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술을 버리지 못하는 뜻
[한국고전번역원]/2010. 1. 25. (월)
사람들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있다. 좋아하면 빠지게 되고 빠지게 되면 마음의 짐이 된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이 없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맛이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18세기의 문인 남유용(南有容)은 책과 술 두 가지만 좋아하여 다른 기호로 인하여 마음의 평화를 잃는 것을 막고자 하였다.
사물 중에서 사람들이 좋아하여 빠지게 되는 것은 반드시 재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미가 있어 좋아하여 빠지게 되면 사람에게 마음의 누가 되는 것 또한 분명하다. 내가 육일거사(六一居士) 구양수(歐陽脩)의 자전(自傳)을 읽고1), 육일거사가 벼슬과 작록이 누가 된다는 것만 알았을 뿐 책과 금석문, 거문고, 바둑판, 술 등 다섯 가지 사물이 누가 된다는 것은 알지 못한 점을 늘 괴이하게 여겼다. 어찌 이 다섯 가지 사물이 과연 누가 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벼슬과 작록이 거사에게 누가 되는 것이 정말 이 다섯 가지 사물보다 심하였다면 그것이 재미를 준 것도 반드시 다섯 가지 사물보다 심하였을 것이다. 이 때문에 육일거사가 물러나 이 다섯 가지 물건과 더불어 살아갈 때는 이를 취하여도 마음에 맞아서 그것이 누가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지만, 조정에 나아가 벼슬과 작록을 취할 때는 그것이 바로 내 육체를 피로하게 하고 내 정신을 수고롭게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저 이윤(伊尹)이나 태공(太公)의 경우는 스스로 농사를 짓고 낚시를 하면서도 아형(阿衡)과 상보(尙父)의 벼슬에 이르렀지만2) 시종 조금이라도 벼슬이 마음에 누가 된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천하 만물에 대해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일 뿐이다. 비록 그러하지만, 육일거사는 막 벼슬이 재미가 있을 때 이미 그것이 누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육일거사가 보통 사람보다는 훨씬 뛰어나다고 하겠다.
나는 아직 세상에 등용되지 못하여 사물 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이 다섯 가지 사물을 넘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마음에 누가 될까 겁이 난다. 하물며 벼슬과 작록이 내 마음의 누가 되는 것이 다섯 가지 사물보다 심하지 않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이제 그 누가 되는 것을 조금 줄이고자 하면 그 좋아하는 바를 간략하게 하는 것만한 방법이 없다. 이에 다섯 가지 사물 중에서 거문고를 없애고 또 바둑판을 없앴으며 고금의 전서(篆書)로 된 금석문을 없앴다. 다만 천 권의 책을 소장하고 술 한 병을 두어 나 한 사람이 이와 함께 하니, 이 셋이 하나가 되는 삼일(三一)을 이루었다. 이것이 내 집 이름을 삼일로 삼은 까닭이다.
어떤 이가 말하였다. “물건은 많고 적은 것을 떠나 마음의 누가 되는 것은 한가지인데 당신은 책과 술이 당신에게 누가 되지 않을 줄 어떻게 알고 이를 버리지 않으시는가?”
내가 답하였다. “그렇소. 그러나 내가 단지 이 두 가지 사물만 취한 것은 비록 그것이 내 마음에 누가 될지라도 또한 때때로 내 마음의 누를 없애주기도 하기 때문이라오. 막 술이 내 입술을 적시면 아끼면서 그 뛰어난 맛을 즐기게 되고, 책이 내 마음에 파고들면 부지런히 그 기름진 맛을 즐기게 된다오. 그 누가 되는 것이 어찌 고운 노래와 아름다운 여인을 즐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만, 이미 술 한 잔 마시고 시 한 수 읊조리면 편안하여 즐거워지고 확연하게 기뻐진다오. 이에 앞서 맛이 있었던 것이 끝내 맛이 없는 것이 되어, 마침내 매우 알맞게 된다오. 마음속에 있는 것을 펼쳐 내니 정신이 왕성해지고 기운이 충만해진다오. 온 천하 만물 중에 내 마음에 들어올 만한 것이 없게 된다오. 그러니 또 두 가지 사물이 내 마음의 누를 없애주는 것이 아니겠소? 누가 되는 것은 작고 잠시인데 비하여 누를 없애주는 것은 크고 오래가니, 어찌 이를 없애버리겠소? 비록 그러하지만 책만 있고 술이 없다면 너무 메마른 단점이 있을 것이요, 술만 있고 책이 없다면 점차 방탕해질 것이니, 반드시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내 즐거움이 온전해 질 것이라오.”
1) 구양수(歐陽脩)는〈육일거사전(六一居士傳)〉에서, 늘 곁에 두는 책과 금석문, 거문고, 바둑판, 술 등 다섯 가지를 두고 즐겨서, 자신까지 합쳐 여섯이 되므로 육일거사라 자호하였다.
2) 이윤(伊尹)은 음식을 만드는 천한 신분으로 은(殷)의 재상인 아형(阿衡)이 되었고, 여망(呂望)은 물고기를 잡다가 주(周)의 재상인 상보(尙父)가 되었다.
