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봉에서 바라본 남녘의 산자락. 중앙의 골짜기는 불무장등과 토끼봉 사이의 연동골]
07년 2월 4일 06:00시, 전북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뱀사골 입구 반선의 일출식당을 나서다.
반선에서 성삼재를 거쳐 구례 천은사로 이어지는 도로는 결빙이 되어 사륜구동 차량도 겨우 지나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뱀사골 그 길고도 아득한 골짜기를 오르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턱 막힌다. 차라리 달빛을 맞으며 도로를 걷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차량이 오를 수 있는 곳까지 오른 뒤, 걸어서 성삼재로 향하기로 하다. 예상대로 정령치 갈림길을 지난 도계삼거리에 이르자 미니버스의 운행이 힘들다. 모두 하차하여 눈 쌓인 도로를 걷는데, 성삼재까지 약 5Km 남짓 될 듯하다. 지리산 서북 산자락의 2월 날씨치고는 너무도 포근하다.
(참고: 당초 예정되었던 뱀사골-삼도봉-노고단-성삼재 코스를 거꾸로 운행함)
해뜨기 직전의 이른 아침, 보름을 갓 넘긴 크고도 아름다운 달이 맞이하는 산자락에서 온몸으로 달빛을 받아들이며 걷는 일,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달빛과 어우러진 마음은 흥겹고, 걸음은 리드미컬하며 거침이 없다. 그러는 사이 왼쪽 주능선 위로 산 빛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이송아우가 차량을 가지고 올라와 몇 차례 왕복한 덕분에 약 30분 정도 시간을 단축하여 성삼재에 도착하다. (07:20)
성삼재에서 만난 해뜨기 직전의 풍경은 우리가 그 자리에 있음을 행복하게 해준다. 너울지는 아침 골안개와 섬처럼 떠있는 봉우리를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 눈길이 닿는 곳에는 수많은 산줄기들을 보호하듯 서있는 무등산이 참으로 의젓하다.
[일출 직전 성삼재에서 바라본 산그리메. 중앙 뒷쪽 먼 곳의 봉우리가 무등산]
[성삼재에서 바라본 무등산(중앙 뒤 큰 봉우리]
이미 해는 떠올랐지만 산자락의 골안개는 이제 더욱 짙어지는 듯하다. 코재에서 만난 화엄사 앞 형제봉 능선의 산자락은 아직도 잠에서 덜 깬 모습이다. 문득 ‘흰구름이 골짜기를 가득 메운(白雲平확)’이라는 박순 선생(조선 선조대)의 시구가 떠오르는데, 지금의 산자락은 백운(白雲)보다는 연하(烟霞)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번대사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종석대, 아니 석종대(石鍾臺)의 모습은 오늘따라 더욱 신령스러운 느낌이다.
[일출 직후, 코재에서 구례 형제봉 방향으로 바라본 산자락]
[코재에서 바라본 종석대(혹은 석종대)와 산그리메]
노고단고개, 아침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아득한 주능선, 북쪽과 서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산그리메, 그리고 그리움… 이리저리 서성거리며 꽤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다.
[노고단 고개에서 바라본 주능선 방향. 왼쪽의 육중한 봉우리가 반야봉이고, 중앙 멀리 아득히 보이는 봉우리가 천왕봉]
[노고단 고개에서 바라본 종석대와 서쪽의 산그리메. 중앙 저 멀리로 무등산이 눈에 들어온다]
남녘의 산줄기와 산자락, 골안개, 그리고 섬진강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은 고양되는 마음의 부피만큼 발길을 더디게 만든다. 돼지령과 임걸령 샘터에서는 발걸음 떼기가 쉽지않았다.
[돼지령에서 만난 남녘 산자락 풍경]
[임걸령 샘터에서 만난 남녘 산자락 풍경]
선두와 후미의 진행에 차이가 많아 후미는 반야봉을 비껴 삼도봉으로 바로 올랐다. 이제 오늘 산행에 있어 오름길은 끝이다. 삼도봉에서 남으로 펼쳐지는 아득한 산그리메, 멀리 병풍처럼 드리워진 남부능선. 오른쪽으로는 섬진강 너머의 백운산, 그 거침없는 산자락 사이사이로는 훌쩍 대낮이 된 시각이건만 아직도 아침의 풍경을 머금고 있다. 토끼봉 너머 천왕봉의 모습도 이제 많이 가까워졌다.
[삼도봉에서 바라본 남녘 산자락 풍경]
[삼도봉에서 바라본 천왕봉(중앙 뒤쪽) 촛대봉(오른쪽 뒤). 바로 앞의 봉우리는 토끼봉]
550계단을 내려 화개재에서 ‘171차 지리종주’에 들어가시는 이광전 선생님과 헤어지고 뱀사골로 내려서다. 뱀사골대피소에서 약 1시간 남짓 점심시간을 보내고(13:30 출발), 그 길고 긴(9,km) 뱀사골을 달리듯 내려와 2시간 30여분 만에 반선에 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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