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기록]

지리산의 봄을 만나다


[문수암에서 도봉스님과 함께]


1.
봄기운 완연한 지리산에 들다.

 

2 지리산 뱀사골 산자락,

가느다란 가지마다 영롱한 구슬을 머금고 있는 나무는 이미 생기가 넘쳐

이상 겨울 나목(裸木) 모습이 아니다.


 

[뱀사골계곡]


 
[반선에서 뱀사골을 잇는 다리]


 

빛이 드러나는 계곡 물길에는 한겨울 추위에 붙들려있다 풀려난 것들과,

그저께 그리고 오늘 새벽에 내린 비가 함께 어우러진 거침없는 흐름이 있다.


[뱀사골계곡]

 

벌써 지리산자락에 봄이 와있었단 말인가

계절이 흐름이 겨울처럼 속절없이 느껴지는 경우도 드문 듯하다.

 

설날 연휴 첫날(2.17 ) 일기예보는 전국적으로 ,

오히려 눈을 맞이할 있는 멋진 기회라 여기고 금요일 늦은 시각에 산친구

명과 남원 산내면 지리산 뱀사골 입구의 반선 민박집으로 들어가다.

산행코스는 모처럼 만복대에서 시작하는 서북능선으로 잡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예상한 대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이른 아침 광주를 출발하여 합류하기로 아우는 때문에 오겠다는

메시지를 벌써 남겼다.

 

하긴 이런 길을 나서기란 참으로 마땅찮은 일이기는 하다.

 

아침식사를 하고 차량으로 성삼재에 오른 산행여부를 결정하기로 한다.

 

높은 고개를 향해 오르는 도로에서도 봄의 흔적을 발견하다.

겨우내 얼어있던 눈과 얼음이 녹아 질퍽거리는걸 보면,

고개 넘어온 봄이 이리로 지나갔음이 분명하다.

 

여느 때와 달리 인적 드문 성삼재 고갯마루에 서다.

행여 진눈깨비라도 하던 기대는 여지없이 깨져버리고,

가랑비와 짙은 운무 그리고 바람마저 쌀쌀하게 불어오니

참으로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고개 너머 휴게소가 있는 시암재로 내려서니 시계(視界) 조금 열리건만,

짙은 구름이 삼켜버린 만복대는 결국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시암재 전망대에서 바라본 구례 천은사 방향 풍경. 전면 중앙, 구비구비 돌아가는 성삼재-천은사 간 도로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시암재에서 바라본 서북능선. 짙은 운무에 능선 쪽 시계는 전혀 열리지 않는다]


() 없는 겨울 , 겨울 우중(雨中)산행,

도무지 어울리지도 내키지도 않는 조합이라 쉬이 운행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성삼재로 다시 올라, 능선쪽을 바라보며 하릴없이 어슬렁거리고 비를 맞는데,

갑자기 침묵을 깨는 외침이 있었다.

 

형님, 도봉스님 올라와 계실 텐데, 문수암으로 올라가시지요

 

섣달그믐, 설날을 앞두고 산중에 있는 어른에게 인사 드리러 가는 일이니

맞는 일이 대수이고, 그만큼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일거에 망설임과 답답함이 사라져버린다.

 

 

2. 문수암에 들다.

 

문수암은 지리산 주능선 연하천 인근의 삼각고지에서 북쪽으로 드리워지며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을 경계 짓는 중북부능선(삼정산능선) 산자락 1000m

고지에 있는 산중 암자이다.

 

문수암에는 24 동안 도봉스님이 홀로 수행하고 계시는데,

스님은 이제 세속 나이 칠순을 남기지 않으셨다.

도봉스님은 조계종 종정을 지내신 혜암스님(2002 1 입적) 상좌 출신으로

스승이신 혜암 종정스님에게서 절해고도와도 같은 절집을 물려받아 지금껏

지키고 계신다.

 

문수암에서 조금 위쪽(정면으로 보아 왼쪽)으로 오르면 상무주암-영원사-도솔암으로,

법당 아래, 축대 (오른쪽) 길을 따라 진행하면 삼불사가 나오고, 약수암-실상사로

이어진다. 이른바 칠암자 산행의 사암(寺庵)들이다.

