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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탐방]

[하동]화개 칠불사 아자방과 영지

하동 칠불사 ‘아자방’과 ‘영지’

임용일 기자 / yiim@dominilbo.com
연동골

5월의 지리산 숨결 야생차 향기 스몄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은 언제 찾아도 늘 새로운 모습이다. 산은 물론이고 계곡 등 어느 하나 정답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더욱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가족과 혹은 연인, 친구들과 훌쩍 떠나보자.

마산에서 차를 몰아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하동읍을 지나 오늘의 목적지인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칠불사까지는 두어 시간 남짓하면 도착할 수 있다. 남해고속도로 하동 나들목을 지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알려진 섬진강 강변도로를 따라 20~30분 오르면 화개장터가 나온다.

여기서 목적지인 칠불사까지는 13㎞ 남짓 더가면 된다. 화개동천을 따라 오르다보면 한창 물이 오른 야생차 군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계곡 어디선가 그윽한 다향(茶香)이 풍겨오는 듯하다. 화개장터에서 8㎞ 가량 오르면 신흥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으로 차를 돌려 계곡을 따라 5㎞ 거리의 산길을 쉬엄쉬엄 가다보면 아자방으로 유명한 칠불사가 나온다. 옛날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10왕자 중 4남부터 막내인 10남까지 일곱 왕자가 외숙부 장유화상을 따라 속세를 떠나 현재의 칠불사 터에 운상원을 짓고 좌선한지 2년 후인 가락시조 62년 8월 보름밤에 각각 성불하였다고 하여 칠불사(七佛寺)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이곳에는 신라 효공왕 때 담공선사가 아(亞)자형의 온돌방을 축조하였는데 이를 아자방(亞字房)이라 부른다. 아자방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한 무익공계 건물로 1951년 소실되어 초가로 복원하였다가 최근에 중창했다.

스님들이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곳으로 한꺼번에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한 번 불을 넣으면 바닥은 물론 사면 벽까지 한달 내내 따뜻하다고 하여 지금도 불가사의한 일로 여겨진다.

칠불사 입구에는 영지(影池)라는 못이 있다. 원형의 영지에는 김수로왕 부부의 애틋한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수로왕 부부는 출가한 일곱 왕자를 만나기 위해 이곳까지 와서 왕자를 불렀다. 그러나 왕자들은 “이미 출가하여 수도하는 몸이라 결코 상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보고 싶다면 절 밑에 못이 하나 있는 데 보름달 밤 그 못을 보시면 저희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고 답했다.

왕자들의 말처럼 수로왕 부부는 보름달이 뜨는 밤에 그 연못에서 일곱 왕자들의 그림자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이후 이 연못을 영지라 부르게 되었다. 한 번 불을 넣으면 한 달간 따뜻하다는 아자방과 수로왕 부부의 눈물이 서려있는 칠불사를 뒤로하고 다시 오던 길로 내려가서 신흥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선유동 계곡과 고운 최치원 선생이 삼신동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신흥마을이 나온다.

지리산 전역 가운데 유독 신선과 이상향의 전설이 많이 전해져 오는 골짜기가 있다면 단연 화개동천 언저리로 선유동, 대성, 단천, 의신, 범왕계곡 등이 있다. 신흥마을에는 최치원에 얽힌 세이암(洗耳岩) 전설이 흥미롭다.

의신 쪽에서 흐르는 냇물을 따라 마을 건너편에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이 절벽엔 세이암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신라말 고운 최치원이 세속의 비속한 말을 들은 귀를 씻고 신선이 되어 지리산으로 입산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귀를 씻었다는 곳이 바로 세이암이며 최치원이 목욕을 하는데 게가 최치원의 발가락을 물었다.

최치원은 이를 고약하게 여겨 그 게를 잡아 멀리 던지며 다시는 여기서 다른 사람을 물지 말라고 했다 하는데 그 이후 이 근처엔 바위가 많아 게가 서식하는데 적지인데도 게가 없다고 한다.

신흥마을에서 의신까지는 4㎞ 남짓으로 차를 세워 잠시 계곡 아래로 내려가면 기암괴석이 울창한 원시림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이 가슴 속까지 시원하다. 아직 불어오는 바람이 다소 차지만 맑고 찬 계곡에 두 발을 담그면 세상의 시름이 달아난다.

단천계곡 입구를 지나 의신마을에 도착하면 더 이상 차로 갈 수 없다. 마을 끝에는 세석과 빗점골로 가는 등산로가 있다. 그러나 산을 오를 수 없다. 산불 예방 차원에서 오는 15일까지는 전면 입산통제돼 5월 16일부터 산행이 가능하다. 남한 빨치산의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의 아지트와 최후 격전지를 잇는 빨치산 루트가 시작되는 곳 또한 의신마을이다.

의신~빗점골~이현상 최후 격전지~이현상 아지트로 이어지는 빨치산 루트의 거리는 4.7㎞로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하다. 벽소령까지는 6시간에서 7시간 정도 걸린다. 산행을 위해서는 인근 민박집이나 산장에서 하룻밤 묵는 것이 좋을 듯 싶다.

가족과 함께 한 길이라면 지난 91년 2월 폐교된 왕성초교 의신 분교장이었다가 지금은 지리산 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곳에 한번쯤 들러보는 것도 좋다. 이곳에는 화전민 생활상과 빨치산 토벌 과정, 하동의 문화유적 및 관광명소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그러나 역사관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초라한 구석이 있어 아쉬웠다. 여행의 또 다른 재미인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에는 계절따라 다양한 먹거리가 있다. 이미 고로쇠 약수는 철이 지나 맛볼 수 없지만 지리산 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참나물과 취나물이 듬뿍 들어간 산채 비빔밥이 유명하다. 향긋한 산나물에 동동주 한 사발 마시면 신선이 따로 없다.

토종닭 백숙도 색다른 맛이다. 의신마을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 아직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단천계곡이 있다. 단천교를 지나 2㎞ 남짓 오르면 넓고 푸른 계곡과 함께 계단식 논밭이 나온다.

남향에 위치한 단천마을은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더욱 정겹고 포근한 산골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곡을 따라 돌아오는 길에 신흥삼거리를 지나 약 500m를 더 내려오면 도로 왼쪽에 정원이 아주 잘 꾸며져 있는 민박집이 나온다.

삼덕산장이라는 간판이 내 걸린 이 집은 안주인의 탁월한 안목에 정원은 물론 객실도 아주 깨끗하기로 유명하다. 이 집의 특별메뉴는 민물 매운탕으로 집 주인이 직접 계곡에서 고기를 잡아 끓여주는 데 그 맛이 일품이다.

산채 비빔밥도 나무랄 데 없다. 언제가도 좋은 곳이지만 등산을 생각한다면 오는 20일 이후가 좋을 듯하다. 이 때는 하동차 축제가 20일부터 23일까지 4일간 화개면 운수리 차 시배지와 진교면 백련리 찻사발 도요지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하동의 명물 지리산 야생차와 다양한 다기 세트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주말과 휴일 이곳이 아니더라도 지리산 계곡을 찾아 세상사에 찌든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쉬게 하자.
[경남도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