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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종주]

[스크랩] 지리산 태극종주

♣지 리 산 코스 태극 종주(사람과 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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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수직으로만 솟구쳐 오른 멧부리가 아니다. 이 산은 수평으로도 삼남 땅 8백여리를 뻗어 삶의 그루터기를 이루고 있다. 산 너머 칠칠한 산이 있고, 산 속에 다시 첩첩한 산이 펼쳐진다. 이렇게 장엄무쌍한 산이지만 우리 민족 현대사에서는 이데올로기 대립공간이 되어 잔혹한 불바다,피바다가 되는 비극을 치르기도 했다. 그 살풀이를 위해 <사람과山>은 지리산 능선길을 '태극'으로 이어 종주해 보았다. 피로 씻고 불로 씻고 해마다 물로 씻으며 다시 성스럽게 태어나는 어머니 지리산이 조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태극과 함께 영원하기를 빌면서.

지리산 태극능선 종주 길잡이

웅석봉에서 천왕봉 노고단 만복대 거쳐 덕두산에 이르는 도상거리 73km는 웅장하다. 능선이 태극 형상을 하고 있어 태극능선종주로 불리는 이 길을 종주하려면 최소 4박5일이 필요하다. 초보자가 있는 경우나 느긋하게 가상하려면 하루를 더 여유를 둔 5박 6일이 좋다.

4박으로 계획을 잡았으면 웅석봉 청계리에서 적어도 8시에는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첫날은 서 왕등재 부근에서 숙박을 하는 것이 좋다. 다소 빡빡한 거리니 걸음품을 많이 팔 각오를 해야한다. 취재팀은 발견 못했지만 서 왕등재 남쪽사면에 돌로 잘 쌓아놓은 맛 좋은 샘물이 있다고 한다.

둘쨋날 장터목까지도 하루로는 다소 벅찬 거리다.하봉과 중봉 안부의 헬기장에서 치밭목산장쪽으로 5분쯤 내려가면 수량이 풍부한 샘이 있다.

셋쨋날은 뱀사골, 넷쨋날은 정령치에서 자야지 마지막 날 시간을 벌 수 있다. 주릉에 들면 요소마다 물이 있어 물 걱정을 덜 수 있다. 만복대에는 정상에서 남쪽 안부로 5분쯤 내려가면 샘이 있다.

작년 한해 동안 지리산을 찾은 등산객이 350만이 넘는다는 통계다. 이들중 많은 등산객들이 천왕봉에서 노고던까지의 주릉종주를 희망하고 계속 시도하고 있다. 70년까지만 해도 지리산 주릉길을 종주하면 어깨에 제법 힘을 줄 수 있었다. 80년대 지리산이 대중화되면서 주릉 당일종주나, 심지어는 왕복종주까지 하는 산악인들도 생겼다. 90년대에는 지리산 종주에 변화가 일어났다. 동쪽 웅석봉에서 천왕봉까지 26km, 노고단에서 덕두산까지 24km를 이어 총 73km를 종주하는 것이다. 그나마 종주중에 지리산을 한치라도 가까이서 느껴보려는 열망의 다름아니다. 이 능선길을 이어보면 태극모양을 하고 있어 지리산 태극능선종주라고 부른다.

6월 2일, 지리산 태극능선종주의 시발점인 웅석봉(1,099m)으로 향한다. 정상에서 곰이 놀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얘기가 전해 곰바우산이라고 하는 웅석봉 산행 들머리는 남쪽 사면인 청계리. 들머리까지 바래다준 지리산산양회 조대종씨와 헤어지고 태극종주의 첫발을 내딛는다. 맑은 계류와 거기에 비친 성하의 짙은 숲. 여름햇살이 웅석봉에 넘실댄다. 길가 나뭇가지에는 표지기가 드문드문 달려있다. 땀을 한줄기 흘릴 때쯤 계류가 약해지고 사면이 펑퍼짐해지더니 무너진 축대와 집터였던 듯한 너른 사면이다.댓줄기 흔드는 바람이 음산하다.

