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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두류실/두류실 일기

[비망록]4월, 꽃비를 맞으며...

 



[지리산산길따라 지연님 사진. 아마 이 꽃들도 이제 몸을 다 떨구고 없겠지..]

 

 

4월, 꽃비를 맞으며..

 

서울, 나의 숙소에서 직장까지는 약 15분 여 거리에 있다. 그 중 약 10분 정도는 선릉을 에두르고 있는 담장길을 걸어야 한다. 선릉은 조선시대 연산조를 전후한 성종,중종, 그리고 정현왕후가 모셔져 있는 능이다.

 

선릉 외곽으로는 화사한 연두색 철망이, 담 안쪽으로는 쥐똥나무와 개나리가  드리워져 있고, 능을 중심으로 구릉지대에는 벚나무, 소나무, 은행나무, 잣나무 등의 키 큰 나무도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요즈음 아침 저녁으로 이 담장길을 걷는 일은 내가 서울생활에서 실로 처음으로 느끼는 즐거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오늘 아침 모처럼 이른 시각 숙소를 나와, 느긋한 걸음으로 숲을 쳐다보며 걸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개화한 벚꽃 이파리들이 낙화하여 예전 유행하던 꽃망울 무늬처럼 녹색 보도위에 점점이 깔려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자 길 맞은 편 빌딩 앞, 그 화사하던 흰색 이파리가 낙화해 브라운톤의 칙칙한 색으로 변해가는 목련 이파리를 쓸어담는 모습도 보이더니 이내 선릉숲이 내게 들어왔다. 마치 무심코 마주친 길 위의 벚꽃 이파리가 빗장을 푼 듯

 

급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만큼이나 요즈음은 개나리도 많이 급해졌다. 꽃이 핀 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파리들은 답답했는지 머리를 내밀어, 이제는 노랑과 녹색이 어금버금하다.

 

지난 해 맺었던 까만 열매를 아직도 매달고 있는 쥐똥나무는 그 윤기나는 진초록의 푸름이 자랑스럽듯 신이 났다.

 

만개한 꽃이 지기 시작하자 틈을 놓치지 않고 돋아나는 이파리들  

 

꽃이 피고, 지고, 잎이 돋고,

잎이 돋고, 지고, 꽃이 피고,

꽃과 잎이 더불어 피고지고,

 

그 의연하고도 반듯한 흐름과 질서, 그리고 지혜로움, 이파리가 포개져 수많은 생명들의 이불이 되어 숲을 건강하게 하던 신갈나무에서 느끼던 지혜로움과 감동이 새롭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시인은 외쳤다. 아마도 황무지에서는 그 치열한 삶의 전장에서 그리 느꼈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오늘 그 대 문호의 표현이 다소 거슬려 비록 무거운 나의 음색

으로라도 큰소리쳐 불러 보련다.

 

4월, 그 거침없는 자유로움의 시간들이여…’

흐르러지게 피어있는 꽃의 아름다움보다 보도위에 널려있는 꽃비의 주검에

서 오히려 건강함과 더 역동적인 자유로움을 느끼는 오늘 아침이다.

 

물론 나무와 꽃은 나의 이런 생각도 개의치 않겠지만..

 

4월의 숲향을 그리며/두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