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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기록]

지리산 국골-두류능선

 

[말봉에서 바라본 반야봉(맨 뒤 중앙)과, 함양 땅으로 드리워진 헌걸찬 지능선들]

 

 

▣지리산 국골-두류능선 산행후기

 

9월 9일(토요일) 저녁, 지리산 동북부자락 국골-두류능선 산행을 위하여 함양 마천면의 추성리로 들어서다. 숙소는 마을 입구의 정자 오른쪽에 있는 은행나무집으로 지난 8월, 칠선계곡을 찾았을 때도 이용했던 곳이다. 소란스러웠던 여름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마을에는 윤7월 보름을 갓 넘긴 맑은 달빛과 스멀스멀 소름을 돋게 하는 서늘한 대기가 어우러지며 가을이 키를 세우고 있었다.

 

9.10일(일요일) 04:30분 기상, 05시 30분에 길을 나서다.

 

마을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추성산장(민박집)이 나오면 다리를 건너지 않고, 왼쪽의 마당을 가로지르며 콘크리트 포장 농로를 따른다. 길이 산자락의 끝을 만나고 오른쪽으로 에돌아  잠시 진행하면 왼쪽 숲으로 ‘국골코스’ 들머리가 나온다. 

 

 

[산길 초입에서 만난 참꿩의다리].

 

국골, 이름 그대로 엄연한 골짜기지만, 산길은 물길이 짧아 흔히들 ‘무늬만 골짜기’라고 이야기 한다. 약 2시간 여 계곡을 따라 오르면, 물길을 가르는 산자락으로 길이 바뀌며 계곡과는 멀어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코스이지만 아직도 이곳 산길은 거친 편으로 가끔씩 긴장을 해야 하는 곳이 나온다. 그래서 오히려 서두르지않고 ‘느림’에 마음을 두고 여유롭게 오른다면 받아들이게 될 느낌의 부피도 매우 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약 1시간 정도 고도를 올리면 가느다란 물길의 식수 구할 곳이 있으나, 계곡을 벗어날 때 미리 식수를 보충하는 것이 좋겠다.

 

[국골]

 

 

가파른 산사면의 길을 가로지르며 쓰러져 있는 거대한 신갈나무, 지극히 차분하고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회귀하는 모습이지만, 나무의 역사를 떠올리다 보면 안타까움도 없지 않다. 이 가파른 산자락에서 한없이 몸을 키우는 일이란 그리 내세울 만한 덕목이 아니란 이야기다. 스스로의 무게에 못 이겨 쓰러진 나무, 한 때 생명을 걸다시피 한 치열한 ‘해바라기’의 승자였을 나무의 주검 앞에서 뜬금없이 나는 나를 위로한다.

 

계곡을 벗어나서 능선으로 오르기까지는 약 2시간 남짓 걸린다. 물론 걸음에 생각이 실린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가느다란 물길이 있는 곳에는 모처럼 공간도 너르게 열려 식사장소로 안성맞춤이다. 능선이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들 즈음, 산자락 오른쪽을 가로지르며 진행되던 길이 급사면으로 오름길로 바뀐다. 가끔씩 움직이는 돌이 있어 낙석의 위험이 있으니 운행에 주의를 요한다. ‘매미와 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적요함이 감도는 숲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낯익은 국골 4거리의 팻말이 반갑다. ‘지리산 동부능선’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는 이곳까지의 오름 시간은 약 4시간 30여분 정도 잡으면 된다.

 

국골4거리에서는 진행방향의 왼쪽, 바위봉우리를 오른다. 이른바 두류능선의 시작이다. 두류능선코스는 생각보다 거리가 멀고, 가끔씩 바위지대를 지나야 하는 만만찮은 코스이지만, 이 곳 동쪽 산사면으로 허공달골(다리골),어름터,향운대 등으로의 멋진 산길이 연결되다 보니, 번잡함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국골에서 진행방향 정면, 즉 고개를 넘어가는 길은 쑥밭재를 거쳐 동부능선으로, 오른쪽 오름길은 하봉을 거쳐 주능선으로 이어진다.

 

국골 4거리에서 곧장 올라 만나는 암봉을 말봉으로, 능선 중간의 평평한 1432봉을 두류봉으로 우리는 여태껏 불러왔는데, 요즈음 그 이름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일에 관심을 두지않으려 한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온당하다 할 수는 있겠으나 ‘산으로 드는 일’과는 어울리지않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뜻밖에 누군가가 두류봉이라는 이름을 쓴 각목을 꽂아두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 말봉은 여전히 말봉이다.

