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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두류실/두류실 일기

[비망록]갑신년 새해를 맞이하며.

한줄기 바람이 광풍으로 변하여 나의 주위를 쓸고 지나가버리는 사이, 저 해의 나의 여름과 가을,
겨울은 미쳐 작별의 손짓을 할 사이도 없이 나로부터멀어져 가버렸다.

선릉숲을 스쳐 지나가며 느끼던 푸름과 갈색, 그리고 첫눈의 흰색도 그저 망막위에 투영되는 하나의
상일뿐 나는 마른 회색빌딩숲의 회색인처럼 나의 마음은 그리도 메말라 있었던가보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가슴을 헤집고 들어와 뇌리에 오랫동안 잔영으로 남아있는 것은 선릉을 둘러싸고 있는
철담을 딛고 올라서서 마른 잎을 떨구어내는 덩쿨나무와 빌딩사이 포도위를 구르는 백양나무
그 큰 이파리들의 처연한 모습들 뿐이다.

이렇듯 주위를 에워싸고있는 무기력감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그저 게으름
만으로 머리를 텅 비운 채 시간을 잡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에 맞추어 살아가는 스스로에
비웃음를 보내는 자신에게 실망스러울 뿐이다.

그리 스스로의 마음에 휘둘려 지나는 사이,

새해라고 또 한 날이, 한 해의 새로운 시작이 왔다고 한다. 갑신년이라는...

새해의 이튿날인 오늘 아침, 문득 예전에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되내이며 나를 채근하던 말이 울림
처럼 내게 다가왔다.

"나 자신이 정말 소중한 존재다. 나를 사랑하자. 그리고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자.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없으면 베푸는 사랑도 진실하지 못할 것이다 "

갑자기 나의 마음이 바빠진다. 해야 할 일에 손놓고, 챙겨야 할 일에 외면하였던 많은 일들이 떠
오른다. 그 중에 가장 마음의 빚을 지고있던 이 숲향이라는 자그마한 공간이 생각났다.

내가 부끄러워함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더 절실하고 애착을
느끼게 된다. 어떠한 가식도 없이 산자락에서의 느낀 이야기와 숲향을 이 공간에 풀어 보아야겠다.

이번 주말은 지산의 정기행사, 시산제가 지리산 삼신봉에서 있다. 그 때 다녀와서 새해 첫 지리의
숲향을 전해 볼 일이다. 잠시 잊어버리고 있던 입산의 설레임이 다시 가슴에 요동친다.

소중한 숲향가족들에게 지난 시간들의 게으름에 대한 사과의 말씀을 보내고 앞으로 부지런히 공간을 꾸려갈 것을 약속드린다.

갑신년 새해!

숲향가족 모두의 건강과 가정에 행운이 깃들기를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