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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탐방]

지리산 상무주암



 

 

♧지리산 상무주암

 

지리산 주능선 삼각고지에서 북쪽으로 가지를 치며 드리워진 능선, 즉 삼정산을 중심으로 한 이 능선을 우리는 보통 지리중북부능선, 혹은 삼정산능선이라고 부른다. 경남(함양군 마천면)과 전북(남원시 산내면)의 도경계를 이루는 이 능선에는 지리산의 다른 어느 곳보다 사암(寺庵)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 언제인가부터 사찰순례산행이라는 테마로 지리산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데, 이름하여 7암자 산행이라는 테마산행이 그것이다. 7암자도솔암,영원사,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실상사를 모두 일컫는 말이다.

 

이곳의 절집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수행정진도량으로 이름이 높아, 삼정산 자락 전체를 불향 가득 서린 곳으로 이름나게 만들어 왔다. 특히 마천면 도마부락에서 문수암이나 삼불사로 이어지는 작은 골짜기는 견성골이라는 범상치 않은 이름을 지녔고, 영원사를 비롯한 곳곳에 고승 대덕들의 수행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내려 오고 있으며,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산자락 아래 마천면 군자리에는 조선시대까지 군자사라는 큰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 구산선문의 하나로 스님들의 실천적이고 청빈한 수행으로 잘 알려져 있는 실상사의 명성은 여기서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하겠다.

 

저마다 깊은 역사를 지녔고 어느 곳 못지않은 치열한 수행의 흔적이 배어있는 이곳의 많은 절집 중에서도 독창적인 우리나라 불교의 정립과 발전, (禪)과 교(敎)가 어우러지는 청정수행의 교풍을 이어지게 하는데 있어 대들보와도 같은 역할을 한 곳이 있으니 바로 상무주암이다.

 

해발 1300여 미터 고지, 언제나 빗장이 굳게 걸려있는 이 자그마한 산중암자를 그렇게 높여 일컬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 불교역사의 태두라고도 할 수 있는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처음으로 문을 열며 수행을 한 곳이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타락한 불교를 바로잡기 위하여 정혜결사를 조직하고 팔공산 거조암에 주석하시던 스님은 홀연 상무주암으로 들어와 세속과 단절한 채 적정삼매와 독서삼매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문득 대혜어록선이란 고요한 곳에도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않고 사량분별하는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라는 구절에 깨우침을 얻고는 적극적으로 보살행을 지향했다고 하는데, 말하자면 대중불교에 깊이 관여하며 불교발전의 큰 틀을 마련하게 되는 스님의 2차 깨우침을 얻은 곳이 상무주라는 것이다.

 

이후 스님은 송광산 길상사를 개창하게 되며, 중창불사 끝에 산과 사찰의 이름을 각각 조계산송광사로 바꾸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니, 고려 말까지 무려 15국사의 고승대덕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송광사는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는 만고에 빛나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지눌스님은 스승을 두지않고 홀로 공부를 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교에 치우쳤던 당시의 불교를 벗어나 교와 선을 아우르되, 선을 중시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종풍을 선도하여 우리나라 불교가 인도와 중국, 일본과는 다른 독창적이면서도 가장 균형 잡힌 종교로 자리잡는데 큰 기틀을 마련하신 것으로 평가 받는 분이시다. 그러니 우리나라 불교의 큰 뿌리를 이루는 한가운데에 상무주가 있다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상무주(上無住)란 머무름이 없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언젠가 상무주에서 수행 중인 스님을 취재하러 간 어느 불교전문지의 기자가 윗 字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가 묻다가, 글에 매이지 말라는 말로 스님으로부터 면박을 받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결국 그 기자는 그 후 공간의 무게에 눌려 몇 마디 말도 나누지 못하고 곧장 하산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이 작은 절은 세월의 흐름만큼 무거운 빗장을 걸어 놓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의 머무름도 없는 곳이라고 했었던가. 하지만 새해 첫눈이 내려 상무주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던 날, 결국 나는 동행한 이의 월담을 핑계 삼아 처음으로 빗장을 넘어보았다.

 

비록 시계(視界)가 닫혀 아름다운 천왕봉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함이 아쉬웠지만 가까이 있는 모든 것이 설국을 이루어 벼랑 아래의 남새밭도 포근한 느낌이다. 안온함, 시원하게 트였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겨울산에서의 느낌이리라. 오래 전부터 이어지는 불향(佛香)의 온기 때문일까, 돌담으로 낸 샘은 그 가느다란 물길도 얼리지 않고 여전히 지친 나그네들에게 감로수를 보시하고 있다.

 

 

치열한 수행의 길을 걷고 있을 이름 모를 스님에서부터, 조계의 오롯한 교풍을 이어오게 만든 지눌스님에 이르기까지  깨우침과 중생제도에 온 힘을 기울였을 선인들을 떠올리며 상무주 앞 그 길을 마음의 합장을 하며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