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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 情 無 限

인연따라 다녀온 선운사 소풍

 

             [선운사 극락교 아래 계곡 풍경]

 

인연 따라 다녀온 소풍,

선운사 삼장지장보살을 만나다.

 

이른 장마 끝, 오락가락하던 날씨도 좋은 어느 날 아침, 고창 선운사로 향했다.

우리 땅 동남쪽 끄트머리, 동해바다가 있는 부산 기장군에서, 전라북도 서남단의 서해바다 쪽, 고창군으로 이어지는 인연의 끈을 따라가는 길이다.

이 길을 나서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약 열흘 전, 맑은 목소리를 지닌 어느 여성분의 전화를 받은 일 때문이다. 그 여성분은 다름 아닌 선운사 지장보궁에서 보임을 맡고 계시는 법초스님이시다.

 

혹시 부산 해운대 살고 계시던 보살님댁, 남원의 처사님 맞으신지요?”

 

사연인즉 얼마 전까지 부산 기장군 일광면 대덕사에 계시던 법초스님은 투병생활을 하고 계셨는데, 언젠가 내가 만든 쥐눈이콩발효선식을 아내가 드셔보라고 스님께 드린 모양이다. 다 드셨다고 더 보내달라는 기별인 것이다. 대금은 벌써 통장에 입금시켜 놓았다고.

 

남원으로 온 후 스님의 소식을 궁금해 하고 있었다는 아내는, 스님께서 전화를 주셨다니 너무도 반갑다며 들뜬 모습을 보이더니, 벌써 소식을 주고받은 모양이다. 부산에서 남원까지 220km, 남원에서 선운사까지 110km,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뵐 수 있게 된 것도 인연으로 이어지는 길이 아니겠느냐며, 나는 소풍삼아 스님 뵈러 가자는 의견을 내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내는 스님께 드릴 선물부터 챙긴다. 불심이 남다른 어머니도 이 갑작스런 소풍에 동참하셨음은 물론이다.

 

 

              [선운사 대웅보전]

 

조계종 24교구본사인 선운사는 절집의 역사나 규모로도 잘 알려진 곳이고, 동백나무숲과 꽃무릇, 풍천장어 등의 키워드로, 미당 서정주의 시와, 내가 좋아하는 송창식의 노래로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곳이 아니던가. 나로서는 25년만의 만남이다.

 

 

              [선운사 극락교]

 

계곡을 가로지르는 극락교를 건너 천왕문을 들어서면 만세루가 절 마당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다. ‘지장보궁은 오른쪽에 있다는 새로운 이정표가 서있다. 우리 가족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는 대웅보전을 시작으로 영산전, 명부전, 관음전, 팔상전의 전각을 차례로 들른 뒤, 절집 마당으로 내려서서 지장보궁으로 향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만세전 안에 놓여 있는 탁자에 앉아, 자유롭게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여느 절집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중생을 배려하는 마음이 세월의 흔적만큼 두텁게 서려있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 만세루의 자유로움과 절 마당 연등의 적요함이 어우러지는 풍경에서 절집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평화로움을 느끼다.

 

 

              [선운사 경내 만세루와 연등이 어우러지는 풍경]

 

드디어 선운사 지장보궁에서 법초스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투병생활을 한 분 같지 않게 맑고 건강하고, 쾌활한 모습이다. 오랜만에 재회한 아내, 그리고 어머니와 나의 손을 번갈아 잡으며 무척이나 반기신다.

 

 

               [선운사 지장보궁. 옛 성보박물관 건물로, 영험한 이야기가 전해오는 '금동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지장보살 예불을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스님은 어머니께 지장보살본원경을 선물로 드리고는 내게 이야기 한다.

