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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탐방]

[산청]대원사 계곡

대자연의 경이로움 산청 대원사 계곡

임용일 기자 /
yiim@dominilbo.com


시름도 흘려 보낸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봉과 하봉을 거쳐 쑥밭재와 새재, 왕등재, 밤머리재로 해서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산자락 곳곳에서 발원한 계류가 암석을 다듬으며 흘러 내리는 산청 대원사 계곡. 맑고 시원한 계류는 사시사철 쉼 없이 흘러 깊은 산중의 정적을 깨운다. 민초들의 애환이 골짜기마다 숨어 있는 곳이기에 안타까움이 더한 곳이다. 매표소를 지나 비구니들의 참선도량으로 알려져 있는 대원사, 지금은 그 이름이 사라진 가랑잎초교, 꿀맛으로 유명한 유평사과, 하늘 아래 첫 동네 새재 마을까지 어느 한 곳도 버릴 것이 없는 대자연의 경이로움이 넘친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으면 세상만사 근심 걱정이 한순간 사라진다.

장마가 소강상태를 보인 틈을 타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을 찾아 길을 나섰다. 경남에는 지리산 자락뿐만 아니라 밀양, 양산 등 이름 난 계곡이 어디 한 두 곳이랴. 유홍준 박사가 자신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남한 최고의 탁족처(濯足處)로 꼽은 산청 대원사 계곡을 목적지로 정했다. 출발에 앞서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며 더위를 식히고 있을 모습을 상상해보니 흥겨운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남명 조식 선생의 숨결이 살아있는 덕천강을 따라 오르다 그 맛이 하도 일품이어서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곶감의 고장 덕산 삼거리를 거쳐 대원사 입구에 도달했다. 계곡 입구부터 맞이한 자연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맑은 물소리, 하늘을 가린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소리, 매미와 이름 모를 산새들의 소리가 한바탕 어우러진 대자연의 합창곡이 귓전을 울렸다.

계곡을 오를 요량으로 등산화에 배낭을 짊어지고 하늘 아래 첫 동네인 새재 마을까지 오르려던 당초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 대원사 계곡 매표소에서 새재 마을까지는 무려 7.2㎞, 포장이 잘된 도로이지만 걸어서 간다면 줄잡아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아 자연에게는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승용차로 오르기로 했다. 승용차로 오르는 길이지만 계곡의 풍경에 얼마 못 가서 차를 세워두고 계곡 바닥이 훤하게 보이는 물에 손과 발을 담그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30여 리에 걸쳐 흐르는 대원사 계곡의 맑은 물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봉과 하봉을 거쳐 쑥밭재와 새재, 왕등재, 밤머리재로 해서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산자락 곳곳에서 발원한 계류가 암석을 다듬으며 흘러내린다. 그 많은 샘에서 출발한 물길이 낮은 곳을 향해 사시사철 쉼 없이 흘러 깊은 산중의 정적을 깨운다. 이 때문에 유홍준 박사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너럭바위에 앉아 계류에 발을 담그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먼데 하늘을 쳐다보며 인생의 긴 여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이 보다 더한 행복이 있으랴’라고 말했다.

매표소를 지나 계곡과 산천을 바라보며 10분 정도 오르니 이곳이 대원사 계곡임을 알리는 ‘방장산 대원사(方丈山 大源寺)’현판이 적힌 일주문이 나왔다. 고풍스러운 맛은 없지만 그래도 절 경내에 들어왔음을 알리는 건축물이기에 차에서 내려 대원사까지 걸었다. 경남도 기념물 제114호로 지정된 대원사는 신라 진흥왕 9년인 548년에 연기(緣起) 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과 1948년 여·순 사건 때 화재로 폐허가 된 것을 1955년 법일(法一) 스님이 다시 세워 지금에 이르고 있는 사찰이다. 양산의 석남사와 충남 수덕사의 견성암과 더불어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參禪) 도량으로 알려진 대원사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이밖에 원통보전(圓通寶殿)에서 산왕각(山王閣)에 이르는 돌계단과 절 뒤편의 차밭,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힘찬 글씨가 돋보이는 요사채의 단아한 모습은 대원사만이 간직한 정갈한 멋이다. 절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용이 100년간 살았다는 전설의 용소(龍沼)가 있는데 바위가 뚫려서 굴처럼 된 것으로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대원사 계곡의 깊은 맛은 우리 민족의 현대사와 지리산을 바라보는 민초들의 심성에 숨어있다.

