼 사람들이
그리 많이 찾아드는 곳은 아니었다.
늦은 가을날, 아침 일찍부터 줄기차게 내리는 빗속을 뚫고 사람하나없는 산을 향하여 오르는 그
행위에는 나름대로 분명 뭔가 알수 없는 비장감과 처절함이 묻어있었다. 나의 발걸음은 왜 그렇
게 산으로 향하지않으면 안되었을까?
그건 아마도 내 자신과의 약속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도같이 밀려드는 IMF구제금융의 거센 소용
돌이 속에서 나는 그 때 겨우 머리만 텅 빈 '살아남은 자'라는 완장을 차고는 있었지만, 주위의
지인들 중, 많은 이들은 그러하지가 못했다. 그 중에는 사회에서 만나 '兄弟의 緣'을 맺은 S라
는 아우도 속해 있었는데, 예전만해도 자주 연락을 취하던 그 아우는 부도가 나는 순간까지 일
절 나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고, 아우회사의 부도 사실도 신문의 조그만 '당좌거래정지'란을
보고 알았을 뿐이다.
나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은 그이의 고마운 마음을 나는 안다. 그의 성실성과 정직성이 채권자들
에게 인정되어 아우는 곧바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지만, 어느 날 나는 그를 불러 나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은 사실을 들어 짐짓 큰소리로 나무라다가는 그의 손을 맞잡은 적이 있다.
마음이 조금 가라앉은 때였다. 뜬금없이 그는 내게 말했다. '형님 저 골프채 버렸습니다..' 두
살 아래의 그이지만 사업을 제법 크게 하던 터라 골프는 업무상 꼭 필요한 운동이었기때문에 나
는 의아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며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그의 이어지는 말은 의외다.
'형님, 저 산 다니겠습니다....'
반가웠다. 즐겨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이 조금 안타깝기는 하였으나, 나 역시 클럽를 창고에 넣
은 지가 꽤 되었는데, 그건 익숙하지아니한 시간들에 허둥대고 있을 동료나 가까운 사람들 (물
론 이 아우도 포함되었지만)을 생각하면, 형편을 따지기 이전에 그 행위자체를 내 마음이 허락
치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한술 더 뜨며 나를 놀라게 한다.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일인데, 저 암벽등반 한번 배워보겠습니다.' 산으로 들어가며 함께하려
던 나의 예상은 빗나갔으나 그의 심중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치열함'을 느끼고 싶었을 것이
다. 그래서 나는 산오름의 형태는 달리하지만 언젠가 함께 오를 날을 기다리자며 그를 격려했
었고, 나자신의 산행 스타일도 동행없는 홀로산행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아우는 아직까지 암.빙벽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클라이머로 완전히 변해버렸고, 그 후로
한번도 함께 산행을 하지 못했는데, 그건 나는 나대로 방랑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기도하다.
어쨋든 아우와의 그 날 만남은 나에게 고독한(?) 산행의 빌미를 제공해주었고, 나의 산행은 예
전의 편안함(?)에서 벗어나 외로움과 고단함을 마다하지않는 산행으로 빠져들게되었다.
오름길 오른쪽 하동쪽으로는 개스에 가려있긴해도 공간이 트여있음을 잘 느낄 수가 있으나 왼쪽
구례 토지면쪽으로는 산자락이 두텁고 막혀 조망이 힘들다. 오름길 턱을 올라서면 길이 평평해
지고 올라 온 뒷쪽의 자락을 조망하기 좋은 공간이 나온다. 비는 여전히 많이 내리고 있으나 공
간은 이상하게 환히 밝아지는 느낌이다.
불무장등(不無長登)...
참으로 특이한 이름이다. '없는 것이 아님'의 이중부정으로 강조한 이 길고 긴 지리지능선의 능
선길이 왜 이런 이름을 갖게되었는지를 알 수 없음은 나의 노력과 능력부족때문이리라...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이 능선의 길은 처음 오름길을 조금만 올라서면 참으로 평평한 길이
잘 열려있다. 올라서는 봉우리의 이름은 비장한 느낌을 주는 통꼭봉이다.
이제 숲길은 참나무류의 숲이 어우러진 멋진 숲길을 좌우로 두고 걸으며 차츰 오감이 열리고 주
체할 수 없는 산길걸음의 희열감을 느끼게 된다. 이 평평한 산길의 중간중간에 관리되지아니한
봉분들이 자주 눈에 띈다. 아마도 옛적에 이 길을 넘나들던 된 옛사람들의 유택(幽宅)이 아닐까
생각된다.
