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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두류실/두류실 일기

[스크랩]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선암사> 정 호 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에 통곡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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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무상수리 기간이 다되어가자 오래 전부터
손보려 했던 곳들이 있어 마음이 바빠진다.

짬을 내어 일과 중에 A/S센터로 갔다. 그러고는 굳은 표정으로,
(아니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마치 화난 듯한 표정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정비 직원에게 차를 넘기니 휴게소에서 기다리란다.

표정없는 얼굴들,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일하는 요즈음
세상,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 괜시리 짜증이 나고 얼굴이
찡그려 진다.

하지만 나는 성질도 죽이고 시간도 죽이며 그 시간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슬그머니 대기실 서가에 꽃힌 책들에게로 눈길이
닿았다.

그런데, 그 많은 책들속에서 자기를 집어가라고 채근하는 듯한
손때묻은 얇은 책 한권이 있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햐... 참, 저 감성을 자극하는 빛나는 말...

시인의 명성이야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게으름으로 늘 지나치곤
했었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나의 '시간죽이기'에 시인이 동참하게
된 것이다.

결국 역마살이 온몸에 난마같이 휘감고 있는 나는,
눈물이 나지않았지만 선암사행 기차를 타고 말았다. ...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내 차의 정비를 담당한 사람이 나를 찾아왔을
즈음 나는, 지리산 불일폭포의 청학을 만나고, 섬진강가를 달려 여수역,
선암사를 들러 포근한 봄바람과 맑은 기운에 흠뻑 취해 오히려 눈물이
나려했다.

차 수리를 마치고 설명을 하는 그 이가 어찌 그리 친절하게 보이던지...

아... 그래서 가끔씩은 세상이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가보다.

손 때 묻은 책과의 만남, 시인과의 만남이 이렇게 '세상이 살만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정녕 시인이 위대하다는 말일 것이다.





출처 : 지리산 산길따라
글쓴이 : 두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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