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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기록]

침묵하는 산, 왕산-필봉산

 [필봉산에서 바라본 지리산 산줄기와 산자락]

 

 06년 12월 3일, 지리산 북서쪽 산줄기의 지능선에 있는 왕산-필봉산을
찾았다. 지리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을철 산불경방기간으로 국립공원
입산이 통제되면 이렇듯 지리산을 바라보는 곳으로 발걸음을 자주 하게
된다. 바라봄으로 그리움을 달래고, 돌아서면서 그리움을 더 키우며...    


행정구역으로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있는 왕산은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10대) 구형왕과 관련된 이야기가 스며있는 곳이다. 하지만 비교적
구체적인 사실이 기록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로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많다. 전해지는 이야기와 기록이 서로 맞지않아 확인이 되지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왕이 있었던 곳이라 해서 왕산이라 했고, 또 지리산 동부
능선의 고개는 왕이 올랐다고 해서 왕등재란 이름을 얻었다고 오래 전부터
전해지고 있지만 냉정한 역사는 요지부동이다. 그저 이름으로만 만족하라는
듯,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고 눈여겨 보지 않는 듯하다.  

문득, 역시 가락국의 흔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이웃 함양 땅의 국골,두지터,
빈대궐터 등의 이름이 떠오르자, 깊고 적막한 산자락에서 망해 가는 나라를
절망과 번민으로 다스렸을 왕의 심정이 조금은 느껴지는 듯하다. 

왕의 돌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는 傳구형왕릉은 그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의
중심에 있다.
 

나라를 넘겨주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양왕(讓王), 
즉 구형왕의 다른 이름이다. 강대국 신라가 끊임없이 침공을 하자,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덜어주고자 나라를 넘겼다고 한다. 이제 그 부끄러웠을 일에
벗어나, 한없는 사랑을 위하여 스스로 그 치욕을 택했다는 사실에도 마음을
두어 볼 일은 아닐까.

그리고 신라의 진골로 편입되어 삼국통일의 큰 기둥 역할은 한 사람이 바로
그의 증손자인 김유신 장군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 이는 아직도 부끄러운 모양이다.
돌을 쌓아 만든 무덤은 아직도 '전'이라는 접두어를 떼지 않고 있지만, 
애써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듯하다. 돌무덤 중앙의 감실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그 이가 우리를 걱정하며 내려보고 있는 듯하다.

언제쯤 왕은 침묵을 거둘까... 

 

[전구형왕릉] 

 

[류의태 약수터] 

 

[왕산] 

 

 

 날씨가 제법 차가웠던 이 날, 지리산 주능선에서는 엄청난 눈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왕산을 오르며 만났던 흰눈으로 뒤덮인 지리 영봉의 산줄기는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웠다

 

 

[필봉산에서 지리산을 배경으로 단체]

 

 

 

[필봉산과 웅석봉. 중간의 산줄기 사이로 삼장면으로 이어지는 밤머리재가 있고
왼쪽의 높은 봉우리가 웅석봉이다. 필봉산은 마치 붓끝처럼 뾰족 솟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필봉,문필봉이라고도 불리운다]


 

 

[필봉산에서 바라본 북쪽의 산줄기. 중앙 오른족 뒤, 하얗게 보이는 곳이
눈으로 뒤덮인 덕유산 향적봉이고 왼쪽 끝자락 희미한 곳이 남덕유,
덕유 서봉이다]

 

 [또 하나의 왕산. 예전에는 이곳에만 왕산 표지석이 있었다]

 

 

 [하산 직전 바라본 지리산. 왼쪽의 써레봉 능선은 촘촘히 솟아있는 바위 봉우리로 그 이름을

얻게 된 연유를 잘 알 수있다]

 

 

[망경대] 

 

 [소나무숲 사이의 호젓한 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