계속 펑퍼짐한 사면을 오르는데 누군가 "저게 뭐지?" 하는 소리에 바라보니 아름드리 차나무 사이로 누르끼리한 동물이 일행을 굽어보고 있다.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구분이 안됐지만 어쩌면 사향노루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진기를 들이대지만 그 동물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전문가들은 만복대를 비롯 웅석봉 둘레에 반달곰이나 사향노루가 살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고 직접 목격한 주민들도 있다고 한다. 일행은 그 동물을 사향노루라고 굳게 믿어버린다.

웅석봉 정상에 오른 시간은 정오. 고이 새겨진 정상석 둘레에는 연분홍 철쭉이 드문드문 피어있다. 이곳은 천왕봉 그리고 하봉 중봉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요지지만 뿌연 안개가 끼어 그 봉우리들을 볼 수 없어 안타깝다. 바람불어 잠깐 안개를 걷어갈 때 언뜻 보이는 천왕봉은 너무 아득해 동화속의 보물섬처럼 느껴진다.

안타까움을 안고 북동릉을 따른다. 나뭇가지에는 '백두대간종주'를 알리는 표지기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백두에서 지리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 백두대간. 흔히 천왕봉에서 진부령까지 잇지만 골수들은 이 웅석봉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딱따구리 소리에 호흡 맞추며 밤머리재에 도착한 시간은 14:50. 밤나무가 많아서, 혹은 고갯길을 넘을 때 밤 한말은 족히 까먹어야 할 만큼 험하고 길어 붙여진 이름이란다. 수박화채로 갈증과 허기를 달래고는 다시 길을 재촉한다. 동 왕등재(936m)-왕등재라는 지명이 4km쯤 거리를 두고 두 개가 있어 편의상 동.서로 나누었다-오르는 초입은 매우 가파르고, 등산인의 발길이 닿지 않음인지 길도 희미하다. 밤머리재에서 두 개의 왕등재를 지나 하봉까지 이어지는산길은 지리산에서도 다소 외져 지리산 태극능선 구간중 가장 호젓하게 지리산 품에 안길 수 있는 구간이다.

동 왕등재에서 서 왕등재(약 1,020m)까지는 8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하지만 동 왕등재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6시가 넘었다. 갈 길은 멀고, 천막을 치자니 물이 없고, 해는 서산으로 지고.... 하지만 일행은 산줄기를 계속 밟기로 한다. 첫날 서 왕등재까지 도달치 않으면 앞으로의 산행이 빡빡해지기 때문이다. 까마귀 한마리가 길게 울며 서산으로 날아간다.늑장부리던 해는 산마루가 가까워지자 잰걸음이더니 이내 함지(咸地)로 잠긴다.

랜턴 빛에 의지, 8개의 봉우리를 넘어 10시 30분쯤 서 왕등재 부근에 도착하지만 칠흙같은 어둠 속에 희미한 갈래길이 많아 샘 찾기는 쉽지 않고 부엉이 울음소리만 음산하다. 샘 찾기를 포기하고 11시쯤 천막을 친다. 천막터는 포근하다. 배낭에 있는 각자의 물을 모으니 0.3리터쯤 된다. 비상식으로 허기를 속인 후 뚜껑에 한모금씩 나누어 먹고 등을 기대고, 전설을 생각한다.

서 왕등재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10리쯤 가면 왕산(923m)이 있다. 북쪽 기슭에는 예로부터 가락국 10대왕이자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무덤이라고 전해졌기 때문에 '傳 구형왕릉'으로 불리는 지리산 유일의 왕릉이 있다. 신라에 나라를 넘겨주고 지리산 왕산 기슭에서 별궁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나라를 넘겨준 왕'이라 하여 양왕(讓王)으로 불린다는 구형왕은 신라와 싸우다가 전사했다고도 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됐다고도 전하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하지만 이 부근에 왕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인 듯 많은 토막 전설들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일 행이 등 기댄 이 왕등재도 왕이 올랐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하봉에서 서북쪽으로 흐르는 국골은 구형왕이 진을치던 곳으로, 계곡 안에는 성안이라는 지명도 있다. 또 한국 3대 계곡의 하나로 꼽히는 칠서골 초입 두지터도 국골에 진을 친 군사들의 식량창고였다는 말이 인근에 전해온다.