비가 퍼붓는 숲속이었지만 키 큰 신갈나무 아래는 그래도 비를 덜 맞는 것 같아, 배낭을 내렸다.
비닐로 둘러 싼 배낭속으로 손쓸 틈도없이 빗물이 스며 든다. 아무래도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
에 키 큰 나무에 기대어서서 아침에 준비한 식은 밥으로 이른 점심을 먹는다. 지금 생각해보아
도 그런 청승맞은 모습은 없을 듯하다.
전형적인 육산의 모습을 지닌 이 능선도 삼도봉 조금 못미친 잘록이(鞍部)를 지나며 우측으로
깎아지른 낭떠러지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를 올라서며 잘 보이지안던 마사토로 된 작
은 봉우리를 지나고, 오른쪽으로 벼랑지대가 펼쳐지는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게 된다. 마침 서서
히 개스가 걷히며 시계가 드러나는데 가히 절경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나는 긴장하며 바짝 움
츠린 채 조심스레 기듯이 오른다.
불쑥 공간이 훤히 트이며 바위지대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나온다. 바로 날라리봉이란 옛이름을
가진 삼도봉이다.(1492M) 전북,전남,경남의 삼도(三道)를 가르키며 이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서
있다.
주능선을 올라서자 어느새 날씨가 서서히 개이며 비가 멎는다. 하지만 능선 아래의 산자락은 온
통 젖빛에 젖어, 주능선에서 흘러내린 지능선 중간중간의 봉우리들은 구름바다속의 작은섬을 이
루어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선경을 이루고 있다.
하산지점은 피아골로해서 내려서는 직전마을이다. 함태식선생님이 계시는 피아골대피소를 경유
하는 산길은 두 군데가 열려있다. 한 곳은 짙은 숲향과 청류가 함께하는 묵은 길인 용수바위골
길이고 한 곳은 잘 열려있으나 가파른 오름의 계단길이 가히 살인적(?)인 임걸령3거리 길이다.
홀로하는 산행이라 용수바위골은 부담스럽다. 주저함없이 임걸령쪽으로 향한다. 반야봉 아래
갈림길을 지나는데, 노루목에서 주능선길을 힘들게 올라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제법 많이 보인
다. 임걸령샘터 주변은 지금은 공단에서 시설물을 설치 해, 샘에서 물만 길어 올 수 있게 하였
으나 예전에는 휴식하기에 아주 좋은 너른 공터였다.
샘터에서 모처럼 볕이 주는 안온함에 젖어본다.
임걸령 3거리에서 피아골대피소로 내려서는 계단길은 그야말로 부담스럽다. 내려서는 내가 이
정도이니 올라서는 사람의 표정은 어떠할까? 그래서 이 길을 오르내릴 때는 서로 인사나누지
말고 신속히 통과하는 게 오히려 서로를 위해 좋을 듯하다.
무릎이 혹사당하지 않게하기 위하여 발바닥 전체를 계단바닥에 디디며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피아골대피소에는 인기척이 없어 그대로 진행한다. 이 대피소 주변의 숲에는 거대한 졸참나무
가 많은 것이 특색이다. 오전 내내 내린 비에 젖은 바위가 몹씨 미끄럽다. 피아골대피소에서
직전마을로 내려서는 길은, 천천히 즐기면서 가는 사람에게는 그런대로 괜찮은 길이지만 마음
이 바쁜이에게는 제법 힘이 드는 바위가 많은 길이다.
푸른 빛의 삼나무가 제법 많이 있는 것도 이 숲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빗속에 긴 걸음을 걸어 온 나그네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어린다. 오늘 나그네는 오감을 열
고 숲과 교감을 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일까...
문득, 시절이 주는 화두인지 글귀하나가 휙 다가오더니 나의 주변를 떠나지 않는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선릉에서 燮
이 능선의 끝, 동쪽자락의 동네가 바로 그 유명한 화개장터가 있는 하동군 화개리 탑동이다. 섬
진강을 이용해서 많은 물산이 집결되는 이 화개장터에서 남녘의 물산, 특히 소금 등은 바로 이
황장산능선-불무장등능선-삼도봉-뱀사골로해서 전북내륙지방으로 공급이 되었다고한다. 뱀사골
의 '간장소'란 이름의 유래가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는데, 소금장수가 물에 소금을 빠트려 물이
짜서 '간장소'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물론 내륙으로 들어가는 길은 불무장등의 오른쪽 산
자락이자 칠불사의 서쪽으로 나 있는 연동골로해서 바로 화개재로 이르는 길도 있다)
배낭안쪽은 비닐을 둘러 아직 젖지는 않았으나, 배낭은 배낭커버를 했음에도 이미 물에 흠뻑 젖
어 매우 무겁다. 그리고 아무리 무념의 상태라고는하지만 내리는 빗속에 서서 음식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 하지만 그 때 나는 주능선으로의 걸음이외에는 다른 어떤 생각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불무장등능선길은 지금은 구례지역의 대부분의 산자락들이 반달곰 보호를 위하여 입산통제가 되
듯이 그 동쪽의 칠불사에서 오를 수 있는 토끼봉까지 묶어 입산금지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하
지만 입산이 통제되기 전에도 주능선자락으로 이르는 다른 계곡길이나 지능선길처럼 사람들이
그리 많이 찾아드는 곳은 아니었다.
