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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탐방]

[함양]마천 추성동 벽송사

함양 마천 추성동 벽송사

임용일 기자 / yiim@dominilbo.com
벽송사

비극을 감내한 나무 … 나와 더불어 하늘로 솟자하네

지리산 북쪽 관문을 통틀어 부르는 마천(馬川)은 아무리 무더운 여름에도 소름이 오싹할 정도로 시원한 계곡과 강을 끼고 있는 곳이다. 행정구역상 함양군 마천면으로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과 인접해 있으며 산청군 생초면에서 임천강을 끼고 유림, 휴천면을 거친다.

임천강은 지리산 주릉 북쪽의 물줄기로 전북 남원에서 마천 가흥까지를 만수천, 가흥에서 용유담까지를 임천, 용유담에서 산청 생초까지는 엄천강 또는 휴천계곡으로 그 이름이 3개로 나눠진다. 이 물굽이는 경호강과 만나 진주 시민의 젖줄인 남강으로 이어진다.

마천에는 칠선계곡의 들머리인 추성동과 한신계곡의 초입부인 백무동, 용유담이 있다. 이밖에 벽소령 아래의 삼정리 마을과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있는 삼정리 계곡과 지리산 자연휴양림, 추성동에서 하봉으로 가는 길목인 광점동, 얼음터, 국골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들 가운데 추성동은 지리산 최대의 계곡인 칠선계곡과 국골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여름철이면 수많은 피서객들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마산과 창원에서 마천으로 가려면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남해 고속도로를 타고 서진주를 거쳐 대진 고속도로 산청 생초 나들목을 빠져 나와 경호교 사거리에서 60번 지방도로를 따라 화계까지 간다. 여기서 마천까지는 엄천강을 따라 거슬러 오르면 된다.

마천면소재지에서 추성동으로 가다보면 임천을 가로지르는 아치형 의탄교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면 의평동, 의중동 등이 있는 의탄마을이 나온다. 천왕봉이 바로 올려다 보이는 곳인데다 경관이 빼어나 일찍이 500년전 지리산 등정에 나섰던 점필재 김종직은 이곳을 무릉도원으로 표현했다. 추성동은 칠선계곡의 들머리로 장승으로 유명한 벽송사와 살아서 볼 수 있다는 극락의 절경 서암이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인 벽송사는 신라말에 창건된 후 조선 중종 경진년(1520년)에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하는 곳으로 조선 선맥(禪脈)을 빛낸 8분의 조사가 수도 정진한 도량으로서 한국선(禪)과 인연이 각별하다. 벽송사에 들어서면 법당인 보광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장선원과 간월루가 있으며, 전면에는 산문(山門)과 종루, 후면에는 산신각이 눈에 들어온다.

또 경내에는 보물 제474호인 벽송사 3층 석탑과 민속자료 제2호인 벽송사 목장승이 있다. 정려에 보관중인 벽송사 목장승은 그 풍부한 표정에서 민중미학의 본질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빼어난 장승 가운데 하나로 전남 순천 선암사 앞에 있었던 나무장승과 쌍벽을 이룰 만큼 조각솜씨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왼쪽 장승은 몸통 부분에 ‘금호장군’, 오른쪽 장승은 ‘호법대장군’이라는 이름이 음각돼 있다.

송사는 처참한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 당시 이 사찰은 인민군 야전병원으로 이용된 적이 있으며 절 뒤쪽으로는 무명바위~독바위뒤~선녀굴~송대마을로 이어지는 빨치산 루트가 있다.

이 절을 지은 벽송대사의 행적에 얽힌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약 450여년전 전북 부안의 부안 송씨 가문의 한 집안에서 송지암(宋芝岩)이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무과에 응시하여 전국에서 모여든 쟁쟁한 무사들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장원급제를 하여 장군의 칭호까지 받게 된 지암은 많은 번뇌 속에서 시름하다가 문득 자신의 나아갈 바를 결정짓기 위해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방장산 어디에선가 수도를 하고 있다는 법계 정심대사(法戒 正心大師)를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기로 하였다.

함양군 마천면에 소재하는 지리산에 들어가 수십일 동안 헤매던 지암은 지금의 추성리 광점동에서 대사를 만나게 되었다. 법계 정심대사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한 다음 지암은 지금까지 번뇌 속에서 방황하던 자신이 걸어 온 그 동안의 경위를 자세히 말씀드리고 승낙을 받아 대사의 문하에 들어가서 일을 했다.

이미 불문을 떠나 속세에서 부인과 같이 생활하고 있는 대사는 매일 지암을 머슴처럼 부리며 산에 가서 싸리나무를 채취해와서 광주리 만드는 것만 가르치고 다른 문제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 지암은 대사의 문하에서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마천면 의탄리 속칭 살바탕에 이르자 대사가 ‘지암아 너는 도를 받아라’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와서 깜짝 놀라 지암은 대사 곁으로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였다. 이후 대사로부터 도를 받은 지암은 물욕과 정욕이 사라지고 만물의 원리를 터득하게 되어 벽송대사로 칭호를 받게 되었다. 지암이 대사로부터 깨달음을 받은 지 3개월 후에 법계대사가 입적하자 벽송대사는 이곳에 절을 짓고 벽송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벽송사 주차장 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약 100m 정도 가면 서암이 나타난다. 벽송사의 암자인 서암의 절경은 오밀조밀한 기암괴석과 잘 꾸며진 정원 덕택에 신도들 사이에서 생전에 볼 수 있는 극락세계로 부른다. 특히 스님들의 수행장소인 바위굴은 바위와 바위사이를 철판으로 길을 만들어 연결한 곳으로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한 대낮임에도 하늘을 가리고 서 있는 울창한 원시림은 벽송사의 또 다른 매력중의 하나다. 어른 두 명이 팔을 뻗어도 닿지 않을 정도로 수령이 오래된 참나무에게서 100년도 못사는 인간의 나약함을 저절로 느끼게 한다. 벽송사를 내려와 왼쪽으로 접어들면 우리나라 3대 계곡중의 하나인 칠선계곡이 나온다. 국립공원 매표소를 못미쳐 난 다리 주변의 계곡물은 마치 명경지수(明鏡止水)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차고 맑았다.

성급한 마음에 계곡물에 발을 담갔으나 얼마가지 않아 한기가 전해져 왔다. 여름철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을 이 계곡에 혼자서 절경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다음 기회엔 제대로 된 등산 채비를 갖추어 칠선계곡을 따라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까지 오르겠다는 다짐을 하고 못내 아쉬운 발길을 옮겼다.

여행의 또 다른 재미는 뭐니 뭐니해도 먹거리다. 요즘 한창 제철인 지리산 산나물을 뜯어다 만든 산채 비빔밥과 토종닭 요리는 그야말로 일품이 아닐 수 없다. 좀 더 색다른 것을 먹고 싶다면 산청 생초 나들목 건너편에 위치한 생초 매운탕 거리도 좋을 듯 싶다. 쫄깃한 맛이 일품인 쏘가리 매운탕을 비롯해 메기, 은어, 피리튀김 등이 맛깔스럽다.


           [경남도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