 

선운사에는 삼장지장보살 모신 곳, 이 선운사 지장보궁과 도솔암 내원궁, 참당암 지장전이 있으니, 어머니 모시고 꼭 도솔암과 참당암에 들러 지장보살님 만나고 가십시오. 도솔암 내원궁 108계단을 오르려면 어머니께서 조금 힘드시긴 하겠지만, 꼭 함께 다녀가십시오

 

조계종 24교구본사인 선운사는 본사 지장보궁의 금동지장보살(보물279), 산내암자인 도솔암 내원궁의 지장보살좌상(보물280), 참당암 지장전의 지장보살좌상(전북유형문화재33), 이렇게 삼장(三藏 : 지지持地, 천장天藏, 인장人藏)의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도량으로, 한국불교의 대표적 지장성지로 일컬어진다.

선운사 지장보궁에는 고려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금동(지지持地)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얼마 전까지 도난되거나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성보박물관에 봉안해오다,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지장보궁불사를 추진해서 20137월 완공하였다. 성보박물관 건물 오른쪽 측면에는 지장보궁현판이 걸려 있다.

 

지장보궁 금동지장보살좌상은 1936년 일본인 도굴범들에 의해 일본으로 밀반출 되었으나, 지장보살상을 소장한 사람들마다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지막 소장자가 지장보살 현몽의 꿈을 꾸고는 고창경찰서에 연락해, 1938년 선운사 스님들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해 다시 선운사로 이운해 왔다는 영험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후 금동지장보살상은 도난과 훼손을 우려해 선운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모셔져 있었다.

 

스님에게 작별인사를 드리고는 참당암-도솔암으로 이어지는 지장보살 참배 길에 나섰다.

 

 

              [참당암 경내, 오른쪽 건물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전이다]

 

             [참당암 지장전]

 

대참사라는 옛이름을 지닌 참당암은 지금은 선운사의 산내 암자로 사격(寺格)이 위축되었으나, 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로 규모도 꽤 크다. 경내를 가로질러 대웅전의 오른쪽 뒤. 가파른 언덕에 서있는 지장전에서 인장지장보살을 만나다.

 

도솔암의 절집배치는 3단계로 이루어져있다. 가장 아래 극락보전이 있는 도솔암에서 올라서면 마애불상이 있는 공간이 나오고, 이곳에서 160여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이 있다. 어머니는 3번의 휴식을 취한 끝에 결국 내원궁에 오르셨다. 낭랑한 비구니스님의 독경소리와, 신심을 다해 기도하는 불자들의 모습, 내원궁 주변의 빼어난 풍경을 둘러보다 문득 도솔천 내원이라는 이름과 공간의 의미를 생각하다. 내원궁 천장지장보살 앞에 한참을 엎드리다.

 

 

                                                          [도솔암 내원궁 108계단]

 

 

              [도솔암 '도솔천내원궁']

내원궁을 에워싸고 있는 선운산 산자락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산신각을 들렀다 오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밝다. 많이 힘드셨겠지만, 스스로도 대견해하시는 모습에 나의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게 오른 어머니는 지장보살님께 무엇을 간절하게 비셨을까?’

 

 

 

내원궁 내려오는 길에 절벽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불상을 만났다. 부처님 입멸 후, 567천만년 후에 오신다는 미래불 미륵부처님이시다. 미륵불이 오시기 전까지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성불도 포기하겠다는 원을 세운 분이 지장보살 아니던가? 그런데 미륵보살의 거처 도솔천 내원궁을 주재하고 있는 이곳 지장보살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미타부처를 모신 도솔암 극락보전을 만나면서부터 떠오르던 생각들이 어지럽다.

 

 

 

불국토, 그 깊은 시공간의 의미를 내가 어찌 알 수 있으며, 말 할 수 있으랴.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모습의 나한전을 만나며 어지러운 생각을 접다.

 

인연 따라 길을 나서, 선운사 삼장지장보살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행복한 소풍이었다.

끈을 던져주신 법초스님께 두 손 모아 감사드린다.

 

2015. 7. 4

두류 조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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