 

[말봉에서 바라본 반야봉과 지능선들]

 

말봉… 나의 지리산 풍경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 만든 잊지 못할 추억이 서린 곳이다. 주능선 위의 온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며 반야봉 너머로 지는 해를 맞이한 것은 1999년의 섣달 그믐 저녁 무렵이었다. 새 천년의 중봉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 동부능선 왕등재 부근에서 몇몇 아우들과 야영을 한 후, 하봉 헬기장에서의 이틀 째 야영을 위해 쑥밭재를 지나고, 가파르고 긴 산사면을 힘겹게 올라 간신히 국골4거리에 이르는 순간이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 드러나는 주능선 쪽의 하늘 모습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자, 지쳐있던 몸이 갑자기 반응하며 서둘러 말봉을 올랐다. 그 순간, 나는 추위와 어둠, 아우들과의 떨어진 거리, 그리고 말문조차도 잊고, 한참 동안을 꼼짝도 못한 채 벌겋게 물든 하늘과 능선의 실루엣, 그리고 반야봉 너머로 지는 해를 향해 번갈아 가며 시선만을 옮기고 있었다.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까닭 모르게 눈물이 핑 돌던 부끄러운 기억은, 그 때의 숨막힐 듯 아름다웠던 풍경과 하나로 묶어 새삼스럽게 들춰내 본다. 그 후부터 나의 지리산 제 1경은 ‘말봉 낙조’가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말봉에서 지리주능선을 원없이 바라보았다면, 다음은 바로 옆의 동쪽 전망대로 자리를 옮길 일이다. 독바위의 모습이 환하고,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휘며 뻗어가는 동부능선, 그 뒤 오른쪽으로 장쾌한 하늘금을 이루고 있는 달뜨기 능선, 그리고 거의 정면 방향으로 왕산과 필봉산의 모습도 또렷이 보인다. 

 

 

[말봉 옆 동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하얀 독바위와 바로 위(뒤)의 새봉과 동부능선. 그 뒤 좌에서 우로 가로

지르는 봉우리는 왕산(좌)과 필봉산(우). 달뜨기능선은 이 그림에서 보이지 않고 오른쪽 뒤에 있다]

 

말봉에서 약 7~8분 내려서듯 진행하면 오른쪽 산사면으로 내려서는 길을 만난다. 기억으로는 거의 다니지 않던 길이었는데, 다른 기록들을 보니 향운대로 이어지는 듯하다. 뚜렷하게 열려있는 길 모습과, 많이 달려있는 깨끗한 표식기들로 보아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듯하다. 향운대로 들어가던 길은 이 곳에서 다시 7~8분여 더 진행하면 산길이 왼쪽 바위지대로 확 꺾이는 지점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역시 예전에 없던 표식기들이 제법 많이 달려있다.

 

숲향 짙은 숲속의 길, 수시로 나타나는 바위지대를 번갈아 가며 진행하면 평평한 봉우리인 1432봉에 닿는다. 이 곳 봉우리에서 숲을 벗어나면 시야가 트이면서 지리주능선 전체가 멋지게 조망된다. 바로 앞의 초암릉을 비롯하여 함양 땅으로 내려서는 겹겹의 지능선들을 하나하나 짚어보고, 다시 눈길을 돌려 주능선 맨 왼쪽, 산사태의 흔적이 선명한 중봉부터 시작하여 천왕봉을 지나며 오른쪽으로 마루금을 이어가던 시선은 반야봉에서 한참을 머물게 된다.

 

[1432봉에서 바라본 중봉과 천왕봉. 바로 앞의 앞의 능선은 초암릉]

 

1432봉 이후부터는 비교적 부드러운 숲길로 이어지고, 가끔씩 나타나는 ‘경계 표시석’을 만나면 이내 무덤 2기를 지난다. 왼쪽 산자락 아래로 너른 묵정밭의 모습이 언뜻 시야에 들어오고 집수정을 만나면 그 쪽으로 내려선다. 길은 외딴 집 마당을 거쳐 바로 성안마을 임도와 연결되는데, 임도를 잠시 진행하다 왼쪽으로 내려서고, 무덤을 만나면 다시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로 방향을 잡는다. 약 15분 여 걸어 산길을 벗어나면 콘크리트 포장 농로를 만나게 된다. 잣나무,밤나무,호도나무가 심어져 있는 산자락 사이의 딱딱한 농로를 걷다 보니 서서히 발바닥이 따가워지기 시작한다. 산길을 다 내려서자 가장 힘든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길 진행

추성리-국골들머리-능선 국골4거리-말봉-1432봉-성안마을-추성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