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쟁이는 산으로 말하여야 한다.’
어쩌면 이 당연하고도 분명한 명제를 표출하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 길’이라는 이름의 이 서툰 공간을 어렵사리 장만하였고, 이따금씩 게으름을 피우기는 하였지만 이 곳을 들여다보고 공간을 채워나가는 것이 그나마 내 일상(물론 마음으로만)에서 가장 부지런 떠는 일과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산에 드는 일’이 기록으로 남아 이 공간이 나 자신의 작은 역사로 남기를 소망해 보기도 한다.
오래 전 어느날, 다시 찾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북받치는 감정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맹세했던, 이른바 ‘첫사랑과의 재회’에서 다짐했던 그 때의 내 마음을 들추어 내며 나는 나의 친구들에게 여전한 그 니와의 사랑을 새삼스럽게 천명하는 바이다.
이 시대의 사회인으로 살아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능력이 있던 없던, 부지런하던 게으르던, 잘 살던 못 살던 우리는 누구나 타인에게 말할 수 없는 스스로의 삶을 묵묵히 지고 가야만 한다. 세월의 눈금자를 높이며 맞이하는 사이, 열정, 비겁함, 효율, 진실, 배려 혹은 그 밖의 다른 수많은 세상(세월)의 키워드들에 길들여지며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렇게 지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하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찾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간과 공간이란 ‘산과 산에 듦’을 말하며, 더 큰 의미로는 자연과 가까이함을 말한다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내가 자연을 노래하거나 환경을 부르짖어 온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함은 나를 더욱 정화되며, 또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말하자면 자연에 다가가는 진화를 시켜왔음은 분명하다 할 수 있겠다.
요즈음 나의 이런 행복한 삶에 작은 물결이 여럿 일렁이며, 수경으로 바라보이는 수면의 물결처럼 흐렸다 맑았다 반복되는 일상이 가로 놓였다. 세상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음이 분명하건만 작은 물길에도 흔들거리는 나의 생각은 다소 감상적이 되어 가끔씩은 온 생활을 휘어 잡기도 한다. 불현듯, 여과 없이 비극으로 단정 지으며 받아들이던 30년 전의 윌리 로만(세일즈맨의 죽음)의 죽음이 안타까운 연민에서 이제 ‘공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거나(혹시 이 부분에서 친구들의 오해가 있을까 걱정되는데, 부디 편안하게 받아주시길), 가끔씩은 ‘무’보다도 더한 ‘허무’에 생각을 침잠 시키며 끝없는 게으름의 나락으로 자신을 던져보게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늘 그랬듯이 세상은 살아갈 만한 곳이라는 것과, 주위의 사람들을 떠나 세상을
살아갈 만한 요령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즉 나에게 편안한 삶은 애초부
터 틀려먹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에는 ‘상실감’이라는 괴물이 늘 앞선다. 하지만 ‘성취감’이라는 것이
더 큰 상실감의 어머니라는 생각을 알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그나마 그를 깨우칠 수 있음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약 1달여 이상 환경의 변화를 가지고, 또 새로운 ‘앎에 대한 시도’도 해보고 여러 가지 일로 쫓기듯 지나다 보니 산에 들지 못했다. 아니 산에 들긴 하였지만 느낌이 다른, 뭔가 새로운 만남으로 휙 지나가는 생각들을 잡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 공간에 먼지가 제법 두텁게 쌓였다. 산쟁이는 산으로 말해야 하는데, 눈으로 보이던 산을 말할 수 없음은 얼마나 답답하고 우울한 일이런가.
나는 이런 사이버 공간의 좋고 나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나보다 더 산자락과 자연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고, 그들의 글을 찬찬히 들여다봄이 가슴 두근거리는 행복을 준다는 사실, 그리고 결국 나를 이렇게 근 두 달간의 침묵에서 깨어나도록 하는 능력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일어나야겠다. 먼지 쌓인 집에 매일 들러 좋은 마음을 보내준 친구님들에게 감사드린다.
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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