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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 情 無 限

[통신]'형, 난 틀렸어...."

정아님의 블로그에서 산악인 박정헌씨의 강연 소식을 접하고 2005년 2월에 게재된

조선일보의 기사를 다시 옮깁니다.

 

큰 감동을 받았고, 오래 전 만들었던 중앙일보 블로그와 'joins.com/choys56'과

저희 지리산 동호회 카페에 올려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던 내용입니다.

 

보관중이던 내용을 다시 한번 올립니다. 다시 한번 박정헌님의 건투를 빌며,

모쪼록 우리나라 산악활동의 최전방에서 맡은 바 소중한 역할을 다하며 영원한

산사람으로 남게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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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촐라체봉' 산사나이들의 생환기

[조선일보 신지은 기자]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 남미 안데스산맥 시울라 그란데 서벽(西壁)에서 다리가 부러진 친구를 돌보다 끝내 자일을 자르는 내용의 이 실화소설은 세계 산악인들에게 ‘고전(古典) 중의 고전’으로 통한다.

두 사람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의 ‘최후의 선택’, 너무나 가슴아픈 결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살기 위해 후배 산악인과 연결된 자일을 끊지않고 사지(死地) 크레바스에서 구해낸 국내 내로라하는 거벽(巨壁) 등반가 박정헌(34)씨. 하지만 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과의 사투(死鬪)는 이제부터였다.

지옥같은 크레바스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영하 15도를 넘는 살을 찢는 살인적인 추위에 1시간 동안 구조의 사투가 끝났을 때는 두 사람 모두 한 발을 떼기조차 힘들었다. 천근 만근의 무게에 호흡조차 곤란한 상황이었다.

후배의 두 발목은 퉁퉁 부어 올랐고, 선배는 숨을 몰아쉴 때마다 왼쪽 가슴을 칼로 ??는 고통을 느꼈다.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5시간 거리의 베이스캠프를 앞두고 두 사람은 자신들이 등정했던 눈덮인 촐라체봉을 쳐다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가자. 살아서 돌아가자” 선배가 후배를 부축했다. 하지만 내 한몸 가두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금세 한계상황에 도달했다. 선배의 팔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배는 엉덩이로 기어갔다. 양 손으로 바위를 짚은 채 엉덩이를 옮겨 조금씩 조금씩 밑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이날 밤, 두 사람은 강추위 속에서 비박(텐트 없이 밤을 지새는 것)을 해야 했다.

“미안해, 혀~엉.” 후배 최씨는 선배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괘얀타, 그럴 수도 있다.” 선배도 하늘만 바라봤다. 후배는 크레바스에 빠진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선배 또한 잠시나마 줄을 끊고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든 자신이 괴로웠다. 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두려움뿐이었다. ‘과연 살아서 이 산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1월17일 아침. 선배 박씨는 크레바스 사고 때 안경을 잃어버려 온통 시야가 흐렸다. 시력이 마이너스 0.3. 안경 없이는 지척을 분간하기조차 힘들었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던 중 70~80도의 급경사가 나타났다. 눈벽에 피켈(얼음 송곳)을 찍으며 내려왔다. 한발, 한발…. 마지막 발을 내딛는 순간 얕게 박힌 피켈 하나가 튕겨져 박씨의 이마를 깊게 긁고 지나갔다. 터져나온 붉은 피가 흰 눈위에 잉크처럼 뿌려졌다. 5㎝ 길이의 상처였다. 마음은 한없이 약해지면서도 ‘포기하지 말자’ ‘포기하면 죽는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두 사람은 배낭을 버렸다. 몸뚱아리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의식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입이 타올랐다. 사흘째 물을 마시지 못했다. 등정하기 전날부터 영하의 날씨로 물통이 꽝꽝 얼어버린 탓이었다. 박씨는 얼음을 피켈로 찍어서 마구 삼켰고 후배도 같이 얼음 빙수를 만들어 마셨다. 두 사람의 입안은 거친 얼음 조각에 다 헐어버렸다. 잇몸에서 피가 나왔다.

17일 밤. 두 사람은 밤새 고통으로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박씨는 “비명을 들으며 서로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이튿날, 아침. 후배 최씨가 꼼짝하지 못했다. 발에 피가 공급되지 않아 물먹은 솜처럼 부풀어올랐다. “형님! 먼저 가십시오. 저는 힘듭니다.” 가장 가까운 인가(人家)가 수백m 밖이었다. 만감(萬感)이 교차했다.


망설이던 박씨는 “내가 마을 사람을 불러 곧 너를 데리러 오겠다”며 등을 돌렸다. 몇 발자국 못가 눈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박씨의 걸음이 빨라졌다. 3시간쯤 걸었을 때 오두막 두 채가 나타났다. 벌써 눈은 발목 깊이로 쌓여 있었다. 달려가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다. 호주머니 속 피켈 망치로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마른 장작만 천장까지 쌓여 있을 뿐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나….’ 지금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 밤이 지나면 후배, 강식이의 삶의 희망은 사라진다. ‘그 녀석 부모를 무슨 낯으로 보나.’ 크레바스에서의 갈등이 다시 밀려왔다. 그러나 박씨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허물어지는 몸을 이겨낼 수 없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의식이 희미해졌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삐-그덕.’ 문 열리는 소리에 박씨는 벌떡 일어났다. 시커먼 그림자가 성큼 들어왔다. 후배였다. “강식아!” 후배 최씨가 눈 위에 찍힌 선배의 발자국을 따라 필사적으로 오두막까지 들어온 것이다.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다. 선배가 “잘 왔다. 이 자식아. 진짜 잘왔다. 걱정돼서 죽을 뻔했다”고 소리쳤다. 후배는 “눈이 쏟아지는데, 그대로 있으면 죽을 것 같아 따라왔다”며 웃어 보였다. 그뿐이었다.

이날 두사람은 4일 만에 오두막에 남아 있는 꿀과 말라 비틀어진 초콜릿 조각을 녹여 배를 채웠다. 쌓인 장작으로 불도 쬐었다. 2시간 간격으로 잠을 깨, 불이 꺼지지 않도록 했다.

이들이 마을 사람을 만난 것은 19일 오전. 베이스캠프로 ‘헬기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틀 뒤(21일) 머리 위로 헬기가 날아왔다. ‘이제 살았구나!’ 하지만 손과 발은 온통 동상(凍傷)에 걸려 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신지은기자 [ ifyouar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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