흔히들 ‘죽었다’는 뜻으로 쓰는‘골(계곡)로 갔다’라는 말의 유래가 이곳 대원사 계곡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 민족의 슬픈 현대사의 한 단면인 빨치산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 토벌을 하기 위해 골짜기에 들어갔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빨치산이 되었건 골짜기에 들어가기만 하면 살아서는 못나왔기에 ‘죽는다’는 말이 ‘골짜기로 갔다’의 줄임말인‘골로 갔다’로 쓰고 있다.

골짜기가 깊다 보니 변환기 때마다 중요 피난처이자 역사의 현장이 되기도 한 대원사 계곡은 1862년 2월 산청군 단성면에서 시작해 진주로 이어지면서 전국적인 규모로 발전한 농민항쟁에서부터 동학혁명에 이르기까지 변혁에 실패한 사람들끼리 모여 그들만의 세상을 꿈꾸며 화전을 일구며 살았던 곳이다. 또 일제시대에는 항일의병의 은신처가 되었고, 6·25전란에 이어 빨치산이 기승을 부릴 때는 낮에는 반역의 땅이 되고, 밤에는 해방구가 된 비극의 현장이기도 했다.

대원사를 나와 조금 오르면 가랑잎 초교로 유명한 옛 유평초교가 지금은 청소년 수련원으로 이름을 바꿔 그 자리에 있다. 길가에는 토종닭과 산채밥 등을 파는 민박집 20여 곳이 산행에 지친 등산객의 안식처가 된다. 이곳에서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까지는 10.7㎞로 대략 7~8시간을 잡아야 오를 수 있다. 계곡의 끝인 새재 마을까지는 삼거리 마을과 중땅 마을을 거쳐 외길로 오른다.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간판이 유독 눈에 띄는 새재 마을에서 천왕봉까지는 8.4㎞로 준비 안된 산행은 절대 금물이다. 대원사를 거쳐 한달음에 계곡의 끝까지 오른 편리함이 좋았으나 한 발씩 내디디며 계곡의 정취를 고스란히 담아오지 못한 서운함도 적지 않았다. 오르는 길 양편에는 옛 화전에 심은 유평 꿀사과가 올 가을 수확을 앞두고 토실 토실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대원사 계곡 전역이 국립공원지역으로 허가되지 않은 곳에서 취사를 하거나 야영을 하게 되면 벌금이 부과된다. 성수기는 어렵겠지만 지금쯤은 쉽게 민박집을 잡을 수 있다. 주민들이 직접 키우는 토종닭 백숙과 산채비빔밥의 맛은 대자연과 어울려 그 맛이 장난이 아니다. 휴가철을 대비해 미리 민박집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아내 예약해두면 결코 후회하지 않는 휴가가 될 것으로 보인다.(문의는 산청군청 관광행정과 055-970-6421~3)

대원사 계곡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고 교통편도 비교적 좋다. (진주~대전 고속도로 이용) 단성IC→시천(국도 20번)→삼장면 명상(국도 59번)→대원사 계곡이나 산청IC→금서면 매촌(국도 59번)→밤머리재→삼장면 명상→대원사 계곡. (국도 3호선) 원지→시천(국도 20번)→삼장면 명상(국도 59번)→대원사 계곡, 산청읍→금서면 매촌(국도 59번)→밤머리재→삼장면 명상→대원사 계곡.


          
           [경남도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