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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제국 伽倻/가야사 자료

대가야, 고령 지산동 고분군 30년만에 발굴 재개

 
고령 지산동고분군 30년만에 발굴 재개
대형 봉토분 포함 8기 조사 중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경북 고령에 중심지를 뒀던 대가야 왕국의 최고지배층 공동묘지임이 확실한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79호)에 대한 발굴조사가 30년만에 재개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대동문화재연구원(원장 조영현)은 고령군이 추진 중인 '신활력사업'의 일환으로 지산동 고분군 중 대가야박물관 앞에 있는 대형 봉토분인 제73-75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지난 5월25일부터 실시한 결과 무덤 축조방식과 순장(殉葬) 등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8일 밝혔다.

   예컨대 무덤 봉토 및 그 주변 조사를 통해 73호분과 74호분이 봉분 가장자리를 돌로 쌓아 두른 호석(護石)을 서로 떼어 놓긴 했으나, 두 봉분이 맞닿는 부분에는 마치 말 안장 모양처럼 흙을 쌓아 연결한 것을 밝혀냈다.

   조사단은 "이런 봉분 연결 방식은 먼저 만든 봉분에다 새로 만드는 봉분을 덧붙이는 신라권 무덤과는 다른 '대가야식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에서는 또 대형 봉토분 주변에서 소형 봉토분 3기와 소형 석곽묘 2기가 추가로 확인됐다.

   조사단은 대형 봉토분의 봉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노출된 소형 석곽묘는 "대형분의 흙을 쌓는 과정에서 동시에 축조한 순장곽(殉葬槨)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그동안 대가야 고분에서 순장곽이 별도로 설치되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이번 조사를 통해 대형 봉분을 만들면서 동시에 축조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더불어 조사단은 봉분을 쌓는 데 이용된 흙이 묘광(墓壙)을 파낼 때 나온 것임을 확인하는 한편, 대형 봉토분 3기 모두 일정한 구획을 나눠 축조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조영현 원장은 "이는 거대한 봉분을 쌓을 때 미리 계획을 짜 일정하게 나눈 구간을 나누고 각기 다른 노동그룹이 작업을 했다는 뜻이 된다"고 설명했다.

   봉분과 그 주변 조사 결과 고분 앞에서 제사를 지낸 흔적과 그에 사용됐을 것으로 생각되는 유물이 일부 출토되기도 했다.

   출토 유물 중에는 귀면(鬼面)과 같은 풍모를 풍기는 성격 미상의 은 도금 금속유물이 포함돼 있다.

   조사단은 "아직 본격적인 묘광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무덤이 축조된 연대 등은 확실치 않으나 지산동 고분군 중에서도 축조연대가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있다"고 말했다.

   지산동 고분군에는 일제 강점기만 해도 무려 600기로 추산되는 봉분이 있었으나 현재는 그 절반 이상이 사라진 상태다. 지산동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는 1977년 제44, 45호분과 이듬해 32-35호분을 마지막으로 한 번도 실시된 적이 없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