왕이 다녀간 왕등재에서 주린 배를 안고 잠을 청하는데 어디선가 '쏙독 쏙독' 쏙독새가 운다. 둘쨋날, 5시에 눈을 뜬다. 천막을 파고드는 아침 햇살이 맑다. 자리에서 일어나 10분쯤 내려가니 고요한 산중에 물소리가 청량하다. 기쁨으로 돌아와 일행에게 알리고 짐을 꾸려 물가로 간다.

행복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외고개를 지날 무렵 하늘이 흐려지더니 안개비가 내려앉는다. 싸리나무 이파리에 맺혀 있던 이슬에 옷이 젖는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파른 쑥밭재(1,315m)를 지나면서 안개비는 제법 굵은 비로 바뀌어 몸이 흠뻑 젖는다. 오락가락하는 비안개 속에 써레처럼 생긴 써리봉이 보인다. 국골 갈림길을 지나 하봉에 도착했을 때 잠깐 하늘이 개며 노을이 서녘 하늘을 물들인다. 하지만 그도 잠깐이고 해가 떨어지면서 다시 굵은 빗방울이 긋기 시작한다. 사위는어둠이 잔뜩 밀려들고 비마저 그칠 기미가 없다. 중봉 직전 사면에서 야영지를 찾아 천막을 친다.

셋쨋날, 천막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 서둘러 천막을 걷고 오르는 중봉(1,875m) 황톳빛 등산로에는 간밤 비에 떨어진 진분홍 진달래, 연분홍 철쭉이 가득하다. 골마다 피어나는 운무에 넋을 잃다보니 천왕봉. 하늘과 구름을 빼고는 모두 발 아래, 한치도 막힌 곳이 없는 전망이다.

정상 서남쪽 아래 옛 성모사터에는 지리산 반달곰도 너끈히 가둘만한 철구조물이 있다. 조시스러운 등산객이라면 한번쯤 이 구조물의 용도를 궁리했으리라.

천왕봉에는 이곳에서 천년을 살아온 여신이 있다. 이름은 성모(聖母). 경주산 옥석으로 다듬어진 이 여신은 높이가 1.2m쯤, 너비 50cm쯤 된다. 지금은 하산해 중산리 천왕사라는 조그마한 암자에 머물고 있는데, 여신이 상처입고 하산한 내력이 기구하다.

1380년 이성계의 황산대첩에서 패한 일본인들이 지리산을 넘어 도망칠 때 분풀이로 여신을 두쪽냈다고 한다. 왜정 때는 사당을 철거하고 석상을 아래로 굴려버렸는데 산청에 사는 처녀가 올렸고, 해방되던 해 11월에는 누군가에게 보쌈을 당했다가 올라왔다. 60년데 초까지만 해도 사당 안에 모셔져 기도객들의 염원을 듣고 있었는데, 72년 봄 천왕봉에서 철야기도를 마친 모 교인들이 석상을 훼손시켜 버렸다. 그러다 86년 1월 천왕사 혜법스님이 몸통과 머리부분을 따로 발견, 정성스런 봉합작업을 한 후 천왕사에 모셔놓았다. 하지만 그간 이민족과 이교도 그리고 철없는 사람들에 의해 수난당한 여신이 또다시 훼손당할까 두려워 천왕봉에 올려놓지 못하고 있다. 지리산과 어울리지 않는 성모사터 철구조물은 여신을 훼손에서 보호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천왕봉에서의 사연은 한이 없다. 무거운 궁둥이를 털고 일어난다. 한쪽에서는 수녀들의 조용한 노랫소리가 지리산 자락에 새소리처럼 울린다. 통천문 지나 장터목을 향해 잰걸음인데 제석봉 올라오는 이가 낯익다. 장터목에서 만나기로 한 최진숙씨(청주교육대 OB)다. 최씨는 일행을 기다리다 지쳐 천왕봉 들렀다가 칠성골이나 다른 계곡으로 등반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철쭉나무 그늘에 핀 얼레지꽃을 감상하며 연하봉(1,667m) 넘고, 키만한 돌담불 있는 촛대봉(1,704m) 훌쩍 건너니 철쭉으로 유명한 잔돌평원(세석평전). 해갈이 한다는 철쭉도 거의 지고, 동이나물 노랑꽃만 흐드러지게 피어 꿀벌을 희롱하고 있다.