늦은 가을날, 아침 일찍부터 줄기차게 내리는 빗속을 뚫고 사람하나없는 산을 향하여 오르는 그
행위에는 나름대로 분명 뭔가 알수 없는 비장감과 처절함이 묻어있었다. 나의 발걸음은 왜 그렇
게 산으로 향하지않으면 안되었을까?
그건 아마도 내 자신과의 약속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도같이 밀려드는 IMF구제금융의 거센 소용
돌이 속에서 나는 그 때 겨우 머리만 텅 빈 '살아남은 자'라는 완장을 차고는 있었지만, 주위의
지인들 중, 많은 이들은 그러하지가 못했다. 그 중에는 사회에서 만나 '兄弟의 緣'을 맺은 S라
는 아우도 속해 있었는데, 예전만해도 자주 연락을 취하던 그 아우는 부도가 나는 순간까지 일
절 나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고, 아우회사의 부도 사실도 신문의 조그만 '당좌거래정지'란을
보고 알았을 뿐이다.
나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은 그이의 고마운 마음을 나는 안다. 그의 성실성과 정직성이 채권자들
에게 인정되어 아우는 곧바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지만, 어느 날 나는 그를 불러 나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은 사실을 들어 짐짓 큰소리로 나무라다가는 그의 손을 맞잡은 적이 있다.
마음이 조금 가라앉은 때였다. 뜬금없이 그는 내게 말했다. '형님 저 골프채 버렸습니다..' 두
살 아래의 그이지만 사업을 제법 크게 하던 터라 골프는 업무상 꼭 필요한 운동이었기때문에 나
는 의아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며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그의 이어지는 말은 의외다.
'형님, 저 산 다니겠습니다....'
반가웠다. 즐겨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이 조금 안타깝기는 하였으나, 나 역시 클럽를 창고에 넣
은 지가 꽤 되었는데, 그건 익숙하지아니한 시간들에 허둥대고 있을 동료나 가까운 사람들 (물
론 이 아우도 포함되었지만)을 생각하면, 형편을 따지기 이전에 그 행위자체를 내 마음이 허락
치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한술 더 뜨며 나를 놀라게 한다.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일인데, 저 암벽등반 한번 배워보겠습니다.' 산으로 들어가며 함께하려
던 나의 예상은 빗나갔으나 그의 심중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치열함'을 느끼고 싶었을 것이
다. 그래서 나는 산오름의 형태는 달리하지만 언젠가 함께 오를 날을 기다리자며 그를 격려했
었고, 나자신의 산행 스타일도 동행없는 홀로산행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아우는 아직까지 암.빙벽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클라이머로 완전히 변해버렸고, 그 후로
한번도 함께 산행을 하지 못했는데, 그건 나는 나대로 방랑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기도하다.
어쨋든 아우와의 그 날 만남은 나에게 고독한(?) 산행의 빌미를 제공해주었고, 나의 산행은 예
전의 편안함(?)에서 벗어나 외로움과 고단함을 마다하지않는 산행으로 빠져들게되었다.
오름길 오른쪽 하동쪽으로는 개스에 가려있긴해도 공간이 트여있음을 잘 느낄 수가 있으나 왼쪽
구례 토지면쪽으로는 산자락이 두텁고 막혀 조망이 힘들다. 오름길 턱을 올라서면 길이 평평해
지고 올라 온 뒷쪽의 자락을 조망하기 좋은 공간이 나온다. 비는 여전히 많이 내리고 있으나 공
간은 이상하게 환히 밝아지는 느낌이다.
불무장등(不無長登)...
