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칠선계곡의 딜레마
/ 진용성 부국장겸 레포츠부장
'50마리에서 100마리를 한 떼로 하는 산오리가 계곡의 못에서 놀고 있었고 사향노루와 담비 등도 발견되었다./…/예비답사 때에는 능선에서 두 마리의 큰 곰을 발견하였다./…/이곳에서 최근 잡힌 곰이 40마리나 되는데 재작년에 스무 마리, 금년에 들어와서 네 마리나 된다는 것이다./…/이 폭포는 칠선계곡에 들어와 처음 발견한 폭포일 뿐 아니라 가장 큰 폭포였다. 부일(釜日)폭포로 명명하고…./…/해발 1500m 이상은 그야말로 전인미답의 정글지대로 도벌꾼들에게 막 베어진 최고 수령 300여년의 고목들도 있었다.'
산악인이자 부산일보사 사회부장을 지냈던 고 김경렬 선생이 지난 1964년 한국전쟁이 끝나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지리산 칠선계곡 일대를 탐험하고 그 결과를 본보에 연재했던 기사의 내용 중 일부다. 이 기사를 보면 산하가 온통 잿더미로 변해버린 전쟁의 와중에서도 원시림이 무성한 칠선계곡은 온전했고, 또 그곳엔 곰을 비롯한 갖가지 야생 동물이 무리를 지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그 칠선계곡이 빠르면 6월쯤 제한적이지만 일반에 전면 개방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칠선계곡은 지난 1999년 자연휴식년제 지역으로 지정돼 9년 동안 출입이 금지돼 오다 그 기간이 지난해 말로 끝남에 따라 곧 개방될 것으로 기대됐던 곳이다. 그런데 국립공원 지리산 관리공단이 올들어 갑자기 앞으로 20년간 더 출입을 통제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지역 자치단체와 주민은 물론 일부 산악인들의 강력한 반발까지 불러왔던 곳이다.
바로 개방이냐 보존이냐를 놓고 빚어진 논란이었다. 그런데 이 논란은 개방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와 신중히 하자는 환경단체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더욱 첨예한 갈등으로 비화됐다. 그러나 현재는 생계에 막대한 타격을 받고 있는 지역주민들의 주장이 정당하고 현실적인 요구로 받아 들여져 개방쪽에 무게가 실린 상황이 됐다.
그럼 칠선계곡이 어떤 계곡인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마을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진 지리산 최장의 계곡이다. 길이는 장장 10㎞에 달한다. 지리산에 남아 있는 마지막 원시림 지대인데다 소와 폭포가 무수한 비경의 계곡이다. 비단 자연 경관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고산성 희귀식물이 널려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97년에는 야생 반달곰의 생생한 흔적도 발견됐다. 바로 그곳에 비록 제한적이만 출입금지 빗장이 풀린다면 어떻게 될까. 백두대간의 예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대간은 한 해 1만5천명 정도가 오르내린다. 그런데 대간의 능선마루는 어떠한가. 달리 설명하지 않아도 산꾼이면 누구나 그 실상을 잘 안다. 그렇다보니 산꾼들 스스로도 '백두대간은 이제 그만 타자'라고 호소할 정도다.
그런데 지리산의 한 해 탐방객은 300만명을 넘는다. 당연히 지리산 최고의 비경인 칠선계곡이 개방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물론 예약탐방제를 실시한다고 하지만 민원과 청원이 빗발치면 빗장이 점점 더 풀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약탐방제 합의는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 그것은 가장 절박하고 가장 절실한 사람들끼리 모여 양보와 타협을 통해 이뤄낸 아름다운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다만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가기 전에 보다 정치한 고민이 필요한 것은 한번 잘못되면 다시는 복원하기 어려운 소중한 자연유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나라에 그런 공간 하나쯤은 남겨 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때론 근처에 갔다가 마음으로만 둘러보고 오는 사람들, 그리고 미래의 후손들, 또 혹시나 남아 있을지 모르는 야생 곰들에게 어쩌면 마음의 빚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ysjin@busanilbo.com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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