드문드문 핀 철쭉꽃 송이를 세며 잔돌평원을 지나, 낙남정맥 발원하는 영신봉(1,652m) 넘어 덕평봉(1,522m)의 선비샘에서 목젖 축이고 지루한 벽소령 길 걷는다. 벽소령산장 신축공사 건축자재를 나르는 헬리콥터 소리 요란한 벽소령을 잰걸음으로 지나니 능선길엔 어느덧 땅거미가 깔린다. 어둑한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 8시가 넘어 연하천산장에 도착한다.

넷쨋날, 사흘간 강행군 탓에 몸은 노곤하지만 딱따구리 소리와 신선한 풀향기에 가뿐히 눈을 뜬다. 명선봉(1,586) 오름길은 등산로 토사유실을 방지한답시고 만든 플라스틱길이다. 한발 오르고 두발 미끄러지는 짜증 나는 길이지만 숲에서 어슬렁거리는 까투리는 반갑다. 호젓한 명선봉에서 지리산 남쪽 굳센 산줄기와 풍광을 가상한 후 아르드리 구상나무 아래에서 땀을 들인다. 상쾌한 산바람은 살갗을 간지르고 나뭇잎 사이로 출렁이는 햇살은 이마를 적신다. 지리산을 찾은 기쁨이 온 가슴에 큰물처럼 넘쳐난다.

언뜻 등산로를 지나치는 낯익은 얼굴. 열흘 전쯤 오대산에서 보았던 사람이다. 그냥 멀어지는 그의 뒤꼭지에다 대답없는 안부를 전하고 토끼봉(1,534m)에 오르니 푸른 하늘에는 연달아 밀려드는 하얀 파도가 넘실댄다.파상운에 한참을넋을 잃다보니 화개재.

화개장터 소금과 해산물, 운봉 마천 산내의 특산물을 교역하던 장돌뱅이가 쉬어갔을 고갯마루에는 옛날처럼 한 사내가 지게질을 하고 있다. 보니 한완룡씨(우석대산악부 OB). 지난 봄 안나푸르나(8,091m) 원정준비를 하다가 여러 사정으로 짐을 꾸리지 못한 아쉬움을 지리산에서 달래고 있는 중이다.

뒤이어 올라온 뱀사골산장지기 고영국씨가 막걸리 한잔하라며 소매를 끈다. 못 이기는 척 화개재를 내려서 산장 앞탁자에 자리를 잡고, 오는 여름 천산산맥 포베다(7,439m) 원정비 충당을 위해 산장 짐을 나르는 우석대 산악부원 댓명과 어울려 막걸리를 들이킨다.

산장을 나서 화개재에서 가파른 길 올라서 봉분 큰 무덤을 지나니 반야봉(1,734m) 갈림길이다. 지리산을 사랑한다는 이들에게 명당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부분 첫손을 꼽는 반야봉은 지리산 중앙에 있어 노고단 만복대까지 사방 거리낄 데 없어 지리산군중 가장 전망좋은 봉우리다.

초적 두목 이름에서 유래한 임걸령.물맛나게 보수한 샘터에서 갈증을 달래고 슬렁슬렁 돼지평전 지나니 노고단이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노고단은 저잣거리를 방불케 할 정도로 시끌버끌하다. 여름 햇살보다 따가운 소음을 피해 서둘러 걸음을 종석대(1,356m)로 옮긴다. 살모사가 길을 지키는 산죽과 초원을 지나니 거칠 것 없는 정상. 산사처럼 고즈넉해 한참을 머물며 주위의 풍광을 감상하고, 고리봉(1,248m) 만복대(1,433m)로 이어지는 시원한 산세가 한눈에 보이는 억새길을 내려선다.