참으로 특이한 이름이다. '없는 것이 아님'의 이중부정으로 강조한 이 길고 긴 지리지능선의 능
선길이 왜 이런 이름을 갖게되었는지를 알 수 없음은 나의 노력과 능력부족때문이리라...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이 능선의 길은 처음 오름길을 조금만 올라서면 참으로 평평한 길이
잘 열려있다. 올라서는 봉우리의 이름은 비장한 느낌을 주는 통꼭봉이다.
이제 숲길은 참나무류의 숲이 어우러진 멋진 숲길을 좌우로 두고 걸으며 차츰 오감이 열리고 주
체할 수 없는 산길걸음의 희열감을 느끼게 된다. 이 평평한 산길의 중간중간에 관리되지아니한
봉분들이 자주 눈에 띈다. 아마도 옛적에 이 길을 넘나들던 된 옛사람들의 유택(幽宅)이 아닐까
생각된다.
비가 퍼붓는 숲속이었지만 키 큰 신갈나무 아래는 그래도 비를 덜 맞는 것 같아, 배낭을 내렸다.
비닐로 둘러 싼 배낭속으로 손쓸 틈도없이 빗물이 스며 든다. 아무래도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
에 키 큰 나무에 기대어서서 아침에 준비한 식은 밥으로 이른 점심을 먹는다. 지금 생각해보아
도 그런 청승맞은 모습은 없을 듯하다.
전형적인 육산의 모습을 지닌 이 능선도 삼도봉 조금 못미친 잘록이(鞍部)를 지나며 우측으로
깎아지른 낭떠러지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를 올라서며 잘 보이지안던 마사토로 된 작
은 봉우리를 지나고, 오른쪽으로 벼랑지대가 펼쳐지는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게 된다. 마침 서서
히 개스가 걷히며 시계가 드러나는데 가히 절경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나는 긴장하며 바짝 움
츠린 채 조심스레 기듯이 오른다.
불쑥 공간이 훤히 트이며 바위지대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나온다. 바로 날라리봉이란 옛이름을
가진 삼도봉이다.(1492M) 전북,전남,경남의 삼도(三道)를 가르키며 이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서
있다.
주능선을 올라서자 어느새 날씨가 서서히 개이며 비가 멎는다. 하지만 능선 아래의 산자락은 온
통 젖빛에 젖어, 주능선에서 흘러내린 지능선 중간중간의 봉우리들은 구름바다속의 작은섬을 이
루어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선경을 이루고 있다.
하산지점은 피아골로해서 내려서는 직전마을이다. 함태식선생님이 계시는 피아골대피소를 경유
하는 산길은 두 군데가 열려있다. 한 곳은 짙은 숲향과 청류가 함께하는 묵은 길인 용수바위골
길이고 한 곳은 잘 열려있으나 가파른 오름의 계단길이 가히 살인적(?)인 임걸령3거리 길이다.
홀로하는 산행이라 용수바위골은 부담스럽다. 주저함없이 임걸령쪽으로 향한다. 반야봉 아래
갈림길을 지나는데, 노루목에서 주능선길을 힘들게 올라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제법 많이 보인
다. 임걸령샘터 주변은 지금은 공단에서 시설물을 설치 해, 샘에서 물만 길어 올 수 있게 하였
으나 예전에는 휴식하기에 아주 좋은 너른 공터였다.
샘터에서 모처럼 볕이 주는 안온함에 젖어본다.
임걸령 3거리에서 피아골대피소로 내려서는 계단길은 그야말로 부담스럽다. 내려서는 내가 이
정도이니 올라서는 사람의 표정은 어떠할까? 그래서 이 길을 오르내릴 때는 서로 인사나누지
말고 신속히 통과하는 게 오히려 서로를 위해 좋을 듯하다.
무릎이 혹사당하지 않게하기 위하여 발바닥 전체를 계단바닥에 디디며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피아골대피소에는 인기척이 없어 그대로 진행한다. 이 대피소 주변의 숲에는 거대한 졸참나무
가 많은 것이 특색이다. 오전 내내 내린 비에 젖은 바위가 몹씨 미끄럽다. 피아골대피소에서
직전마을로 내려서는 길은, 천천히 즐기면서 가는 사람에게는 그런대로 괜찮은 길이지만 마음
이 바쁜이에게는 제법 힘이 드는 바위가 많은 길이다.
푸른 빛의 삼나무가 제법 많이 있는 것도 이 숲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빗속에 긴 걸음을 걸어 온 나그네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어린다. 오늘 나그네는 오감을 열
고 숲과 교감을 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일까...
문득, 시절이 주는 화두인지 글귀하나가 휙 다가오더니 나의 주변를 떠나지 않는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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