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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 情 無 限

장 여사, 마을 모정(茅亭) 출정기

 

 

장 여사, 마을 모정(茅亭) 출정기

 

그저께, 남원에서의 새로운 생활 3개월째에 접어든 장분순 여사는 꽤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낸 듯하다. 우리 대지마을 어르신들의 쉼터인 마을 모정(蓮花亭)에서 펼쳐지는 파워풀 모친들의 화투판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이다.

 

그냥 자리에 합류하기 겸연쩍어 요구르트 40개까지 준비하셨다 하니, 모정 출정은 꽤 오래전부터 계획하신 듯하다. 미루어 보건데, 수령 400여년의 느티나무가 에워싸고 있는 명당마을 모정에서, 여럿이 모여 담소도 나누고 화투놀이에도 동참할 수 있어야 당당히 마을사람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계셨던 모양이다. 문득 어머니의 별칭이 궁금해진다. ‘부산댁’?, ‘청국장댁’?

 

언제나처럼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그날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시는데, 나는 이야기의 제목을 이렇게 붙여보았다.

 

파워풀 모친들과 함께한 장 여사의 모정 체험!’

 

야야, 나 오늘 돈 조금 잃었다.(모아 둔 10원짜리 동전을 나누어서 하는 게임이지만)

부산에서 100원짜리 고스톱을 쳐도 잘 안 잃는데, 오랜만에 맨화토(민화투)를 치니 칠 때마 다 꼴찌만 했다. 홍단, 청단, 초단 할 생각은 안하고, 남들이 잘 안먹는 똥쌍피하고 국진(9, 국화 열을 말한다)이 눈에 들어와 나도 모르게 그걸 보이는 족족 먹어대니, 이길 수가 없제.

그런 내가 한심해 보였는지, 어느 할매가 우리마을에 고스톱파가 딱 3명 있는데, 내 소개시 켜준다더라. 그래도 맨화투로 계속 쳐야겠제?“

 

이렇게 해서 장여사의 첫 마을모정체험은 이루어졌고, 화투판 출정 성적은 신통찮은 결과로 결판이 났다. 하지만 이 첫 출정 결과를 가지고 쉽게 물러날 장 여사는 아니다. 이제 자연스럽게 모정으로 향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를 살갑게 맞이하며 진지하게 게임에 임해준 우리 마을 파워풀모친들께 감사드린다.

 

 

 

오늘 아침, 노인회장댁 모친께서 집 앞을 지나시다가, 풀을 뽑고 있는 어머니께 말을 거신다. ‘오신 이후로 이곳이 확 바뀌었다고’. 몇 해 동안 온갖 풀들의 아지트로 방치해두었던 텃밭을 두고, 한심한 놈들이라며 두 형제에게 얼마나 많은 욕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뜨끔해진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고춧대 밑의 잎을 좀 더 쳤으면 좋았겠다라는 영농지도의 말씀까지 해주고 가신다.

 

매일 아침, 화단과 텃밭의 풀뽑기 작업을 시작으로, 금요일 오후는 남원시내 요천변의 노암동에서 운영하는 노래교실 참석, 토요일 오후는 남원 관광단지 국악공연 관람, 5일마다 돌아오는 매 4, 9일은 남원 5일장 투어, 선생님의 지도 아래 실시되는 건강장수마을인 대지마을의 건강체조 참석 등, 어느새 어머니의 일주일 스케쥴은 대부분 채워져 있다. 당연히 시내를 나가고 들어오실 때는 대부분 버스를 타고 다니신다. 스스로 시골생활에 적응해나가는 어머니에게서 홀로 4남매를 장성시킨 파워를 새삼스레 느낀다. 평화로우면서도 에너지 넘친 어머니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수 있음이 고맙다.

 

요즘 하루하루를 보내며, 나는 새롭게 생각한다.

육순에 접어드는 내가 팔순의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나는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사는 자식일 뿐이라고.

 

그저께 마을청년회에 참석해서 소주를 조금 마시고 들어와, 아쉬움에 다시 잔을 들었다가 속사포를 맞았다. 오늘 낮에는 착한 일을 많이 했음에도 아직 냉장고 속의 소주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

 

, 나의 봄날은 갔는가!

 

2015. 6. 28

조용섭

 

#행복한하루 #지리산두류실 #텃밭가꾸기 #대지마을 #귀농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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