형형색색의 표지기가 매달린 푸른 길 진달래나무에 한 표지기가 눈길을 끈다. "그리운 여인. 山! 준, 희" "보고픈 당신" 아마도 사랑을 맹세한 연인이 백두대간을 같이 종주하면서 매어놓은 것 같다. 사연없는 백두대간종주대가 어찌 없으랴만, 이 연인의 사랑을 담은 표지기는 일행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진달래 나뭇가지에 표지기를 매달면서 주고받는 연인들의 눈길이 느껴지는 듯하다. 사랑이 피어나는 산길의 황홀함은 성삼재에 몰려든 차량의 경적소리 엔진소리 소란에 깨어난다.

환경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포장해 지리산 파괴의 주범으로 화려하게 역사에 등장한 이 고개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자연을 효과적으로 망칠 수 있는가' 하는 표본으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만복대 능선으로 붙으려면 이 번잡스런 아스팔트길을 넘어가야 한다. 자동차 사이를 이리저리 피해 얼른 산으로 들어간다. 얼마쯤 가니 산길은 이내 호젓해진다. 동물들 두런대는 소리가 아주 가까이 들린다.숲속에는 서둘러 숨는 구렁이 꼬랑지가 보이고 더덕향 싸리꽃 냄새가 황홀하다. 어디선가 검은 등뻐꾸기가 '홀딱 벗고''홀딱 벗고'하며 운다.

6시를 조금 넘어 돌탑 하나 외로운 만복대 정상에 도착, 짐을 푼다. 돌탑 서쪽에 기대 구름에 오락가락하는 노을을 본다. 신의 또다른 선물인 붉은 노을이 지자 어둠이 찾아든다. 하늘에는 주먹만한 여름별들이 홍수난 은하수에 부침(浮沈)을 거듭하는 아름다운 밤. 지리산 태극종주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산노래 부르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 후두둑천막 두드리는 빗소리에 눈을 뜬다. 정령치에서 올라온 한떼의 등산객이 지나간 뒤 산행 준비를 하는 중에도 빗방울은 계속 거세진다. 이 빗속에서도 계속 날궂이하는 검은등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10분쯤 내려서니 표지기 요란한 갈림길이다. 왼쪽은 나름재로 빠지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정령치로 해서 바래봉으로 빠지는 지리산 태극능선종주 길이다.

빗속을 한참 거닐어 발이 저절로 미끄러지는 고갯길을 내려서니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장군을 파견해서 지키게 했다는 정령치가 긴 세월처럼 아득하다.

고리봉(1,305m) 가파른 돌길을 오른다. 비바람이 억센 바람골에는 나뭇잎이 허연 배를 드러내고 흔들리고 있지만어디선가 꾀꼬리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비안개가 깊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다. 1시가 넘어 나무팻말이 있는 세걸산 넘어 세동치 지나니 싸리나무 군락이 이어진다. 길 희미한 부운치 지나 펑퍼짐한 1123봉에서 방향을 서북으로 틀어 바래봉으로 향한다. 나무숲을 잠깐 헤치니 구름이 오락가락하고 철쭉이 무더기로 피어난 너른 초원. 바래봉까지는 내내 이런 길이다. 짙은 구름이 오락가락 하니 선계라도 온듯한 기분이다. 옷은 젖고바람은 세차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지만 마음은 하늘을 날 듯하다.

어떤 아름다운 전설보다 뛰어난 아스라한 초원 철쭉꽃 사잇길로 이리저리 가다보니 문득 바래봉 정상. 운무 자욱한 너른 초원은 비바람만의 세계다. 서두를 것 없이 길을 나선다.

바래봉에서 덕두산(1,150m) 가는 길은 인적 없어 좁고 음습하다. 간혹 눈에 띄는 표지기를 따른다. 삼각점 있는 덕두산 힘겹게 지나면서 수도 없이 미끄러지면서 닷새 동안 혹사한 발바닥이 아프다고 생각될 무렵마을이 보인다. 우산을 쓰고 종종걸음하는 아낙에게 물으니 구인월이란다.

돌아보니 지리산을 덮은 운무중 한가닥이 성하의 짙푸른 숲에 휘감겨 태극 형상으로 넌출넌출 일어서고 있다.



 




출처 : 지리산 산길따라
글쓴이 : 두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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