 

문수암 가는 길은 음정마을-영원사 도로 중간지점에서 오른쪽 지능선으로 올라

상무주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거나, 도마마을에서 견성골을 따라 오르는

길이 있다. 어느 길이나 2시간이면 충분히 오를 있다.

 

일행 4명은 견성골 코스를 택해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 도마마을로 향했다.

 

(11:15)

산자락에 들어서자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며 몸이 젖기에 알맞을 정도로 내린다.

만에 찾은 도마마을은 예전보다 사람 손이 많이 닿았고,

특히 산자락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파헤쳐져 있다.

 

그러다 참으로 어이없는 안내판 하나를 만난다.

출입금지


[견성골에 들어선 호화 목조주택]


[문수암 오름길 들머리 팻말과 정면의 신작로 같은 산길]


비록 작은 암자들이지만 스님들을 찾는 신도들이 주로 이용하는 들머리에

어찌 안하무인 격인 팻말을 꽂아두었을까?

바로 아래로는 호화판 목조건물이 들어서있고, 위로는 이미 신작로처럼 산길이

이어지는데 무슨 영문으로 길로 없다는 말인가?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가라 앉히며 삼불사 갈림길을 지나자 빗소리가 조금

요란스러워지는 듯하다. 손바닥을 펼쳐보니 어느새 비는 작은 얼음 알갱이들로

변해서 내리고 있다.

 

이번 문수암 오름은 발목 부상으로 1년간 산행을 쉬었던 화일도 모처럼 함께했다..

조심스러운 걸음이지만 배낭을 메고도 꾸준히 오르고 있어 무척 다행스럽다.

 

문수암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급경사 오르막길을 만날 즈음, 갑자기 하늘에서 작은

뭉치들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한다.

함박눈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산자락에 들어선지 2시간도 못되어 ,진눈개비,눈을 만난 것이다.



[눈 내리는 견성골 풍경]

 

문수암 직전 오름길에 들어서서는 사람 발자국도 사라질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린다. 순식간에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린다.

마지막 돌계단을 올라서자 도봉스님이 마중을 나오셔서 반갑게 맞이하신다.

(13:00)

 

짙은 운무에 휩싸인 산자락에서 별천지처럼 환하게 트인 공간을 이루는 곳이 문수암이었다.

 

포근한 솜을 두른 것처럼 안온한 느낌의 산자락을 이리저리 바라보고 있으니 이윽고

눈이 그친다.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1/500)s iso400 F11.0

[Canon] Canon EOS 350D DIGITAL (1/769)s iso400 F11.0

 
[문수암에서 바라본 풍경]

 

문수암에서는 뜻밖에 홀로 산행에 나선 젊은 분을 만났는데, 바로 포산님이다.

산행후기에 자신의 사진을 자주 올려주다 보니 내가 쉽게 알아볼 있었다.

 

예불을 하고 잠시 밖으로 나오니 법당으로 들어오라는 스님의 분부가 계셨다.

다섯 명이 모두 한자리에 둘러 앉으니

이른바 섣달 그믐, 도봉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마음에서 비롯되니, 부디 한해 마음을 다스리시라

스님의 당부이시다.

 

점심공양을 마치고 오미자 차를 마신 ,

떨어지기 싫은 발길을 겨우 옮겨 문수암을 내려서다. 

(15:00) 문수암에서 2시간 시간을 보낸 듯하다.


[도봉스님과 함께]

 

견성골 우렁찬 물소리는 잠자던 버들가지를 깨워 소담스러운 움을 틔워놓았다.


[견성골]

 

세찬 소리를 내며 흐르던 물소리가 어느 순간 두런두런하더니,

내려놓아라, 내려놓아라하는 소리가 마치 환청처럼 들린다.

견성골의 법문이라던가?

 

그나 저나 마음 속의 봄은 어떻게 끄집어 내어야 하는가?

두류/조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