- 남유용(南有容),〈책과 술과 내가 있는 집[三一堂記]〉,《뇌연집(雷淵集)》
※ 이 글의 원문은 한국고전종합DB 홈페이지에 수록된 한국문집총간 270집《뇌연집(雷淵集)》권14, 기(記),〈삼일당기(三一堂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
䨓淵集卷之十四
記
三一堂記 庚戌 a_217_307c
物之爲人所嗜者。必其有滋味者也。有滋味而至於嗜則累於人也亦審矣。余讀六一居士自傳。常怪居士徒知軒裳珪組之累。而不知五物之爲累。豈五物果不能爲累歟。軒裳珪組之累居士者。固甚於五物。則其滋味之入。必有甚於五物者。故居士退而與五物居。則取以爲適。不自知其爲累。而進而軒裳珪組焉則已覺其疲吾形而勞吾心矣。若伊尹,太公自耕釣以至爲阿衡,尙父。而終始不以一毫累其心。無他。其於天下萬物。不見其有滋味故耳。雖然方其有滋味也。而已知其爲累。居士之賢於人亦遠矣。余未試於世。凡物之爲吾嗜者。不越乎五物之間。而猶愳其爲累。况其軒裳珪組而爲吾累者。安知其不甚於五物也。今欲稍損其累。莫若簡其所嗜欲。就五物而去琴。又去棋。去古今籀篆之文。獨藏書一千卷。寘酒一壺。而與吾一人。參而爲三一。此吾齋之所以名也。或曰物無衆寡而爲累則一。子安知書與酒之不累子。而不去之乎。余曰唯唯。然吾之獨取夫二物者。以其雖爲吾累。而亦有時而去吾累耳。方酒之沾吾唇而嗛嗛然味其旨。書之蠱吾心而孶孶焉味其腴。其爲累。何以異於曼聲姱色哉。旣而一觴一咏。陶然以樂。犂然而喜也。向之有味者。終歸於無味。而至其甚適也。舒暢發越。神王而氣充。擧天下萬物。無足以入吾心者。玆又非二物之去吾累者歟。其爲累也微而暫。其去累也大而久。惡乎其去之。雖然徒書也而不以酒則偏乎枯。徒酒也而不以書則漸乎蕩。必也二物相須。而吾之樂全矣。
[해설]
옛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바로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 도잠(陶潛)은 버드나무를 좋아하여 다섯 그루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하였고, 정훈(鄭熏)은 일곱 그루의 작은 소나무를 심고 칠송처사(七松處士)라 한 바 있다. 옛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바로 자신의 집 이름을 삼기도 하였다. 남유용은 자신의 집을 삼일당이라 하였다. 보통 집 이름에 ‘삼일(三一)’을 붙이는 것은 육체적 생명과 정신적 생명, 사회적 생명을 부여한 부모와 스승, 임금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섬기겠다는 뜻을 표방한 것이다. 조선 중기 마포에 살던 시인 성로(成輅)의 삼일당이 그러한 예 중 하나였다.
문학을 사랑하는 남유용의 집 삼일당은 그러한 뜻이 아니었다. 그 근원은 구양수에 있었다. 구양수는 만 권의 서적, 천 권의 금석문, 한 장의 거문고, 한 병의 술, 하나의 바둑판, 그리고 자신이 이들과 더불어 하나가 된다는 뜻에서 그 호를 육일거사(六一居士)라 하였다. 남유용은 이것이 번다하다 하여 서적과 술만 들어 자신과 함께 하나가 되었다 하여 자신의 집을 삼일당이라 하였다. 그의 나이 33세 되던 1730년의 일이다. 아직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은 문학청년 시절 그의 꿈을 이렇게 표방한 것이다.
남유용은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재미를 느끼면 빠지게 되고 빠지게 되면 마음의 짐이 된다고 여겼다. 구양수가 벼슬을 싫어하여 물러나 살았으니, 그 때문에 벼슬에 빠지지 않아 마음의 누가 되지 않은 점은 높이 살 만하지만, 책과 금석문, 거문고, 술, 바둑을 즐기면서도 그것이 마음의 누가 되는 점을 알지 못하였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묘한 논리를 내세웠다. 우선 책과 술만 취하고 나머지를 버림으로써, 마음의 누가 되는 가짓수를 줄였다. 물론 가짓수를 줄인다고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책과 술은 다른 욕심을 줄여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마음의 누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였다. 술이 없으면 세사가 너무 무미건조하고 책이 없으면 방탕해지기 쉽다는 말로 인생에 이 두 가지는 없을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남유용이 이런 말을 한 근본적인 의도는 복잡한 세상사에서 물러나 술을 마시고 글을 지으면서 살겠노라는 작가적인 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이 글을 읽은 성리학자 이재(李縡)는 남유용이 든 이 두 가지가 천하 만물을 들어서 바꿀 것이 없는 가장 즐거운 일이겠지만 그 귀착점을 따져보면 술 한 잔 마시고 시 한 수 읊조리는 일상일영(一觴一詠)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남유용은 벗 오원(吳瑗)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양수의〈육일거사전〉이 매우 아름다운 문장이라 좋아하지만 구양수의 기호가 너무 많다고 여겨 자신은 ‘일상일영’으로 족하므로 자신의 집을 삼일당이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적었다..
“책 일만 권이 있고 술 한 병을 두면, 정말 한 번 마시고 한 번 시를 읊조리기에 충분하다. 기분이 좋아 절로 즐거우니, 작게는 세사의 득실(得失)을 다르지 않게 여기고 영욕(榮辱)에 대한 생각을 잊을 수 있으며, 크게는 육체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죽고 사는 것을 하나로 여기게 된다.” 문인의 방이라면 이 정도로 족하지 않겠는가? 고려의 이규보(李奎報)가 거문고와 시와 술을 매우 좋아하여 스스로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 하였으니, 그 뜻은 한가지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의 기호로 이 정도면 족하리라.
글쓴이 / 이종묵
*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 저서(역서)
- 해동강서시파연구, 태학사, 1995.
- 한국 한시의 전통과 문예미, 태학사, 2002.
- 누워서 노니는 산수, 태학사, 2002.
- 浮休子談論, 홍익출판사, 2002.
- 조선의 문화공간(1-4), 휴머니스트, 2006.
- 우리 한시를 읽는다, 돌베개, 2008
[한국고전번역원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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