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향기로운 글방/숲속의 글마당

천성산에서 까마귀와 놀다/술산 강영환

by 지리산 마실 2008. 3. 17.

강영환 시인의 '시가 있는 산' <5> 천성산에서 까마귀와 놀다
겨울철 산짐승에 먹이 주는 일은 공존을 위한 길
"섣부른 인위적 행위 야생섭리 파괴할수도"
반대론자 있지만 생태계 파괴 책임
인간 최소한의 양심 큰틀 흔들지 않을 것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짚북봉에서 바라본 청성산의 한 봉우리. 봄빛이 물오르고 있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 낙엽을 뚫고 새순이 쏘옥하고 돋을 것만 같은 착각을 가슴에 안고 천성산을 올랐다. 코끝을 스쳐가는 촉촉한 바람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디서 날아 왔는지 까마귀가 하늘을 빙빙 선회한다. '웬 까마귀람 재수없게', 누군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까악까악 보채는 소리가 도발적이었기 때문이다. 까마귀의 본심은 그것이 아니다. 저들이 사람 주변을 선회하는 것은 먹이를 찾기 위해서다. 새들 중에서 가장 영리하다고 알려진 까마귀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음식을 지고 와서 먹다 남으면 버리고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까마귀는 짖어대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 온다. 일행 중 한 분이 화답을 보낸다.

"알았다 임마, 남겨 줄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러면 알아들었다는 듯이 까마귀는 조용해진다. 재미있다. 고운 최치원 선생처럼 학을 데리고 놀 수 있을 정도는 못 되더라도 까마귀라도 날리며 놀 수 있으니 행복하지 않은가.

나는 겨울철이 되면 새의 먹이를 구석진 바위 위에 놓아 주곤 했다. 지난번 치밭목 산장에 올랐을 때도 그랬더니 이를 본 대피소 민병태 소장은 새나 짐승들이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그들에게 먹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세계를 지니고 있고 그것을 인위적으로 파괴하는 행위가 바로 먹이를 주는 일이라 했다. 지리산 반달곰 방사가 실패한 원인 중의 하나가 등산객들이 남긴 음식 찌꺼기나 무심코 준 음식물이었다고 한다. 야성을 지닌 짐승들이 먹이를 쉽게 구하다보면 타성에 젖어 사냥하기를 싫어한다고 한다.

그러나 눈 쌓인 산에 라면을 부수어 주거나 고기를 잘게 썰어 뿌려주는 문수암 도봉 스님은 겨울에 짐승들 굶어 죽지 않도록 먹이를 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래서 등산객들이 남기고 간 음식물을 짐승들에게 주는 일을 마다 안 했다. 그리고는 인간들이 생태계를 파괴한 책임을 져야하며 최소한의 종족 번식을 위해서라도 양식이 떨어진 겨울철에는 그들의 생명을 보전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연구를 해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두 분의 말이 다 맞는 것 같다. 인간은 먹이 사슬의 최고 정점에 있다. 그런 인간의 논리로 새나 짐승의 생존에 접근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들에게 직접 주지 않는 한 그들이 찾아낸 먹이라는 것이다. 숲속 바위틈에서 찾아낸 도토리 열매나 어느 날 바위 위에 고스란히 놓여진 쌀이나 콩도 그들에게는 다를 바 없는 먹이일 뿐이다.

연전에 삼도봉에서 만난 박새들도 인간을 경계하되 멀리하지는 않았다. 조금씩 떼어 던져주는 소시지 때문이었지만 그들은 결코 인간의 손이 닿는 범주에 들어오지 않았다.

피아골 대피소 함태식 선생은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는 것으로 소문이 나있다. 손에 먹이를 들고 있으면 어느 틈에 쪼르르 나타난 다람쥐가 손위에까지 올라 와 음식을 맛나게 먹고는 다시 쪼르르 제 갈 길로 간다는 것이다. 인간과 다람쥐의 구분이 없어진 탈속이다. 그들은 각기 다른 생활을 하다가 필요한 때에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공간 속에서 만나게 된다. 어쩌다 한 번씩 불특정 다수에게 먹이를 주는 일은 지속적인 사육하고는 다른 것이다.

천성산 까마귀는 인간이 먹이를 남겨 주지 않더라도 그들이 살아온 법칙대로 잘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인간들이 자신들에게 먹을 것을 남겨 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짐승이 먹고 남긴 먹을거리를 그들 스스로 찾아낸 것이라 생각하고 먹으며 생존을 이어갈 것이다. 간섭하지 않고 먹이를 주는 일이 그들과 공존하는 길이다. 이런 생각 속에서 까마귀는 하늘에서 놀고 나는 지상에서 논다.

                 [국제신문]