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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소설가협회가 마련한 대운산 산행에 동행했다. 산으로 가다 들길을 만났다. 이 들길로 곧 봄이 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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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소설가협회 산행팀이 아직 오지도 않은 봄을 맞으러 서창에서 남창에 이르는 들녘을 향해 길을 떠났다. 서창 대운산 기슭을 어슬렁거려 보자는 심산이었다. 땀 내며 산을 뭣 때문에 오르느냐. 혹시나 잔설 속에 숨어있을 설중매나 찾아보자. 봄은 역시 보고 만지며 느끼는 자의 몫이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몇몇 시인이 노는 일에 함께 했다. 노포동 지하철역에 모여 버스로 용당 사거리까지 갔다. 그곳에서부터 걸었다. 몇 병의 막걸리를 준비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정처 없이 걷는 것이 노는 일의 전부였기에.
휴일만 되면 배낭을 싸들고 대문을 나서는 나를 보고 이웃은 무엇이라 생각할까. 이런 모습에 자기 합리화를 위해 생각해 낸 것이 행복론이고, 그를 뒷받침하는 실천으로서 '노는 일이 남는 것이다'는 논리를 엮어낸다. 이 말은 곧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쓸 때 그것이 인생의 가치를 더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것도 물론 자신을 위한 일이겠지만 자아실현을 위한 시간과는 거리가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현시점에서 기억나는 것은 즐겁게 일했을 때보다 열심히 놀았을 때의 일들이다. 그런 기억이 더 쉽게 떠오르는 것도 바로 자신을 위한 시간이었기에 그럴 것이다.
일행은 삼광리라 불리는 내광·중광·외광리를 지나 신기· 귀지마을 남창역에 이르는 들녘을 걸었다. 농담과 우스갯소리로 여유로웠다. 노는 일에도 번뜩이는 창의성이 숨어 있다. 우리에게 과거는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저 산을 넘지 않고 '지금-여기'에서 어떻게 걷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인가. 그것이 삶의 화두이며 행복론의 귀결점이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담뱃값이 인상되면 언론에서 제일 먼저 주머니 사정을 걱정해주었다던 공초 오상순 시인의 시 '꽃자리' 전문이다. 평생 혼자 살면서 술과 담배와 시를 벗하며 '행복 지수는 경제지수가 높다고 높은 것이 아니다'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다 간 분이다.
인구에 회자되는, 대낮에도 촛불을 켜들고 사람을 찾아다녔던 시인이나 들놀이 갔다가 주흥에 겨워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소를 타고 어슬렁거리며 서울 한복판으로 들어오는 작가들을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 해대겠지만 그들은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행복한 웃음을 선사해 주고 있다. 문인들의 이런 치기어린 기행은 현실 부정이 아니라 현실 극복의 수단이며 물신화되어가는 사회에 보충되는 신선한 산소이다.
함께 걸었던 작가 김서련은 "요즘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과연 행복한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행복과 창조의 지름길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도전적인 과제를 찾아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고 몰두하는 거라면… 나는 행복을 창조하며 살고 있는 게 틀림없다. 아스팔트와 논둑길, 산길, 강둑길, 대나무숲길을 따라 걸으면서… 좋아하는 일인, 소설거리에 몰두하기도 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얼음, 햇살에 반짝이는 물 흙 산 나무 하늘 공기 집을 살피기도 하고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려고 했으니까 말이다"고 했다.
옛 문인들은 들놀이 후 비를 맞으며 알몸으로 소를 타고 어슬렁거리며 귀가했지만 오늘의 문인들은 만나지 못한 홍매화를 얼굴에 가득 피우고 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보일 듯 말 듯한 봄빛이 가슴에 들어 '노는 일이 남는 것이다'며 다시 행복과 놀 궁리를 한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