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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탐방]

[산청]덕천강

남명 조식 선생 자취 스민 산청 덕천강

임용일 기자 / yiim@dominilbo.com


지리산 닮은 선비의 글공부 소리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으리’

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과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웅석산 줄기 사이를 흐르는 산청 덕천강.

국립공원 지리산 동부의 관문인 덕천강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자취를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천왕봉에서 발원한 천왕샘과 산희샘 물줄기가 모여든 곳이다.

덕천강을 이야기 할 때 남명 조식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강 주변으로 남명의 학문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자들이 세운 덕천서원을 비롯해 산천재, 세심정 등 선생의 자취가 곳곳에 숨쉬고 있다. 덕천강 여행은 대진고속도로 서진주 분기점서 함양 방면 20여㎞ 지점에 있는 단성 나들목부터 시작된다.

나들목을 지나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문익점 면화 시배지가 들어온다. 바쁜 발걸음 탓에 인근에 있는 성철스님 생가와 겁외사를 찾았다. 현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이자 해인사 초대 방장과 조계종 제6대 종정을 지내신 성철스님의 유품과 발자취를 한 곳에 모은 곳이다.

지난 1993년 11월 세수 82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신 후 해인사 성철스님 문도회와 산청군이 1998년 성철대종사 열반 5주기를 맞이하여 단순한 생가복원 차원을 넘어서 성철스님 기념관을 세워 수행의 정신과 그 가르침을 기리고 겁외사를 건립하여 종교를 뛰어넘는 선 수행, 가르침, 포교의 공간을 조성하여 2001년 3월 30일 문을 열었다.

겁외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이라는 의미로서 늘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고자했던 성철대종사의 수행자적 의지가 담긴 곳이다. 그러나 생전에 검소하기로 유명하신 스님께서 극락세계에서 이곳 겁외사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날도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불도들이 성철스님의 발자취를 둘러보기 위해 겁외사를 찾았다.

차를 돌려 중산리로 이어지는 20번 국도를 따라 길을 오르면 남사 고가마을이 나온다. 덩치가 큰 기와집 40여 채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들어서 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나지막한 돌담이 어울리는 시골의 모습이 더욱 정겹다.

깊 왼편으로 펼쳐지는 덕천강의 푸른 물줄기를 따라 10여분 오르면 그 옛날 물산의 집산지이자 임금님 진상품인 곶감으로 유명한 덕산이 나온다. 덕산에는 남명 선생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북쪽 하늘 멀리 지리산 천왕봉의 모습이 드러나는 곳에 산천재(山天齋)가 덕천강을 굽어보고 있다.

산천재 앞 마당에는 남명 선생께서 예순 한 살 때 이곳으로 들어와 산천재를 짓고 시냇가 정자에 써 붙였다는 ‘남명선생시비’가 있다. 시비에는 ‘덕산 시냇가 정자 기둥에 쓴다(題德山溪亭柱)’천 섬 들어가는 큰 종을 보소서(請看千石鍾)/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 없다오(非大 無聲)/ 어떻게 해야만 두류산처럼(爭似頭流山)/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千嗚猶不嗚)라고 적혀 있다.

천재에서 덕산 중심가를 지나 중산리 방면으로 더 오르면 500년 된 은행나무와 함께 덕천서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경과 의를 평생 학문의 요체로 삼았던 남명선생의 사상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서원 맞은 편 강가에는 선생이 살아 있을 때부터 있었다는 세심정(洗心亭)이 운치를 더 한다.

여기서 곧장 14㎞를 더 달려가면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을 오르는 최단코스로 유명한 중산리가 나온다. 중산리에서 법계사를 거쳐 천왕봉까지는 족히 4~5시간을 잡아야 한다. 오르고 내려오는 것을 감안한다면 하룻밤 쉬어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덕산 삼거리에서 대원사 계곡을 찾아가는 길은 평탄하다. 내원사 계곡은 대원사 가는 길에 있다. 산청군 삼장면 소재지인 대포리에서 시작하는 내원사 계곡은 내원사 앞에서 내원골과 장당골로 나눠진다.

양쪽 골짜기에서 흘러온 계류가 대포리 어귀에서 대원사쪽 계류와 합쳐지면서 대포(大浦)란 이름 그대로 큰 물바다를 이룬다.

대포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노송 숲과 음양석이 반긴다. 지리산의 마지막 빨치산이 내원사 계곡에서 붙잡혔으며, 계곡에 위치한 암자가 10여개에 달하고, 구곡산에서 국사봉을 거쳐 써리봉, 중봉으로 해서 천왕봉에 이르는 산정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면서 계곡의 양 축인 내원골과 장당골의 길이만도 100여 리에 가깝다.

대포 마을에서 내원사에 이르는 2km는 계곡을 따라 오른다. 내원사 계곡의 압권은 내원사 주변이다. 내원사는 갈림길에서 내원골과 장당골 중 어느 쪽으로 가도 되지만 첫 맛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장당골쪽으로 곧장 앞으로 가는 길이 좋다. 들머리의 숲도 그렇지만 장당골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류 위를 걸치고 있는 반야교(般若橋) 주변의 경치가 어느 곳보다 빼어나다.

야교에 서면 한 여름에도 소름을 돋게 하는 계곡의 찬 기운을 느낄 수 있고, 기암괴석 사이로 미끄러지듯 유연한 계류를 볼 수 있다.

내원사는 지리산의 웅장함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그 자태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가람답게 당당해 보인다. 먼저 오랜 풍상 속에서도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 보물 1113호로 지정된 내원사 삼층석탑(內院寺 三層石塔)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2단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린 모습이다.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서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긴 것이 뚜렷하게 보이지만, 불에 타서 심하게 손상된 상태이다. 얇고 평평한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4단씩 두었으며, 수평을 이루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크게 치켜 올려져 있다. 지붕돌의 모습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작품임을 알 수 있으며, 당시의 석탑 양식을 살피는 데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덕천강은 영남우도를 대표하는 사상을 낳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남명의 가르침을 받은 많은 선비들은 분연히 일어나 의병을 모집해 싸웠다. 남명 문하에서 궐기한 의병장만도 홍의장군 곽재우를 비롯해 정인홍, 최영경 등 50여 명에 이르렀으니 퇴계(退溪) 이황(李滉)으로 대표되는 영남좌도의 사상과 비교가 된다.

덕천강은 지리산의 강이다. 지리산을 찾아든 사람들의 운명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강물은 오늘도 굽이굽이를 돌아 낮은 곳을 찾아 흐른다. 덕천강은 아픔의 강이자 사람의 강이다.


           [경남도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