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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탐방]

뜰 앞의 산수유 봄을 깨우다. 연곡사

 


[종각과 산수유]


■뜰 앞의 산수유, 봄을 깨우다. 연곡사

 

연곡사(燕谷寺) 일주문을 들어서자, 정면 대적광전(大寂光殿) 이르는 길 좌우 공간이 모두 열리며  전각 대부분이 시야에 들어온다. 늘 그렇듯 좁은 문과 문을 잇는 길을 따라 오르며, 때로는 속세의 때로 얼룩진 마음을 씻으며 원(願)을 세우거나, 혹은 사천왕상의 부라린 눈에 괜스레 마음 졸이며 절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당연한 길과 절차를 예상했었는데 다소 뜻밖이다.

 


[연곡사 일주문]

 


[대적광전 가는 길. 계단으로 이어지는 길은 삼단으로 되어 있다]

 

전각들이 오밀조밀하게 이어지거나 붙어있지 않고, 산자락에 너르고 탁 트이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은 시원스럽기도 하거니와, 절집의 모습을 거리낌없이 내보이며 중생들과의 거리감을 없애려는 뜻일 거라는 생각에 이르자 파격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곧 나는 아둔함에서 깨어나게 된다.

 

연곡사의 창건주는 본사(本寺)인 화엄사를 창건하신 신라 진흥왕 때의 인도스님 연기(緣起)조사로 알려져 있으니 이 절의 역사는 무려 천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다.(창건:8세기 중엽으로 추정). 이렇게 유서 깊은 고찰인 연곡사는 절집이 전소되는 두 번의 재난과 폐사에 이르는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조선 선조 대의 정유재란이 발발하였을 때와 구 한말 의병활동(의병장 고광순)에 있어 연곡사는 의병들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하였다고 하는데, 이를 확인한 왜군과 일본군은 두 번 모두 사찰을 완전히 불태웠다고 한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 절이 폐사(廢寺)되는 운명에까지 처해진 것은 빨치산의 지리산 입산과 토벌대의 활동 때문이다. 절이 들어서 있는 피아골은 빨치산의 지리산 입산 초기 본거지였고, 치열한 전투가 헤아릴 수 없이 벌어졌으니 스님들은 절을 떠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본전(本殿)인 대적광전 향하는 길 중간중간,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하며 신심과 깨우침을 채근하였을 전각과 좁은 문을 마음으로 그려보았다.

 

왜란으로 불타버린 연곡사를 중건하신 분으로 서산 휴정대사의 제자인 소요 태능대사(1562-1649)가 유명하며, 현대에 있어서는 1965년에 소규모의 대웅전이 요사채를 겸하며 세워진 이래 중창불사가 이어져 오고 있다.

 

축대를 쌓아 올린 중간의 마당을 계단으로 오르자, 왼쪽에 있는 종각이 눈에 띈다. 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지 않았고, 짙은 나무 색깔이 그대로 드러나는 수수한 모습에 친근감이 가지만, 그 맵시가 무척 뛰어난 듯하다. 하지만 이 고색창연하게 보이는 종각은 1993년도 종각 복원을 위한 연곡사 일대의 유물발굴작업과 전승기록 연구가 이루어진 점을 보면 아주 최근에 복원이 된 것인 듯하다.


 


[산수유와 종각]

 

종각 옆, 발길을 떼지 못하고 하는 뭔가가 있었다.

산수유가 노랑 꽃망울을 터트린 것이다. 그 날아갈 듯한 노랑의 가벼움이 기어이 깨운 봄,종각과 어우러지는 산수유의 개화에 달뜨는 마음을 느끼다.


 


[산수유꽃]

 

대적광전, 화엄종 사찰에서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는 본전(本殿)이다. 본사(本寺)인 화엄사가 화엄종의 종찰(宗刹)이라 당연한 듯하지만, 절의 유물과 현각선사 등 주석하신 스님들의 면모를 볼 때 신라 하대부터 고려 초기에 이를 즈음에 선종사찰로 성격이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앞에 소개한 소요 태능대사께서 주석할 당시의 연곡사는 엄격한 계율과 강학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며, 소요대사의 법맥은 침굉현변, 해운경열, 제월수일 등의 제자로 이어져 조선후기 불교의 큰 중요한 일문을 형성하였다고 전해진다.



 

[대적광전과 산수유]

지금의 대적광전은 1981년에 새롭게 지어졌다고 한다. 법당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 오른쪽의 마당을 서성이며 법당을 바라보는데 노랑색 봄을 가지에 매단 산수유 한그루가 마치 뜰의 주인인 냥 서있다. 노랑꽃을 매단 그 가벼움의 나무도 부처님을 모시고 있어서인지 의젓한 모습이다. 아마도 동안거가 끝날 무렵이면 만개할 듯하다.

 

대적광전 뒤로 오르면 동부도와 북부도를 만날 수 있다. 참으로 감탄을 금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답게 새겨진 모습이다. 예나 지금이나 혼이 스며들 듯, 자신의 일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동부도]

 


[북부도]

 

올라온 길 옆, 서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내려서면 서부도를 만난다. 조금 전에 만났던 두 부도에 비해 조각이 그리 정교하지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하면서도 잘 생겼다. 기록에 의하면 이 서부도는 소요태능대사의 부도라고 한다. 주위에는 몇 기의 석종형 부도도 함께 있다.

 

 


[서부도와 주변의 석종형 부도]

 

아직 몸을 날리지 않은 동백꽃의 색감이 곱다. 의병장고고광순순절비는 화관처럼 둘러쳐진 동백나무 아래 조용히 있고, 현감선사비를 지나면, 답사 초입 중간 마당을 오르며 만났던 종각 옆을 지나게 된다. 종각이 서있는 축대 아래에도 가로로 길게 드리워진 공간이 있는데,양쪽에 모두 연못이 있고 서쪽 남새밭 부근에는 삼충석탑이 홀로 서있다.



 

 


[의병정 고 고광순 순절비]

 


[삼층석탑]

 


[서쪽 연못과 종각]

 


[동쪽 연못. 뒤에 보이는 능선은 불무장등에서 이어진 황장산 능선]


 

봄을 깨우는 산수유, 눈부신 노랑꽃에 달뜬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며 절집을 나서며 길과 강을 떠올렸다. 섬진강 옆 19번 도로로 들어서자 길가에 핀 매화의 모습이 화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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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곡사는 단풍으로 유명한 지리산 피아골 들머리에 있다. 연곡사로 가는 길은 벚꽃과 섬진강을 끼고 있어 아름답기로 유명한 19번 국도에서 방향을 틀어 산자락으로 들어서게 된다.  2차선 도로를 따라 쭉 들어가면 들어 가면 국립공원안내소와 연곡사 매표소를 지나며, 방향을 크게 트는 곳에 연곡사가 있다. 지리산 산길로는 직전마을-피아골대피소-임걸령 삼거리(주능선) 코스가 있다. 또 피아골에서는 불무장등, 질매재 등으로도 산길을 이을 수 있으나 반달곰 보호, 혹은 비법정 등산로라는 이유로 입산을 금하고 있다. 직전마을과 연곡사로는 구례터미널을 오고 가는 군내버스가 운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