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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탐방]

門을 지나 피안(彼岸)의 세계로/쌍계사②

[쌍계사 일주문.  

 

▣문(門)을 들어서며 피안(彼岸)의 세계로-쌍계사②

 

쌍계(雙磎) 석문(石門)을 지나 저자거리 같은 길을 따라올라 매표소에 이르자 이명(耳鳴)처럼 웅웅거리던 소음이 사라지고 사방이 조용해진다. 불일폭포 물기둥이 제몸을 부수고, 내원골 깊은 골짜기의 물을 자박자박 모으며 내려온 물길은 아직 동안거(冬安居) 해제일이 남아있음을 아는지 숨죽이듯 소리를 낮추었다. 아무렴, 천년세월 동안 이 오롯한 절집을 감싸며 흘러온 불일(佛日)의 물길이 아니던가. 스스로를 벼랑 끝까지 몰아 길을 찾는 이들을 위해 골짜기는 낮은 목소리로 염불삼매에 들었다.

 

산문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의 오솔길을 들어서자, 함께 간 가족들에게서 뭔가 못마땅하고, 내키지않는 일을 하는 표정들이 역력하다. 언제인가부터 아이들이 결코 믿지않게 되어버린 조금만 더 가면 된다라는 말을 무심코 던져버리던 조금 전의 기억이 머리를 스친다.

 

쌍계사 매표소에서 일주문(一柱門)에 이르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이 오솔길은 속세에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경계, 바로 그 앞에 놓인 완충지대와도 같은 곳이 되겠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세속의 번뇌를 버리고, 일심(一心)으로 성불(成佛)의 원(願)을 세워야만 한단다. 피안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다지만 어디 진리의 길에 들기가 쉬운 일이던가, 감히 나아가기가 두려워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독이고 스스로를 격려하거나, 속세에서 따라왔던 찌꺼기들을 하나씩 떨궈버리기에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라 할 수 있지않겠는가.

 

三神山 雙磎寺(삼신산 쌍계사)과 禪宗大伽藍(선종대가람), 일주문에 걸린 두 개의 편액(扁額)은 비교적 깨끗하고 글씨도 선명하다. 일주문은 기둥 하나씩을 얻고 지붕을 얹었다는 현상(現象)의 이름 외에, 한마음 한 뜻으로 수도 정진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쌍계사 일주문은 임진왜란 이후(인조19년. 1641년) 벽암(碧巖)스님이 절을 중창하실 때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며, 현재 조실로 계신 고산스님께서 1977년 중수 하셨다. 편액의 멋스러운 글씨는 근대 서화가로 이름난 해강(海岡) 김규진(1868~1933) 선생이 쓴 것이다.

 

삼신산은 두류산,방장산 등과 같이 지리산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쌍계사가 들어앉아 있는 산줄기는 삼신봉능선으로 이어져 지리산 삼신봉에 닿고, 삼신봉에서는 지리산 남부능선으로 맥이 이어지며 주능선 상의 영신봉에 닿게 된다.

 

일주문에서 바라보이는 것은 또 다시 門으로 이어지는 좁은 오름길 뿐, 아직 가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차안(此岸.속세)의 세계에서 피안(彼岸.불국토.극락)의 세계에 이르기까지에는 아직도 門에서 門으로 통하는 절차를 남겨두어, 한발한발 다가설수록 부처님 세계로의 접근을 실감케 하고, 더불어 경건한 마음 자세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금강문(金剛門)에 이른다. 불교의 수문신장인 금강역사가 있는 문이다. 금강역사의 주임무는 사귀(邪鬼)들의 진입을 막거나, 문을 통과하는 참배자로 하여금 사심을 버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성역에 들어서게 하는데 있다고 한다. 문의 왼쪽에는 목조로 된 밀적금강(密迹金剛)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 입을 벌리고 있다. 이는 범어의(梵語)의 첫글자인 을 의미하며,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성과 통일.완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사자를 탄 문수동자상(文殊童子像)과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상(普賢童子像)이 각각 마주보며 금강역사와 함께 있다.

 

[쌍계사 금강문. 사진-쌍계사 홈페이지] 

 

[쌍계사 금강문. 밀적금강과 사자를 탄 문수동자. 사진-쌍계사 홈페이지]

 

[쌍계사 금강문. 나라연금강과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상 사진-쌍계사 홈페이지]

 

 

쌍계사의 금강문은 절의 창건과 함께 진감국사께서 조성하셨고, 인조 19년 벽암스님의 중창과 현대에 이르러 고산스님의 중수가 있었다고 한다. 편액의 글씨는 중창주인 벽암스님이 쓴 것이라고 하는데, 금강문 전각(殿閣)으로는 나라안에서도 손꼽히는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금강문을 들어서서 무심히 다리를 건너고 계단을 오르자 천왕문(天王門)이 기다리고 있다.

이 팍팍한 삶에서 나는 무슨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눈을 부릅뜬 신장(神將)의 모습은 언제나 부담스럽고 눈길 두기가 편치 않다. 아, 참으로 가련한 중생이여

 

 

[쌍계사 천왕문. 사진-쌍계사 홈페이지]

 

 

금강문이 문지기 역할을 하는 문신(門神)을 봉안한 문이라고 하면, 천왕문에 봉안된 사천왕은 천상계의 가장 낮은 곳인 사천왕천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하는 존재들이라고 한다. 수미산의 사방 세계를 지키며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불도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신적존재라고 하는데, 고대 인도의 신이었던 그들은 불교에 수용되면서부터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천왕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방 지국천이 검을, 북방 다문천이 비파를 서방 광목천이 탑을, 남방 증장천이 용을 쥐고 있는 무서운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천왕신을 봉안한 천왕문은 사찰수호의 의미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불국세계의 진입과정 중에 수미산 중턱의 청정한 경지에 들어가는 관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음은 금강문에서의 경우와 비슷하다 하겠다.

 

쌍계사 천왕문은 1704년(숙종30년) 백봉스님이 창건하였으며, 조선 후기 두 차례의 중수가 있었고, 1880년에 천왕상이 개최되었다고 한다. 쌍계사의 사천왕상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조각 솜씨가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주위의 여러 전각들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의 구층석탑이 보이고 확 열리는 공간 정면으로 팔영루(八詠樓)가 보인다.

 

구층석탑은 고산스님이 인도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3과(顆)와 산내 암자인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 진신사리 2과(顆), 전단나무로 된 부처님 1위를 모셔 조성한 것으로 1987년 1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990년 3월에 완공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 모양이 월정사 팔각9층석탑과 흡사하다.

 

 

[현대에 조성된 쌍계사 구층석탑. 사진 바로 오른쪽의 건물은 팔영루,

오른쪽 먼 곳에 있는 전각은 범종루이다. 07/02/25]

 

 

진감선사에 의해 우리나라에 범패라는 불교음악이 최초로 도입된 곳이 쌍계사이고, 범패의 교육과 전파를 하는 교육장 역할을 한 곳이 팔영루라고 한다.  

 

-계속-

 

2007/02/25

두류/조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